30대가 된 이후로는 문자를 자주 받는다. 카드 결제내역 문자, 광고문자, 결혼 소식 문자, 그리고 부고 문자.
그 중에 가장 적게 들렸으면 하는 것은 누군가의 부고 소식이다.
오늘 아침 '부고 알림'이라는 앞머리로 시작하는 문자 하나를 받았다. 아침에 할 일로 정신 없던 나는 지인의 부모님상이거나 조부모상일거라 예상하며 문자를 30분 뒤에 확인하기로 했다. 할 일을 끝내고 다시 휴대폰을 들어 확인한 순간, 나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다리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솟아 오른 살갗에 바지 옷감이 닿아 그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대학원 연구실 선배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개인정보유출로 인한 피싱문자이길 바랐지만, 연구실 지인들에게 톡을 해보니 피싱이 아니었고 다들 황망해하고 있었다.
졸업한 지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선배의 최근 소식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나는 작년 가을에 있었던 홈커밍데이에 가기 위해 라이딩이 필요한지 물었던 선배의 친절한 문자가 우리 중 가장 최신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늦게라도 홈커밍에 가겠다는 선배는 그날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선배에게 바쁜 일이 있었거나 늦은 밤 장거리 운전이 부담스러웠을거라 추측하고 자초지종을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선배와 나의 연락은 홈커밍에서 보자는 답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날 사정을 물어볼 걸 그랬을까. 이후에 통화라도 하면서 안부를 물을 걸 그랬을까. 갑작스러운 소식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며 수줍게 웃었던 그 선배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장례식장에서 연구실 선배들과 만나 함께 조문을 드렸다. 대학원 같은 연구실 사람들이라고 소개를 드리자 어머님께서는 가장 행복해했고 빛났을 때의 추억을 함께한 분들이라며 고마워하셨다. 그리고 그 때의 아들의 모습을 기억해달라고 작은 부탁을 하시며 울먹이셨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지병이 있었다는 어머님의 말씀 뿐, 자세한 사정을 아는 이는 없었다. 사정을 아는 이 하나 없이 선배는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하고 마음이 서글퍼졌다.
선배가 아픈 곳 없이 잘 지내면 좋겠어요.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랄게요.
다시 볼 수 없는 그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