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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TSD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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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 May 05. 2021

교통사고로 인한 스트레스 장애(PTSD) 투병 2일차

PTSD

2021년 5월 5일 새벽 날씨 비


투여 약 : 브린텔릭스 1정

식사량 : 아침 : 무  점심 : 무  저녁 : 무 야식(22시) : 미역국, 밥. 김치, 수박

증상 : 두근거림, 가슴이 냉해지는 느낌, 멍함, 답답함, 사고력 저하


브린텔릭스를 꾸준히 먹기 시작한건, 일주일 정도 되었습니다. 이 약은 되게 약한 약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잠이 많이 왔습니다. 원래는 저녁에 먹어야 하는데, 워낙 고통이 심하게 찾아와서 늦은 오전에 한 알 먹었더니, 졸음이 오후 내내 와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오전에는 정상적으로 출근 했고 오후에는, 쉬었습니다. 저녁늦은 시간이 현장이 생겨 출근을 했고, 업무에는 큰 지장이 없었으나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예 무언가를 먹어야 할 필요성 조차 느끼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먹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게 문제가 있다는것을 인정하고 본격적으로 투병을 시작하면서 교통사고 재활을 위해 하고 있는 개인 필라테스와 제 개인 취미를 위해 하고 있는 골프레슨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 생각에요. 가만히 집에만 있으면 더 좋아지지 않을 것 같아 일단 모두 참석을 하였고,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어떤 성취감이나, 즐거움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약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저의 증상인지 헷갈리는 반응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일단 사고력의 저하는 피부로 와 닿을 만큼 느꼈습니다.


이전에는 스스로 학습하고 움직이는 ai 였다면 지금은 명령어 대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어떻게 말해야 할지 굉장히 어려운데, 약을 먹기 전에는 괴로운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충동적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반대로 업무를 하거나, 생각해야할 일이 있을때는 사고력을 사용해서 스스로 계획을 하거나 일의 순서를 잡거나, 어느쪽이 더 유익한지 해로운지 와 같은 복합사고를 했다면, 지금은 그런 사고를 잘 못합니다. 그냥 일이니까 해야지, 밥이니까 먹어야지, 운동이니까 해야지 정도 입니다.

그 외에 복잡한 생각이나 사유자체를 하지 않게 됐습니다.

굉장히 담백해졌는데, 이게 약의 작용인지 아니면 현재 PTSD의 증상인지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장점이라면 충동적인 감정의 제어가 다소 수월해졌습니다.

(EX. 보면 안되는 사람이 보고싶다-> 보지 않으면 못견디겠다, 죽겠다, 보러가야지 지금 보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같은 상태였다면 약을 투여한 후로는 보고싶다 그냥 보고싶다 하고 끝)

단점이라면 사고력이 낮아져서 약간..지능이 저하된 느낌입니다.

굉장히 버벅대는 고물 스마트폰이나 PC가 된 기분이에요

일단 기억력도 생각보다 많이 안좋아져서, 다음주 진료때 교수님을 만나게 되면 몇 가지 질문 해볼 것들을 일기에 적을 생각입니다.

지금도 글을 써야 하는데 한 10초 정도 멍하니 있다가(글의 내용을 생각하거나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렉 걸린듯 멈춰있는 상태)글을 쓰고는 합니다. 그래서 글 내용이 생각나면 빨리 적어야 합니다. 언제 다시 멍해질지 모르니까요.


운전이 가장 큰 고민인데, 브린텔릭스는 먹어도 운전에 무방하다고 약사도 교수님도 말씀하셨기에 하고 있습니다. 별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먹고 나서 얼마간은 저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현재 처방받은 가장 강한 약(자낙스.아빌리파이,멀타핀)을 투여하게 될 경우에는 운전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약 투여를 위해 제주도에 얼마간 머무를 숙소와 비행기표를 알아보는데 가장 어려운 건 의외로 요양보호사 였습니다. 앱이나 네이버로 검색하면 바로 나올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출장 요양보호사라는 개념이 굉장히 고정적인 환자들에게만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곳에서 혹은 근교에서 약을 투여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업상 전화가 계속 울리고 제가 신경을 안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독특한 신념으로 아마 제가 약 투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제가 더 피곤해질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만약 혼자 제주도를 가게 된다면 혼자 있을 경우 약을 투여 해도 되는지, 그리고 약을 투여하고 나서 식사를 어떻게 해야할지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제주도를 가면 아예 차 렌트를 안할 생각이기 때문에 미리 햇반과 즉석국 같은 것들을 잔뜩 사가는 것이 좋을지(만약 부작용으로 폭식을 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야해서) 아니면 그때 그때 시켜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을지 찾아봐야 합니다. 폭식하는 부작용이 있다면 음식 자체를 근처에 두지 않는 방법을 쓸까 합니다.

사실 약을 먹어야 하기 전에도 요양에 대한 간절한 바램이 있었습니다. 이게 제 ptsd증상인지 혹은 현재 저의 체력적, 정신적 저하의 원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행이나 한달 살이 개념이 아닌 그냥 가만히 있으려고 합니다.

지금도 글을 쓰면서 제 글이 두서 없고 장황한지 고민이 됩니다. 자기 중심적인 경향이라는 리포트에 매우 충격을 받아서 뭐 하나하나 하는데 제약이 생겼습니다.(ex 이 행동은 자기 중심적인가? 아닌가?)

교수님을 만나게 되면 할 질문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운동을 계속 해도 되는지? 혹은 완전히 쉬어야 하는지?

2. 피부로 와닿은 사고력 저하는 약 때문인지? 혹은 스트레스 장애 때문인지?

3. 강한 약물을 투여 할 경우 혼자 있어도 되는지?

4. 요양에 대한 강한 욕구는 이기적인 자기중심적인 경향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현재 필요한 시그널인지?

5. 혼자 있으면 안될 경우 요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폐쇄병동 입원을 안하고 혼자 약을 투여하는 방법은 없는지?


지금 현재까지 생각난 질문들 입니다.

저는 의지가 강한 편인 사람이었습니다. 입대 하기 전날 까지 현장에서 출근 했고, 전역한 다음날도 현장으로 출근 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집이 가난하거나 당장 먹여살려야할 식구가 존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나태해지기 싫었을 뿐입니다. 얼굴을 20센치미터를 꿰메고 피부괴사의 위험을 넘기고, 대형승용차를 폐차하는 사고를 겪고 퇴원한뒤 일주일만 쉬고 바로 현장에 복귀했습니다. 나태해지기 싫어서요. 그래서 저는 이러한 증상도 당연히 의지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불가능 했습니다.

혹시 지금 다양한 원인으로 비슷한 장애를 겪고 계시다면 꼭 가족이나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저것 정리하려니 혼자서는 좀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환경이 어쩔수 없으니 묵묵히 하고는 있습니다. 아무튼 현재로서는 증상의 발현을 최대한 억제하는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말들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우울증인데..", "내가 PTSD인데.."하면서 주변에 신경쓰이게 하는건 딱 질색이거든요. 이렇게 글로 혼란스러운것들을 정리하면 한결 편안해집니다. 어쨌든 오늘 하루도 잠깐 잠깐 괴로운 시간들이 적지 않았지만 별 사고 없이 잘 살아냈습니다. 뭐 그거면 된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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