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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sian Aug 28. 2020

기억의 지도 속 너에게 간다

올드 타운 걸, 뉴타운에서 옛.집.찾.기.


기억 속 지도를 펼쳐야 찾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 나의 유년시절 전부를 품은 그 동네, 지금은 새로운 동네가 지어져 사라지고 없는 곳. 새 동네는 말 그대로 ‘새롭게’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이름을 바꾸면 새 이름을 계속 불러줘야 차츰 익숙해져 운도 새롭게 트인다고 하던데 난 그 새로운 이름이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건 지하철 역명뿐, 어릴 적 한 동네 살던 지인을 만나러 어쩌다 한 번씩 갈 때마다 마주하는 풍경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옛정을 추억하려던 기억 세포들마저 차가운 도시가 뿜어대는 아우라에 기가 팍 죽어버리는 기분이랄까. 빽빽이 들어찬 아파트 숲과 번쩍이는 외관의 쇼핑몰 앞에서 30년도 훌쩍 지나버린 시절 일기를 복기하려는 어른 아이. 뚜렷한 목적도 쓸모도 없는 일에 마음은 벌써 시간의 강 속으로 풍덩-



작가들은 기억의 관리인이며,
기억은 그 주인과 함께 죽기 마련이다.
_ 윌리엄 진서



은평 롯데몰에서 바라본 구파발역 정경



기억 속 지도를 펼치는 일은 사실 쉽지는 않다. 나 혼자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조각조각 뿔뿔이 흩어진 퍼즐을 맞추듯 그때 그 거리, 그곳을 생생히 되살려 보려면 필히 부모님을 증인으로 소환해야 한다. 무색무취 회색 콘크리트 구조물이 성벽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 숲에서 부모님 가게와 다섯 식구가 살았던 집의 위치를 기억하는 건 오직 엄마 아빠뿐이니까. 찢어진 지도도 아니고 아예 과거 속으로 사라진 기억 속 지도를 재현하는 건 비단 나의 유년만 통과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만큼 젊음을 반납하고 가족의 삶을 뿌리내리고 지켜 온 부모님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막연히 어른을 꿈꾸던 열세 살의 여름 장마 한가운데, 이슬비가 내리던 날, 엄마랑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거닐었다. 문구점과 구멍가게 앞 빨간 우체통을 지나고, 엄마는 학교 바로 뒤편 언덕길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서서히 멈추었다. 작은 마당을 품은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동네였다. 그 날 엄마가 했던 말이 아직도 가슴속에서 꿈틀거린다.



여기가 이제 우리 집이 될 거야.



투두둑 투두둑. 우산을 두드리는 빗방울만이 공기를 가득 채웠다. 우산을 뒤로 젖히고 있는 힘껏 발끝을 세워 키를 높이니 적갈색 벽돌담 너머로 아담한 꽃밭이 보였다. 내 방이 생긴다는 것만으로 작은 심장이 콩닥거렸다.


이제야 돌이켜본다. 그 날, 그 말을 건넨 엄마는 어땠을까. 결혼하고 십삼 년 만의 집 장만. 얼마나 꿈같았을까. 두 아이를 키우고 지금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철마다 꽃이 피고 지고 작은 텃밭이 자리한, 마당 있는 집이 영원한 로망이 되었다. 아마도 그 로망은 도시를 살아가는 어느 누구에게나 유효하지 않을까. 가진 자의 후예로 태어나지 않는 한 말이다.


삼 남매가 살을 맞대고 자던 가게 2층 다락방을 떠나던 날. 생애 첫 이삿날을 기억한다. 이사하면 포장이사가 자연스레 떠오르고, 힘 좋은 아저씨들이 집안 살림을 날라야 하는 거 아니던가. 아니면 작은 용달차라도. 하지만 내 생애 첫 이사는 익숙한 지금의 이사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정이 거의 가까워 오는 깜깜한 밤. 엄마 아빠는 가게 영업을 마치고서야 살림살이를 정리했다. 부모님 손에 들려진 건 기껏해야 두 짐 꾸러미 정도가 전부. 이불 몇 채와 담요, 옷 짐 한 보따리가 거의 전부였을 것이다. 낮에 아빠가 작은 짐들은 차로 실어 날랐기에 짐은 그만큼 단출했다. 새 집까지는 천천히 거닐면 20분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고 옮길 짐도 많지 않으니 포장이사가 필요 없는 이사다. 가족이 손수 들고 날라도 충분히 가능한 손 이사인 셈. 나도 엄마가 건네 준 자잘한 짐 몇 가지를 들고 부모님을 뒤따라 길을 나섰다.


