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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Nov 18. 2015

1. 프롤로그

유럽 여행을 결정한 순간

2015년 4월, Greg의 대학원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대학원을 위해 그동안 해온 노력을 알고 있었기에 자랑스럽고 뿌듯했지만 당장 드는 생각은, 잠깐.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


캐나다에 도착한 건 2012년 10월이었다. 캐나다에서 교육을 받지도, 경력도 없는 수백만명의 이민자 중 하나인 나에게 구직활동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나는 고3 수능 영어 강사였으니 경력을 살려 취직할 수도 없었다. 기회가 된다면 캐나다에서의 구직활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5개월의 공백 끝에 의사 진료소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는 일단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만족할 것 같았는데, 곧 싫증이 났다. 지금 하는 업무를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까? 적어도 5년 동안? 10년 동안?

결국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항상 관심 있었던 분야인 언어치료에 도전하기로 했고, 다시 대학교로 돌아가 1년 동안 선수과목을 수강한 후에 드디어 대학원에 지원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 Greg도 아동 심리 관련 대학원에 지원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분야는 달라도 같은 대학원에 동시에 지원하게 되었다. 결과는 이상적이지 못했다. 합격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마는 나는 똑 떨어지고 말핬다. 높은 경쟁률 때문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감정을 추스르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Greg의 합격 소식을 접한 거다. 그것도 몬트리올의 McGill 대학교에. 당장 내 머리 속은 아, 이사를 가야 하는구나. 집은 어떻게 구하지? 몬트리올은 프랑스어 쓰는데 그럼 나는 거기 가서 뭐하지? Greg은 학교 다니고 나는 프랑스어 못해서 일도 못할 텐데 뭐  먹고살지? 그럼 나는 이제 내년에 McGill에 다시 지원해야 할 텐데 내 성적 가지고는 McGill은 엄청나게 무리인데... 축하하는 와중에도 마음속에는 못난 질투심과 이런 저런 잡생각이 가득했다.  


어쨌든 9월부터 살 집을 구하려면 한 달 전에는 알아봐야 하니 7월 말에 몬트리올에 잠시 갔다 오기로 하고 비행기표를 알아봤는데... 이렇게 비쌀 수가! 캐나다 땅 넓은 건 알았지만 한 나라 안에서 이동하는데 비행기 값이 80-90만 원이라니. 운전해서 갈까? 했더니 5000km, 일 주일이 걸린단다. 포기하고 저렴한 비행기표를 뒤지고 있는데 Multicity 여정으로 엄청난 딜을 발견한 거다.


밴쿠버 <-> 몬트리올: 90만원

밴쿠버 -> 몬트리올, 몬트리올 -> 바르셀로나, 파리 -> 밴쿠버: 120만원


몬트리올을 왕복할 비용에 30만원만 더 보태면 유럽 대륙을 왕복할 수 있었다. 유럽! 이게 도대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당장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가난한 학생이 되어야 하는 이 마당에, 있는 돈을 모아도 모자를 이 상황에.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절대 가지 말아야 하겠지만 이미 머리 속에서 정당화를 시작했다.


유럽? 지금 안 가면 언제 가나. 애 생기기 전에 갔다 와야지. 앞으로 학교 다니면 공부하느라 바빠서 못 가지. 졸업하고 일 시작하면 한 달 동안 휴가 받기 힘들어서 못가. 돈이야 뭐, 어차피 빚지고 학교 다닐 거 학자금 대출 좀 더 받지. 그러고 보니 시기도 적절하네. Greg 학교 시작하기 전에 마지막 여행이라고 치면 되겠다. 나는... 대학원 떨어진 기념으로 가는 위로 여행이지. 아, 비행기표 팔리면  안 되지. 일단 사놓고 보자... 결제 완료.


더 깊게 생각하면 결국 못 갈 거 같아 Greg과 아주 간단한 상의 끝에 질러버렸다. 길이길이 기억에 남을 내 첫 유럽 여행은 이렇게 아무런 계획 없이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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