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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PTSD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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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 May 16. 2021

교통사고로 인한 스트레스 장애(PTSD) 투병 15일

투여약 : 멀타핀, 아빌리파이,자낙스

식사량 : 돼지고기, 약간의 주류

걸은 거리 : 올레길 16코스 15km


오늘은 비가 세차게 왔습니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비가 와서 걷지 않을까 하다가, 그 시간에 혼자 지내는 것 보다는

걷는게 좋을 것 같아서 무작정 걸었습니다.

비 오는 숲길이 운치 있으면서 약간은 음험하기도 했습니다.

저 안에 들어가는 기분이 어떨까 그러면서 발을 내 딛곤 했습니다.

오늘 가다가 일행이 생겼습니다.

20대 후반의 남자 둘 이 었는데, 어린 친구들이 술 먹고 놀기보다는 올레길 걷기를 한다는게

너무 대견 했어요.

밥도 사줘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다 걷고 같이 저녁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길의 장점은 힘든 길을 굽이굽이 걷다 보면, 어느 새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길이었어요

걷는 내내 죽음과 싸워가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을 다듬고 걸어보았습니다.

제주의 비는 육지의 비와 조금 달랐습니다.

뺨을 때리는 느낌이기도 했고, 비바람을 헤쳐가는 기분이기도 했습니다.

몸이 너무 젖어서 끝에서는 집에 올 때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기사분이 사람에 상처 받은 사람이 많이 오는 섬이 제주도라고 하셨습니다.

끝내 그렇게 걷다 바다로 들어간다고요..

어제 제 생각이 나서 뜨끔했습니다.

곳 곳 가는 길에 시가 적혀 있었는데 이 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시들어 마른다고 하더라도 다시 피어나실 건가요?

저는 아직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만 다시 피어나게 된다면..만약 그런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솔직하고 따뜻하게 피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언젠가는 먹어봐야지 먹어봐야지 했다가..입맛도 없고

놀러온 것도 아니라서 관심을 두지 않다가

젊은 친구들을 맛있게 한끼 대접해주고 싶어 큰 맘 먹고 왔습니다

20대 남자 둘이 많이 먹긴 많이 먹더라구요^^:

그래도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 하루를 보냈습니다

낯선이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베푼 하루를 보냈습니다.

언젠가는..이들도 자신보다 젊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베풀 날이 오겠지요

저는 오늘 그렇게 또 걷고 또 싸우고 베풀고 보냈습니다

비루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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