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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Nov 16. 2015

여행의 시작

기회는 갑자기 찾아온다. 

여행에 큰 흥미가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여기저기 야금야금 조금씩 돌아다니며 살아왔다. 


내 여행의 첫 시작은 21살 때 처음 갔던 미국이었다. 당시에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씩 어학연수를 가던 시기였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을 잘 알고 있는지라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이었는데, 2년간 만나오던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반대하시던 부모님과의 싸움 후에 내뱉은 말이 화근이 되었다. 


지금이라고 더 나아진 것은 없지만 당시에는 더욱더 맺고 끊는 것을 못했다.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썩 맘에 들진 않았지만 딱히 싫었던 것도 아니어서 질질 끌고 오기를 2년. 끊을 자신은 없고 부모님과의 싸움에 지쳐가던 어느 날, "자꾸 이런 것 때문에 싸우느니 차라리 해외로 나가버리겠다"라고 가볍게 던진 나의 말에 부모님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셨다. "그래, 차라리 나가. 대신에 비용은 알아서 마련해서 나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사람이 뭐에 홀린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내가 딱 그랬다. 정신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원과 비자를 알아보고,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어쨌든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나는 8개월 후 미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닭장같이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나에게 웃음을 띄우며 다가오는 파란 눈의 승무원을 본 순간, 꿈에서 깨는 기분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 너무 불안한 나머지 "Chicken or beef?"를 물어보는 승무원에게 "Meat, please"를 외쳤다. 두 번이나.  "닭고기 먹을래 소고기 먹을래?"에 "고기 주세요"라고 답한 것이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어쨌든 그 승무원은 직접 뚜껑을 열어 두 가지의 기내식을 보여줬고 나는 소고기를 골랐다. 손짓으로. 


엉겁결에 시작한 첫 여행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보스턴에서 1년, 한국에서 2년,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캔자스에서 6개월을 보낸 후 밴쿠버에서 4개월, 한국에서 2년, 밴쿠버에서 3년 그리고 지금은 몬트리올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중간중간에 들렀던 뉴욕, 플로리다, 일본, 싱가포르, 신혼여행지로 간 몰디브, 이번 여름에 다녀온 유럽까지 포함하면 내 여행기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누군가와 이를 공유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자꾸 희미해지는 기억들을 꺼내어 한 명이  될지, 두 명이  될지 모르는 이름 모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참 낭만적이다. 


조곤조곤 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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