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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나몽 Nov 17. 2015

숨통

숨 좀 쉬자 슬럼프야

날씨 좋은 어느 날 오후의 퐁피두센터에서 바라본 퐁피두 광장.

les gens_Pompidou dans l'apres-midi




이십 대 중반에 시작한 프랑스 유학 생활, 일 년에 꼭 한 번씩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찾아와 스멀스멀 내 옆에 꼭 붙어 떨어질 생각조차 없는 슬럼프라는 놈. 따뜻한 햇볕이 비추는 3월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사라졌었던 그놈이 3개월째 그대로 있다. 이대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주머니를 탈탈 털어 꼭두새벽부터 파리행 표를 집어 들고 파리로 올라갔다. 



서울과는 다른 의미로 파리는 너무 복잡하다. 사람도 많고, 거지도 많고, 차도 많다. 아, 물론 나를 포함한 관광객은 더 많다. 그래서 굳이 비싼 월세 근근이 내며 숨 막히게 살고 싶지는 않는 도시다. 하지만 관광이라면 확실히 다르다. 서울처럼 현대적이고 쌔끈하게 쭉 빠진 현대식 건물이 늘어져 있지는 않지만, 수세기가 느껴지는 우아한 건물들과 좀 더럽긴 하지만 운치 있는 센강이 흐르고 센강 마디마디에는 고풍스러운 다리들이 늠름하게 버티며 낭만적인 냄새를 술술 풍기고 있고, 어딜 가나 눈 돌아갈 만한 박물관과 갤러리가 있는, 또한 소위 말하는 트렌디한 쇼퍼들에게는 두 팔 벌려 맞이하는 트렌디한 샵들까지. 나 같은 유학생들은 돈이 들어가는 것 외에는 웬만하면 다 누릴 수 있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도망치듯 올라간 파리. 천천히  이곳저곳을 걸으며 바람과 운치를 느끼고 있노라면 아주 천천히 기분이 가벼워진다. 그 느낌이 좋다.


파리시청과 시떼섬을 이어주는 다리


아무것도 모르던 유학 초기 시절, 파리에 있는 한 언니에게 물었다. 그 곳 생활은 지방이랑 확연히 다르지 않느냐고, 즐겁지 않으냐고, 유학생활은 다 똑같은 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질문을 했다.  그때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파리는 정말 아름다워, 낮이나 밤이나. 그래서 나는 이 생활이 좀 슬퍼. 나는 언제나 힘든데 이 도시는 언제나 예쁘니까.”


아직 유학 일 년 차 밖에 되지 않았던 그때는 몰랐다. 아무리 같은 프랑스에 있다 하더라도 파리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안 가봤던 건 아니지만 느긋하게 걸으며 관강 하기엔 볼거리와 즐길거리, 누릴거리가 많은 나에겐 너무 좋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언니의 그 말이 의미심장했다.

4년이 훌쩍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말했던 그 말이 이백 프로 삼백 프로 와닿는다.  그때 한마디 위로조차 할 수 없었던 나는 참 어렸다. 프랑스의 어느 도시든 그곳에 머물게 되면 그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 미운 정이던 고운 정이던 정으로 애틋해진다. 그 언니도 그랬을 것이다. 현실과 꿈에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지방에 살고 있는 나로서 일단은 파리가 숨통이다. 여행 지니까. 

파리든 어디든 이 지긋지긋한 무력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떠나고 싶다. 


숨 좀 쉬자 숨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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