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eensian Sep 08. 2020

한 사람의 손글씨가 주는 모든 것

단 하나, 단 한 번의 진심이 여기에...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간.

책장을 훑어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표지를 넘기자마자 ‘툭!’ 하고 바닥으로 무언가 떨어진다. 선명하고 강렬한 빨간색 편지 봉투다. 손에 집어 들고 편지봉투를 만져보니 봉투 크기보다 작은 크기로 접힌 종이의 질감과 두께감이 느껴진다. 그냥 비어진 봉투가 아닌 것. 누가 보낸 편지였을까. 새벽, 두 시의 감성인지 몰라도 혹시라도 열지 말아야 하는 판도라의 상자면 어쩌지 망설이던 사이에 주저하는 마음보다 먼저 손이 움직이고 있음을 본다.



*


고민 한 톨 없이 본능적인 감각이 직진한다.

편지 봉투를 열고, 반듯하게 접혀있는 편지 종이를 펼친다.



감정 가는 대로 자연스러운 흐름이 있는 손글씨.

보내는 이의 이름도 없는 편지.

힌트는 ‘나이가 같다는 것.’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우리’...



편지에는 정성이든 시간이든 마음이 담겨 있어서 푸근하다.
봉투를 뜯으면 그 사람의 주변 공기가 후욱 피어오른다. 그 순간이 미치도록 좋다.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담아서 쓴 손글씨와 문체로 그 사람을 상상하는 것도 즐겁다. 시대의 흐름으로 보자면 편지는 비효율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서 편지가 없어지면 얼마나 멋없고 적막해질까.

_ 인생은 불확실한 일뿐이어서 ‘손글씨’ 중에서
오가와 이토 | 권남희 옮김 | 시공사(2020)




시간의 추를 돌려 스쳐간 이름을 떠올려본다.

스물여섯의 우리.

직장에서 만난 J였다.







공연기획 음반사에서 일하던 사회생활 초년기. J는 나와 동갑이지만 경력이 훨씬 많은 디자이너였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대학 생활의 심드렁함을 느낀 그녀는 스무 살 때부터 디자인, 편집 업계 현장에 뛰어들어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졸업과 동시에 오직 라디오 피디가 되고 싶어 1년간 언론고시에 무작정 뛰어들어 고배의 잔을 마시고 곧장 공연기획사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나보다 훨씬 선배였던 셈.


회사에서 나는 A&R부서(Artists and Repertoire)의 음반과 공연기획 업무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신입이었고, 그녀는 비주얼 디렉터로서 회사의 모든 기획물과 관련한 디자인 작업 전반을 책임지고 있었다. 소속 아티스트의 기획 음반이나 공연의 경우 제작과 관련한 모든 디자인 작업 또한 직접 기획하여 진행하는데,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비주얼 콘셉트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전 과정을 이끄는

일이다.


J는 발매 예정인 음반 디자인 작업에 필요한 사진 촬영을 앞두고 현직 프로 사진작가를 섭외했다. 이미 절친한 인맥도 확보한 고급인력이었던 것. 그뿐이던가. 음반의 메인 콘셉트에 맞춰 사진 촬영 현장 업무를 조율하며 디렉팅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고 있었다. 사회생활 새내기인 나보다 몇 배는 더 높은 계단에 서 있는 그녀를 보며 내심 얼마나 비교하고 나를 작게 만들었는지. 그 시절의 나는 참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어찌 보면 나를 가르치던 사수보다 더 어렵기도 하거니와,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사회 ‘짬밥’의 은근한 위력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없음을 처음부터 직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는 같지만 그녀는 이미 나보다 저만치 앞서 가고 있으니 직장에서 만난 ‘친구’라고 하기엔 어색하고 어딘가 애매한 그런 사이.


A&R 기획과 디자인 업무는 협업이 필수이다. 단독으로만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기획 단계에서 아티스트가 어떤 음악과 공연을 선보일지 핵심 콘텐츠에 대해 고민을 하고 내용물을 구성하는 동안 디자인 파트는 콘텐츠를 공유하며 어떤 콘셉트로 이미지를 구현하고 대중에게 어떤 비주얼로 다가갈 것인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구체적인 디자인 작업에 들어간다.


협업의 경계는 없다. 음반과 공연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제작물 - 북클릿(CD 안에 들어가는 소책자), 프로그램북(공연 관련 안내 책자), 홍보물 등 - 을 만들 때 기획부터 인쇄 단계까지 전 과정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내가 제작물에 필수적인 글을 쓰고 메인 카피와 서브 카피, 텍스트를 정리하면 그녀는 멋지게 잘 짜인 프레임 안에 텍스트를 배치한 뒤 감각적으로 터치한다.


함께 작업했던, 아침과 밤을 위한 컴필레이션 음반                       [good morning & sweet dream] _ 2006
하루의 시작과 끝에 머무는 연주 음악들. 선곡하며 재밌던  기억.      화이트 베이지 톤의 편안하고 평온한 느낌의 디자인. 여백이 있어 좋다




주관이 뚜렷하고 흔들림 없는 성격에 디자인에도 미니멀리즘을 지향했던 J. 그녀를 생각할 때 이 말이 생각난다. Keep it simple!  


수많은 작업을 거쳐 체득한 그녀만의 센스와 노하우 덕분에 텍스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나의 경우 이미지 작업에 녹여낼 텍스트가 모자란다거나 서둘러 다시 급하게 글을 추가해야 하는 상황은 거의 없는 대신에 글이 너무 길어서 쳐내는 일이 더러 있었다. 제한된 지면에 디자인 이미지와 매치시킬 원고 텍스트 분량이 길어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 글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가독성을 높이고 구성을 잘 한, 잘릴 필요가 없는, 짜임새와 임팩트를 가진 글이 왜 필요한지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고......



