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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Oct 07. 2020

"Take BACK Control" 한 문장의 힘

마케터의 눈으로 본 영화 <브렉시트 : 치열한 전쟁>

실화 기반의 영화를 좋아한다. 정치 소재 영화도 좋아한다. 베네딕트 컴버베치는 믿고 보는 배우다. 

어머, 이건 봐야해!



https://youtu.be/E5S1EMmCWAE

Brexit (2019) | Official Trailer | HBO


누가 이겼는지는 모두가 안다, 그러나 어떻게 이겼는지는 모른다
(Everyone knows who won, but not everyone knows how).


2016년 영국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의 막전막후를 다룬 HBO의 <브렉시트 : 치열한 전쟁(Brexit : The Uncivil War)>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영화다. 




우선, 가벼운 관전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자면 아래와 같다.


1. 문제적 인물 도미닉 커밍스(Domonic Cummings)로 분한 베네딕트 컴버베치

베네딕트 컴버베치가 대머리로 분했다(꽤 잘 어울린다). 실존 인물인 도미닉 커밍스가 대머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국의 최순실, 사악한 천재로 불리우는 문제적 인물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의 배후에서 실권을 행사하는 수석 보좌관으로 브렉시트 국민 투표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2019년 7월 보수당 경선과 12월 총선을 승리로 이끈 전략가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당선 후 그를 위해 '정치 특보'라는 직책을 새로 만들어 총리 집무실 옆방에 커밍스의 사무실을 배치했다. 가디언은 "복잡한 사안을 핵심적인 문구로 정리하는 능력이 탁월한 커밍스를 존슨은 절대적으로 신임한다"고 했다. 올해 5월 커밍스가 코로나에 걸리고서도 470km를 돌아다녀 전 국민적인 사퇴 압력을 받을 때 보리스는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그를 두둔했을 정도다. 

도미닉 커밍스가 이렇게 욕을 먹는 이유는 그의 급진적인 성향과 파격적인 언행 때문이다. 퀸메리대학의 팀 베일 정치학 교수는 '커밍스는 파괴자의 파괴자'라며, '그의 전략은 외골수적이고 전통 파괴적'이라고 묘사한다. 커밍스는 의회와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는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를 "수수께끼도 내놓지 않는 스핑크스"라고 부르는가 하면, 데이비드 데이비스 전 브렉시트부 장관에 대해서는 "갈아놓은 고기처럼 얄팍하고, 두꺼비처럼 게으르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커밍스를 가리켜 "직업적인 사이코패스"라고 불렀다.

재미있는 건 브렉시트를 이끈 주인공 도미닉 커밍스를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베치는 브렉시트 반대주의자라는 것이다. 컴버베치는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영국 문화예술계 인사 282인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들은 국민투표를 앞두고 가디언지로 보낸 공개 서한을 통해 “EU에 남는 것이 세계무대에서 영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컴버베치가 어떤 기분으로 커밍스를 연기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심지어 컴버베치가 연기하는 커밍스는 일견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2. 놀라운 싱크로율

우선 사진을 보자(좌측이 실제인물, 우측이 배우).

보리스 존슨 총리
로비스트 매튜 엘리엇
브렉시트 잔류파 전략가 크레이그 올리버


보리스 존슨이 등장하는 첫 장면에선 폭소할 수밖에 없다. 재현에 꽤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도 논란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나라와는 꽤 다른 문화다. 개인적으로 이런 디테일이 영화의 재미를 살리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마케터로 눈여겨봤던 부분은 아래 2가지였다. 이것 때문에 추석 연휴에 가볍게 컴버베치나 봐야지 했던 머릿속이 복잡해져버렸다. 


1.  "Vote Leave, Take BACK Control" 메시지


커밍스는 맥주를 마시며, 당구를 치며, 도박을 하며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EU와 브렉시트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다. 그 결과 사람들이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불안하게 여기는 요소, 즉 "터키"와 "3억5천만 파운드의 비용"을 공략하기로 한다. 첫 번째, 터키가 EU에 가입할 것이고, 영국에 7천만명의 터키 이주민이 유입될 것이라는 유언비어다. 두 번째, EU에 잔류할 경우 부담하게 되는 비용의 최대치 3억 5천만 파운드(존재하지 않는 숫자다)를 NHS(국민의료보험)에 투입하자는 내용이다. 근거 없는 주장이지만 캠페인 기간 내내 "터키"와 "3억5천만 파운드" 이 두 가지만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상대편에서는 말도 안되는 주장에 반박하느라 그들의 주장을 설득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싸움터를 옮겨버린 것이다. 

