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은 가볍고, 마음은 당당한 기간
9월, 회사와의 연결고리가 끊긴 날.
회사에서 친한 동료가 연락이 왔다, "변호사님, (같이 하던) 프로젝트관련해서 변호사님 cc 해서 메일 보냈는데 없는 계정으로 나와요"라며.
아- 오늘로부터 육아휴직기간이 시작되었구나 생각했다. 나에게는 지금까지 '회사'라는 존재는 단순히 나에게 월급을 제공해 주는 곳 이상이었으며, 내 인생을 대변하는 곳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디다녀요'라고 말하면,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고, 지금까지 나의 삶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사실 대학교졸업 이후, 대학원-회사 1-회사 2(변호사 시험 병행)-회사 3을 다니면서 나름 쉼 없이 달려왔다고 생각했고, 돈을 받고 쉴 수 있다는 출산휴가, 회사에 내 자리를 보존할 수 있으면서 정당하게 쉴 수 있는 육아휴직이 너무 기다려졌었다. 하지만 막상 휴직이 시작되고 나니 즐겁기보다는, 시원 섭섭한 마음이었다. 왜 이럴까?라는 내 마음을 분석해 보면 소속감이 없어진 것에 대한 소외감, 매달 들어오는 고정비가 없어짐에 따른 허무함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MBTI에서 J형인 것 같으면서도 아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다음날 일과를 그전날 확인/계획하는 체크리스트를 강박적으로 작성하여 다녔지만, 반대로 여행을 다닐 때는 매우 즉흥적으로 행동한다. 사실 육아휴직기간동안 해보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막상 경험해 보니 계획성 없는 삶이 주는 여유로움이 좋았고 이렇게 당당한 이유 있는 휴가 아닌 휴가를 언제 또 경험해보겠나 싶었다 (하지만 육아 자체는 일만큼 힘들다)
다만, 40대가 다가오는 현시점에서 휴직기간 동안, 가족 구성원이 한 명 더 생기고 나서 더욱 주체적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내 삶을 원칙과 규칙으로 재정비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 한다면,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가야 할까? 경제적 자유는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야 할 것인가..? 아이에게 좋은 환경이란 무엇일까? 등.
사실 20대 때는 30대가 되면 인생의 많은 고민들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막상 30대가 되어보니 고민의 '주제'만 다를 뿐, 계속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여전하다. '서울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책은 나의 인생책이라고 사람들에게 많이 소개를 하는데, '송과정'편에 무릎을 치게 하는 글귀가 있다.
"경제적 자유란 단순히 돈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주도권이 나에게 있어야 하며, 나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경제적 자유는 재정적인 여유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자유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를 지향하는 슬기로운 육아휴직을 하기 위해서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보았다.
(1) 육아휴직인만큼 육아에 집중하기
(2) 정신적 자유를 위하여 생산성 있는 일을 하나 하기 (나에게는 글쓰기와 책 읽기다)
(3) 사치일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취미생활을 가지기
(4) 돈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기 (아는 만큼 보인다!)
내년 1월에 육아휴직이 끝난 시점에는, 엄마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 자유라는 방향성에 한걸음 정도라도 가까워진 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