난 문화예술 공공기관인 문화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화예술 분야의 공적인 역할을 하는 현장에서 꼭 일해보고 싶어서였다. J는 그녀대로 회사에서 나가 프리랜서의 길을 걸으며 각자 나름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딱 서른이 되던 해, 난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해 가을에 우리는 전에 만난 일터, 그 회사에서 각자

A&R과 디자인을 책임지는 팀장으로 다시 만났다. 물론 J는 나보다 경험도 경력도 많은 유능한 팀장이었고, 난 커리어의 지평을 넓혀 가야 할, 초보 티가 팍팍 나는 애송이 팀장이었다.


그녀에게 그 자리는 참으로 안정되고 딱 알맞아 보였다. 어울리는 자리, 그 느낌 그대로였다. 다시 만났어도 J는 여전히 나보다 앞서 있음은 물론 당시 내겐 1도 없는 여유까지 갖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나의 자리는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데뷔 신고식을 치른 신인의 마음이 이런 걸까. 넘치는 열정에 비해 아직 연기력이 물오르지 않아 조바심 나는 상태. 작은 그릇의 자격지심은 점점 더 커져서 어떻게든 단 시간 내에 따라잡으려 무리하게 애를 쓰곤 했다. 자정 넘어 퇴근을 하고도 밀린 일감을 집안으로 질질 끌고 들어 왔다. 새벽 세 네시까지 노트북을 끌어 앉고 끙끙대다가 뜨는 해를 맞이하는 일도 매일같이 이어졌다. 달콤하다는 신혼 생활은 실종됐고 깜냥에 비해 두 세 배속 빨리 쳇바퀴를 허거걱 허거걱 굴려대는 상황에서 결국 난 균형을 잃고 무너지고 말았다.


쳇바퀴 밖의 삶을 처음 예감대로, 불편한 옷은 처음부터 입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지 몰랐다. 아니, 끝내 버텨내야지 경험이 되고 경력을 쌓고 내 자리가 되는 것이었다. 다치고 상처 받더라도 견뎌냈어야 그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음을 머리는 알고 있었지만 뜨겁지 않은 심장을 속일 순 없는 일 아닌가. 안타깝지만 난 기권패를 던지고 무의 공간에 서게 되었다.



Tell me, what is it you plan to do with our one wild  and precious life?

_ Mary Oliver  ‘The Summer Day’

말해 봐요.
이토록 거칠고,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나요?
_ 메리 올리버 '여름날' 중에서



아이를 낳고 엄마로서의 삶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그녀는 홀연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언젠가는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그 예감은 꼭 맞아떨어졌다. 예전처럼 당차고 자유롭게 자신이 선택한 미래로 멋지게 날아오르는 모습으로.  








2006년 어느 봄날의 밤에.

잠을 청하기엔 이른 시간, J는 책상 앞에 앉는다.

한낮의 열기 속 부유하던 생각의 먼지가 가라앉은

어둡고 깊은 밤. 순수한 날것의 감정이 서서히 모서리를 드러낸다.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기로 마음을 열고 펜을 든다. 친구에게 한 번도 건네본 적 없는 , 주머니 속에 감추었던 말들을 그렇게 꺼내기 시작한다.






나이도 같으면서 끈적한 맛의 우정이란 것도

나누지 못해 아쉬운 게 참 많아요.

힘든 시간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없지만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

잘 알고 있다는 것만 알아줘요.


.


이 편지를 읽고 나면
어떤 현실적인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사랑, 우리들, 감정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잖아요.

.


회사를 떠나고 다시 따뜻해지려
더 솔직해지고 더 감정적으로
돌아가려고 날 던져두고 있어요.

.


creative 한 일에 종사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거니까.
일하다 짜증 나고 순간 밉더라도,
가슴을 따뜻하게 덥히는 거 잊지 말기를.

.


진심은, 노력은 언젠가 통한다는 말
그 노력이 언제나 통하고 있는 거
모두 잘 알아요.

.


우리 진심 어린 장점을 가진...
좋은 친구 돼요.





이 편지에 답장을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녀가 퇴사 전에 주고 간 것만 어렴풋이 떠오른다.

새벽 감성에 이끌려 빨강 편지봉투의 발신인으로 확신이 드는 그녀를 찾아 페이스북 메신저 속 J와의 마지막 대화를 열어 보았다. 페북은 친절하게도 6년 전 대화라고 표시를 해 주었다.


당시에 답장을 전하지 못한 미안함을 담아 메신저에 편지글을 썼다. 미래에 보내는 답장인 셈이다.

비록 손글씨는 아니었으나 머나먼 타국에 제일 빠르게 도착하는 시스템을 택했다. 그리고 전송.

과연 나의 메시지가 그녀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확신은 없었다.



.

.

.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여전히 J는 미국에 있고, 결혼을 했으며 세 살 딸도 두었다고 전했다. 메시지는 아침에 읽었는데 아기 맘마, 놀이터 일정을 소화하고 이제야 답을 남긴다고. 자신은 전보다 제법 어른이 되었고, 성숙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노라고. 동시간대를 공유하진 못했지만 추억에 머문 그 편지를 되새겨주어 고맙다고. 우리의 50이 너무나 궁금하다고. 순수함은 갖고 잘 넘어가자고.



2020년 지금의 나와 J는 2006년 그때, 스물여섯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던 삶의 페이지를 채워나가는 중이다. 찬란하게 반짝이던 이십 대 어느 날에 만난 인연을 이제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도 같다. 물 흐르듯 편하게...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의 지도 속 너에게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