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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이 Sep 14. 2023

2인가족에서 3인가족으로 가는 길목

- '남의 편'에서 다시 남편으로 

나는 남편을 25살 때 소개팅으로 만났다. 


첫눈에 반했다까지는 아니지만, 그전에 했던 줄줄이 소개팅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남자였고, 무엇보다 대화가 잘 통했다. 사실 나는 소개팅에 치마바지 레깅스를 입고, 어그를 신고 갈 정도로 자유분방? 한 스타일이었는데, 남편은 오히려 그런 나를 처음에는 신기함, 그리고 나중에는 유니크함으로 보았다고 한다 (남편은 나에게 저평가된 우량주라고 칭하였다, 고마워 남편 ^^) 


또한 남편의 성격은 업 앤 다운이 있는 나와는 달리, 매우 안정적인 성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싸움이 발생해도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으며, 늦어도 다음날에는 화해를 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향은 신혼 때도 유지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매일 소소하더라도 감사한 일을 3개씩 공유했던 우리 부부의 루틴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떠난 지 오래였고, 매일이 치열한 현실이고 서바이벌이었다. 조리원 퇴소하고 나서는 내 몸은 정말 쓰레기가 되어있었고, 매일 야근하고 들어오는 남편이 너무 미웠다. 사실 산후이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었던 나였지만, 나는 남편이 필요했다.


아이가 50일까지는 밤에 쪽잠을 잤기 때문에, 수유-트림-잠 사이클을 돌다 보면 나는 1시간 잘까 말까였다. 이러한 생활이 2주가 지속되니 이 삶의 우울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다시 병원에 입원해서 하루종일 누워 수액을 맞고 싶었을 정도였으니...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밤 남편을 붙잡고 꺼이꺼이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사실 남편도 남편 나름의 최선의 노력을 했다. 거의 매일 12시 넘게 집에 들어왔지만, 새벽수유를 담당했었고, 쪽쪽이 셔틀을 책임져 주었다. 내 친구들 역시 아기는 지금이 최고 예쁠 때라며, 힘들어도 지나간다며 버티라고 했지만 난 그 말조차도 듣기 싫었다. 사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산후우울증을 겪었던 것 같다. 아기가 100일 지난 이 시점에서 나의 삶은 그때 비해 매우 안정적이지만, 정말 내 인생의 최악의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출생 직후 삶이 아닐까 싶다. 


매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인생의 끝을 생각하면서 하루를 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매 순간을 모멘토 모리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참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아이가 100일을 지난 이 시점에서 느끼는 건 "이 조그마한 생명체가 나에게 주는 시련과 기쁨이 이렇게 클 줄이야!"다. 아이가 태어나서도 나의 1순위는 남편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줄 알았지만, 이러다가 아이가 0순위로 바뀔 수도 있겠다. (남편아 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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