바로 어제까지 비석 치기, 고무줄놀이하며 뛰놀던 공터를 뒤로 하고 새 집으로 길을 나섰다. 인적 드문 고요한 시장 길을 지나갈 무렵, 식구들의 나직한 발걸음 소리와 이따금 아슬랑 대는 길고양이의 울음소리만 진하게 퍼졌다. 조금 더 걸어가자 드디어 학교 앞. 우리는 새 집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깊은 밤, 불이 꺼진 학교 건물을 보니 어딘가 을씨년스러웠지만 조요한 달빛이 내리비추어 마음이 놓였다.


어느덧 단독 주택 초입 갈림길에 이르렀다. 오른쪽에 보이는 언덕만 지나면 우리의 새 집이다. 나는 동생이랑 우리 방이 생겼다며 대 자로 누워 파닥파닥 날갯짓을 했다. 이쪽저쪽으로 얼마든지 굴러도 문제없다고 깔깔댔다. 아빠는 다음 날 책상이 들어올 거라고 하셨다.






소설가 손홍규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에 작가가 어린 시절 부모님과 살았던 셋집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님은  시절을  가장 찬란했던 순간처럼 회상하곤 했던 터라 나는 언제든 기회가 되면  옛집을 더불어 찾아가고 싶었다.
(... 중략)
마침내 옛집에 이르렀다. 기억에 남은 것과는 다르리라 짐작은 했지만 달라도 너무 달아서 마음속으로 놀라지 않을  없었다. 전형적인 ‘ 구조의 집이라는  기억과 같았지만 작아도 너무 작았다. (p.239)



이 장면을 읽어 내려가면서 유년시절을 보낸 나의 옛 동네를 떠올렸다. 어쩌면 내 유년의 집이 허물어지지 않아서 찾아갈 수 있었다면 작가와 비슷한 감상에 젖었을까. 가게 안쪽의 작은 살림채, 좁은 2층 다락방에서 어린 삼 남매가 살을 비비고 잠이 들었던 그 집을 다시 보게 된다면......



노부인은 다시 찾아오겠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정말로 찾아온 사람은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고 마당으로 내려앉은 한 줌 햇살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웃고 있는 게 보였다. (p.240)



다시 찾아갈 수 있는 곳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럽고 옛집을 찾아가는 장면이 슬로 모드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내 유년시절을 품은 가게방과 첫 이사의 추억이 담긴 단독주택은 조각난 이미지의 잔상일 뿐이다. 상상에서라도 다시 그 집을 찾을 수 있다 해도 어떤 느낌이 들지는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다만, 내가 추억하고 싶은 건 공간에 대해 얼마나 자세하게 정확히 복기할 수 있는지보다는 그때 그 시절의 감성과 정서가 아닐까.



기억의 집은 집으로만 구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장소나 사물을 실제보다 크고 아름답고 멋지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곳에 깃든 정서가 그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서 꿈을 꾸며 살았고 부모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곳이기에 기억 속에서 그곳은 언제나 아름다울 수밖에 없을 테다. 가난하고 고된 시간이라 할지라도 사랑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이든 장엄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무엇을 기억하든 실제로 기억하는 건 사람과 사랑뿐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손홍규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 2018
‘기억의 크기’ (p. 240-241)



내 방, 내 책상이 생긴 날. 옮길 짐보다 새로 들일 짐이 기다리던, 너른 우리 가족의 새 집. 우리 삼 남매를 먹여 키운 엄마 아빠의 가게도, 복작대던 비좁은 다락방도, 각자의 방에서 꿈을 꾸던 마당 있는 집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그곳. 오직 기억 속 지도에만 존재하는 어릴 적 동네 우리 집.


스치듯 지나간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간의 강을 건너면 뉴타운 땅 속에 묻힌 과거, 어슴푸레 되살아나는 기억의 흔적들 속에 내 어린 시절이 있다. 어린 나, 젊은 부모님의 이야기가 있다. 꿈을 꾸고, 사랑을 받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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