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권, 제 1 편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른색은 쪽풀에서 나왔지만 쪽풀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로 만들어졌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
"靑取之於藍,而靑於藍.氷水爲之,而寒於水."
청출어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말은 순자가 학문을 대하는 기본 정신이다. 이 사자성어에 빚대어 순자의 학문이 공자에서 출발했다고 알려져있지만 앞서 "유자儒子,순자"에서 살펴봤듯이 공자 이전 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이 더 설득적이다.
공자의 학문관
공자의 학문 정신은 언제나 군자君子와 성인聖人를 중심으로 논해진다. 순자 역시 군자를 중심으로 학문 정신을 논하고 있지만 군자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학문에 대한 공자의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논어> 계씨季氏편을 보면 학문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 단계를 나누었다. 학문적으로 가장 뛰어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학문을 지니고 있는 사람, 즉 천재나 영재를 말하고, 그 다음은 배워서 아는 사람이고, 다음은 경험으로 습득한 사람이고, 마지막으로 이도 저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가장 배움이 없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결국 공자에게 있어서 학문은 천재나 영재와 같은 엘리트 위주의 산물이고 그들의 체제를 유지시켜주는 도구이다.
군자는 천재가 아니다
"군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남달랐던 것이 아니라, 물건을 잘 이용할 줄 아는 것이다."
"君子生非異也,善假於物也."
순자는 군자에 대해 전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군자의 천부적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 공자와는 달리 순자는 습득된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앉아서 사색하는 것보다 책 한 페이지라도 읽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유효 편을 보더라도 자신이 현재 천하고 어리석을 지라도 선비가 되고 싶거나 군자가 되고 싶거나 성인이 되고 싶다면 학문 연마를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즉 군자는 만들어가는 존재다.
순자의 학문하는 자의 태도는 '꾸준함'에 있다. 흙이 쌓여 산이 되고, 물이 모여 호수가 되고, 천리를 가기 위해서는 한걸음 내딛는 것부터 차근차근해야 하는 것처럼 학문은 꾸준함이 중요하다. 오죽하면 군자에게 학문은 끝이 없어서 죽어야만 끝이 난다고 말했겠는가.
학문하는 방법
순자의 학문하는 방법 중 최고는 좋은 스승을 곁에 두고, 스승에게 <예禮> <악樂> <시경詩經> <서경書經> <춘추春秋>를 익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예禮를 따른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책들만 익히고 좋은 스승도 없고 예 또한 따르지 않는다면 비루한 선비陋儒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학문에는 반드시 명확한 대상과 행동이 따라야 함을 말하고 있다.
순자가 추천한 책들을 보면서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점은 공문의 책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자가 언급한 책들은 공자 이전에 쓰여진 책들로 공자의 학문보다 공자 이전 유자의 학문을 통해 학문적 정체성을 확립하려한 증거다. 뿐만 아니라 순자 당시 이미 세력을 잃은 공문의 학풍을 굳이 인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흐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공문을 배제하고 유자의 학풍을 새로운 판에 짜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순자가 이해한 스승이 될만한 모델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논어> 태백泰伯 편을 보면 공자는 요堯순舜우禹, 주문왕周文王, 주공周公을 스승의 모델로 설정했다.
그러나 순자는 스승의 모델을 딱히 지칭하지는 않았다. 아직 그 이유에 대한 명확한 주장을 접하지는 않았지만 순자가 생각하는 스승은 분야마다 다양한 모양으로 존재하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자와는 달리 직업을 서열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분야든지 스승은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유효 편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농사에 있어서 군자는 농사꾼만 못하고, 장사에 있어서 장사꾼만 못하고, 물건을 제작하는데는 기술자만 못하다. 더군다나 말 재주에는 명가名家라 일컫는 혜시나 등석 만도 못하다. 각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은 누구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순자의 중요한 개념이 등장하는데 예禮가 그것이다. 그러나 본문인 권학 편에서 예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기 때문이기에 예에 관해서는 앞으로 더 깊이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만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자의 사상에서 예는 학문하는 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 앞으로 각 장마다 내용을 계속해서 증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