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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샤 May 16. 2024

엄마. 잡혀가요?

껌 한 통과 청렴 그 사이.

"엄마. 잡혀가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언니와 두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길.

언니에게 전 날 직장에서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들은 9살 둘째가 무서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2024년 5월 1일.

3년 5개월의 두 번째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 복직하였다.

나의 직장은 구청이고, 복직부서는 민원부서이다.

오후 5시경 민원인의 방문이 뜸한 시간.

나이 지긋한 노부부께서 민원실을 방문하셨다.

한참을 서류작성대에서 안내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서류를 작성하시고는 여권접수를 하러 오셨다.


"영어가 맞나 모르겠네.. 그냥 따라 그렸어"


"잘 쓰셨네요. 여권은 처음 만드세요?"


"응.

국내에도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뭐 하러 외국을 나가서 돈을 써.

그래서 나는 외국 안 갔어.

대신 한국에 있는 산이란 산은 다 다녔어.

근데 우리  둘째 아들이

지 아버지 칠순이라고 외국여행을 보내준다고..

싫다고 하는데도 꼭 하라고 하도 그래서 처음 만들어."


그녀와 그 옆에 조용히 서있는 그녀의 남편의 얼굴에는 상기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좋으시겠어요. 아들이 효자네요. 어디 가세요?


"응. 베트남.

다낭이라고 하던데? 아가씨 가 봤어?"


"아~ 다낭!

요즘 사람들 많이 가더라고요. 엄청 좋다고 하던데요.

저도 못 가봤는데 너무 부러워요."


다낭 시내 한복판에 있는 한시장의 각 층별 지도를 그릴 수 있고, 그곳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맛집들의 추천 메뉴를 2~3개 정도씩을 알고 있는 나의 너스레가 이번 여행에 대한 그녀의 기대와 설렘의 흥을 북돋아 주었기를..


"근데.. 이거... 이 종이를 사진 찍어서 보내라는데.."


조용히 듣고만 있던 그녀의 남편이 내가 보고 있던 신청서를 가리키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근데 내가 스마트폰을 잘 못해서 할 줄을 몰라요.

내내 효도폰만 써서..

이것도 아들이 바꿔줘서 쓰는데.. 영 불편하네.."


나에게 번거로운 일을 부탁하는 부끄러움과,

고장도 안 나고 잘 쓰고 있었던 세상에서 제일 편한 효도폰을... 비싼 최신기종의 스마트폰으로..

끝끝내 집까지 사들고 와서 바꿔준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

그녀의 남편의 목소리에는 상반된 두 감정이 묻어 있었다.


"제가 접수 끝나고 해 드릴게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의 여권접수가 끝나갈 즈음.

나는 알게 되었다.

아들은 다 필요 없고 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아들만 둘이 있다.

그녀는 결혼 후 아이가 안 생겨서 몇 년을 맘고생을 하며 전국에 있는 병원을 다 다녔고,

각고의 노력 끝에 강남의 차병원에서 귀하디 귀한 큰 아들을 가지게 되었노라.

그런데 둘째 아들은 고생도 안 시키고 어느새 그녀의 뱃속으로 쓱 들어왔다.

그런 둘째 아들이 중학생이 되어서 그녀에게 매우 섭섭해며 말했다.


" 형은 귀하고 나는 안 귀했잖아.."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너무 놀랐다고 한다.

그냥.. 지나가듯.. 젊고 젊었던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겪었던 고생담을..

아들이 그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가슴에 담아두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녀는 절대 둘째 앞에서는 첫째 귀한 얘기하지 말고, 두 아들을 똑같이 대해야 한다. 는 조언을 몇 번이나 해주었다.


아버지의 칠순에 생애 첫 해외여행을 보내준다며.

당장 여권을 만들라고 성화를 하고,

몇십 년을 잘 쓰던 효도폰을.

굳이 굳이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꿔주는

평생 딸처럼 살가운 그녀의 둘째 아들은

그녀를 닮아서인지..

결혼 후에 아이가 안 생겨서 가족들 모두 몇 년이나 큰 마음고생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 3월.

둘째 아들에게서 어렵게 어렵게 첫 손주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쯤.


그녀의 남편이 민원대 유리 가림막 아래로.

초코바 하나를 밀어 넣었다.


그 나이의 어르신들이 그러하듯 가방에 넣어 다니며 당이 떨어질 때 먹는 작은 초코바였다.


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직원은. 민원인으로부터 어떠한 물질적 고마움의 표현을 받아서는 안된다.

청렴에 대한 교육과 감사는 질리고 질리도록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어떤 직원은 할아버지가 끝내 주머니에 찔러 넣어 준 껌 한 통을 들고 감사실에 가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하지 못하다.

중년의 신사가 고생한다며 전해 준 음료 선물세트는 정중히 거절하여 돌려보내지만..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온 비닐에 눌어붙은 홍삼 사탕은 거절하지 못한다.

나의 할머니가 사탕을 주는 사람은 정말 맘에 드는 예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하나뿐인 손자가 특별히 할머니를 생각해서 사다 준.

너무너무 안 달고 오래 빨아먹을 수 있는 구하기 어렵고 맛있는 일제 까만 사탕.

그렇게나 귀한 사탕을 생글생글 웃으며 거절한 친절했던 농협은행 아가씨는

천하에 인정머리 없고, 냉정하고,

특히나 늙은 노인이 줘서 더러워 안 먹는 년.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아버님. 저 이거 받으면 잡혀가요. 아시면서"


"에이. 그런 소리하지 마. 이거는 내가 고마워서 친절해서 주는 거야."

그녀는 유리 가림막 아래 멀뚱히 놓여있던 초코바를 기어이 내 책상 위로 쑥 밀어 떨어트리면서 말했다.


"이거 먹으면 저 잘리는데..

일하기도 싫은데 이거 먹고 잘려야겠어요."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옆 여직원이 꾹꾹 눌러 웃으며 내 자리 위를 CCTV를 카리 켰다.


"여기 CCTV에 다 찍혀서 이제 아버님이랑 저랑 같이 잡혀가는 거예요."


책상 위로 떨어진 꾸깃꾸깃한 작은 초코바를 서랍에 넣으며 그녀와 그녀의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그녀의 남편이 메고 있던.

새로 산듯한 크로스가방에서 한참을 찾아 골라준 초코바는 가방 속에 들어있는 달디 단 것들 중에서 가장 좋아 보였을 것이다.

필시 그 가방 안에는

비닐에 눌어붙은 할아버지의 홍삼 사탕도.

너무너무 안 달고 오래 먹을 수 있는..

너무나 그리운 나의 할머니의 일제 까만 사탕도 들어있으리라...


그 가방 안에서 가장 맛있고 좋아 보였을 초코바를 감사히 소중히 서랍에 넣었다.


오늘. 나의 청렴은

인상 좋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과.

생애 첫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둘째 아들과.

올봄. 그 아들에게 어렵게 얻은 귀한 첫 손자와.

그녀의 남편이 무심히 건네준 초코바와.

내 할머니의 일제 까만 사탕과 맞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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