애초에 도출한 캠페인 메시지는 "Take Control"이었다. 커밍스는 이 메시지가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구호가 아닌 감정을 사로잡을 수 있는 메시지가 필요했다. 어느날 책을 읽던 커밍스는 책에서 한 단어를 발견하고 메시지에 추가하여 문장을 완성한다. "Take BACK Control".

합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전세계인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결과를 이끌어 낸 건 이 한 줄의 메시지였다. 그들이 이전에 그것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많은 영국인들은 뭔가 "잃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의 상실감, 분노, 향수를 "BACK" 한 단어로 자극한 것이다. 

이 메시지로 인해 <브렉시트 = (원래 내 것이었던)빼앗겼던 정당한 주도권을 다시 되찾아오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EU가 뭔지, EU에 잔류함으로 인해 영국이 가질 수 있는 이익이 뭔지 등은 다 쓸데없는 논의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정당한 주도권을 빼앗기기 전의 상황은 풍요롭고 좋았던 그 어떤 과거로 정의되어 향수를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어디서 본 장면 같지 않나? 이 장면은 같은 해 세계를 어이없게 했던 또다른 사건,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 대선을 떠올리게 한다.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구호를 통해 트럼프는 미국 저학력 백인 남성들을 결집시켰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승리한 것이다. (2016년은 참 이상한 해였다..)


2. 온라인 타깃 광고 


당시만 해도 전화, 전단지, 리플렛 등 고전적인 캠페인에 의존하던 영국 선거 환경에서 커밍스는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타깃 광고를 도입한다. 커밍스는 ‘애그리게이트IQ’라는 캐나다 데이터회사를 수백만 파운드(이후 약 2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를 주고 고용했다. 이 회사는 이전에는 전혀 정치 관여층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약 300만명의 유권자 데이터를 새롭게 발견했다. 커밍스는 이 새로운 유권자를 대상으로 위에서 개발한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주입하다시피 했다. 캠페인 기간 동안 타게팅된 유권자에게 발송된 광고는 무려 10억 개에 달했다.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 투표장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커밍스가 주입한 메시지에 세뇌되어 브렉시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이 과정은 영화속 애그리거트 개발자의 대사가 잘 표현해준다.


"인터넷 알고리즘은 우리의 행동을 학습해요. 심지어 우리의 심리와 감정 상태도. 소셜 미디어 플랫폼들은 우리가 무슨 질문을 하는지 알고 우리가 밤에 무엇 때문에 깨어 있고 언제 자며 어디 가고 누굴 만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예측을 할 수 있고요. 당황스러울 정도로 정확한 예측을요. 우리는 받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수천 개의 다른 광고를 디자인해서 뿌릴 수 있죠.
그래서 당신의 타임라인은 당신의 친구나 엄마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띠게 되는 거죠. 그리고 우리의 소프트웨어는 어느 광고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테스트하는 게 가능합니다. 좋아하기, 클릭하기, 공유하기로요. 그리고 어떻게 그들을 적응시키고 향상시킬 것인가를 실시간으로 학습합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소프트웨어는 그 어느 선거 캠페인도 공략한 적이 없었던 사람들을 찾아내서 공략합니다. 투표를 하지 않고, 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죠. 상대편에서는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추가 300만표입니다.


영화 브렉시트 속 페이스북 광고 문구


빅데이터가 대규모 선거에 활용되기 시작한 순간이다. 온라인 타깃 광고를 진행한 이 회사는 트럼프의 대선에도 개입했던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와 사실상 같은 회사였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이 온라인 캠페인은 선거자금 상한선 초과와 불법 데이터 취득 문제로 인해 이후 논란이 되었다. 



그리고 마음이 무거워진 마지막 한 마디.


이젠 너무 늦어버렸지. 그들의 캠페인은 20년 전에 시작된 거에요. 
느리게 한 방울, 또 한 방울 공포와 증오를 쌓았고,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브렉시트 잔류파의 전략가 크레이그 올리버의 독백이다. 그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의 독백은 한국의 어느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광화문에 태극기를 들고 모이는 노인들에게는 무엇이 켜켜이 쌓여 있는가. 끝간 데 없는 남혐과 여혐을 표출하는 청년들에게는 무엇이 쌓여 있는가. 고인 모독을 일삼는 일단의 청소년들에게는 무엇이 쌓여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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