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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ohc Jun 02. 2020

Bitch on Miami Beach

라임을 맞추며 꿈꿨던 그 곳



회사 근처에 'Miami'가 상호에 들어가는 버거 가게가 있다. 이곳을 처음 갔을 때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흠칫 놀랐다. 내가 여행을 갔을 때 찍었던 그 거리의 모습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사실 워낙에 상징적인 장소이기야 하지만, 마이애미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그리 흔하게 가는 여행지가 아니다. 비교적 손을 덜 탄, 나만의 추억이 있다고 생각하는 장소의 기억을, 익숙한 공간 속에서 발견했을 때의 생경하면서도 찌릿한 희열 그런 것이 있었다.




실제. Colony Hotel과 Boulevard Hotel이 나란히.
그리고 버거집 벽화






마이애미를 처음 갔던 건 교환학생을 갔던 그 학기의 스프링 브레이크였다. 사실 마이애미를 갈 생각이 크게 없었지만, 스프링 브레이크를 함께 보내기로 한 친구의 이야기로 점점 빨려들어 여행지로 선택했던 것 같다. 욕심이 많은 친구와 나는, 뉴욕 주 서쪽에서 중부 시카고를 갔다가, 다시 마이애미로 향하는 기이한 루트로 일정을 짰다. 칼바람이 불어 3월임에도 엄청나게 추웠던 시카고와 달리, 마이애미는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공기도 달랐거니와, 버스에서 내려 비치와 가까운 호스텔 쪽으로 향할수록 훌렁훌렁 헐벗은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휴양지 비슷한 곳을 가본 적이 없기도 했지만, 마이애미는 또다른 무언가가 있는 도시였다. 야자수, 알록달록한 파스텔톤의 색감들, 흘러나오는 음악들과 밤의 네온. 그리고 종종 느껴지는 남미, 그것도 쿠바의 향기.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수학하러 온 대학생에게 이보다 좋은 스프링 브레이크의 목적지가 있을까. 그것도 좋아하는 '도시'의 향기가 물씬 나는 휴양지라니. 경험해본 적 없는 이국적인 느낌과 자유로움에 마이애미에 단숨에 매료되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내가 주로 있었던 곳은 '마이애미 비치'라는 이름의 독립된 행정구역이며, '마이애미'라고 하면 좀 더 도시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시내이다. 주로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휴양지의 모습은 마이애미 비치 쪽이라 할 수 있겠다)


도착한 그날 바로 싸구려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고 친구와 나왔다. 예쁜 형형색색으로 화려한 밤거리에는 흥청망청 흔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우리도 적당한 곳을 골라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공연도 하고 음식도 하고 술도 파는, 야외 테이블 위주의 음식점이었다.  





350ml 코로나가 2병이나 꽂힌 저 커다란 프로즌 마가리타는 '마이애미 불독'이라는 이름이었다. 지금이야 국내에서도 비슷한 것을 종종 볼 수 있지만, 저때는 생전 처음 보는 비주얼이어서 마냥 신이 나서 시켰다. 꽤 비쌌다. 양이 많아서 그런지, 8년 전이었는데 하나에 40불이 넘었다. 그리고 살사 올린 나쵸도 하나 시키고, 음악과 분위기에 취해 시저 샐러드도 하나 더 시키니 하루 저녁에 한 장소에서 둘이 100불을 홀랑 썼다. 아시겠지만 마이애미도 물가가 비싼 휴양지이고 저런 관광객 전용 장소는 같은 음식 같은 음료도 더 비싸게 판다. 그리고 택스도, 서비스 차지도 별도이다. 돈 없는 대학생이 이런 호사를.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밤은 마냥 좋았다. 다시 생각해도 신난다.


8인 1실의 숙소에 들어가니 역시나 스프링 브레이크를 맞아 휴양지에 놀러온 미국 아이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일찌감치 들어와서 자고 있고 아직 안 들어온 아이들도 있었다. 길쭉한 바다를 따라 백사장이 나란히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침실의 바닥 혹은 공용 화장실 바닥에는 모래가 나뒹굴어 좀 찝찝하기도 했다. 이것이 미국 틴에이저들의 모습인가 싶고. 잠을 청했다가 놀다 새벽에 들어오는 애들 때문에 깨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니 좁은 2층 침대의 1층에서 꼭 끌어안고 자는 남녀도 보였다. 아 미국 틴에이저.


다음 날은 바다에 가보기로 했다. 바다에 비치타올을 깔고 누워서 자다가, 일어나서 책도 좀 보고,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근처 피자집에서 맥주와 피자를 사다가 먹었다. 아 이것이 여유로구나.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파란 바다와 그 앞에 놓인 구조대가 먼 바다를 내다보는 시설물조차도 예쁘게 만들어놨다. 어쩜 이래. 야자수와 바다가 함께 보이는 이 뷰. 친구와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그때 찍은 사진은 소위 말하는 '인생샷'이라 지금도 아낀다. 나중에 인화해서 걸어놓을까 생각까지 하고 있다. 바다에서의 망중한을 매일 조금씩 꾸준히 보냈고, 그러다가 아르데코 지구의 파스텔톤 예쁜 건물들도 보러 가고, 넓게 펼쳐진 링컨 로드 몰의 가게들도 둘러보고, 타코도 먹고. 밤에는 헐리웃 스타 누구도 다녀갔다는 제일 유명한 클럽도 한 번 가봤다. 세상에 마이애미에서 클럽이라니! 길이길이 남을 무용담 아닌가. 하지만 그 유명하다던 마이애미 클럽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내가 놀 줄 몰라서 그런건지.


그렇게 전에 없던 휴양지의 생활상을 경험한 시간은 마냥 좋았다. 휴양지도 각 휴양지마다 가지고 있는 빛깔이 다른데, 내가 경험한 마이애미는 굳이 부모님이나 가족이랑 오고 싶지는 않고, 친구나 연인과 오고 싶은 그런 곳.


아쉬움이 남았는지 교환학생 말미에 나는 아껴둔 비상금을 털어 한 번 더 이곳을 다녀왔다. 어차피 망한 것 같은 파이낸스 과목의 시험이 아직 남았던 상황이었는데, 무모한 선택을 하지 않는 편임에도 급 마음을 먹고 떠났다. 이번에는 여기저기 걸어다니며 활동 반경을 넓혔다. 처음 왔을 때보다 덜 관광지스러운 곳들도 많이 다녔다. 그 현란한 마이애미 비치에도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은 세상 조용하고 사람들은 열심히 무언가를 읽거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조용한 산책로도 걷고. 이번에는 마이애미 '시티' 쪽도 방문했는데, 마치 제대로 본 적도 없는 CSI에서 본 것 같은, 유니크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로컬이 사는 공간으로서의 그 곳. 여행으로 방문한 도시에 아쉬움이 남아 한 번 더 방문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고 그곳과 나의 라포를 확장해가는 것은 지금도 좋아하는 일이기에 즐거웠다.


언제나 마이애미는 생각하면 아련하다. 그 5개월의 짧은 시간동안 미국 여행을 간다고 하면 방문하는 주요 대도시를 다 다녔다. 캐나다 동부도 차를 렌트해 여행했다. 나는 원래 이런 추억들에 굉장히 연연하는 사람이기에 모든 기억들이 다 애잔하다. 그런데 마이애미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그 생경한 풍경이 나에게 너무 강렬했던 것 같다. 취업을 하고 난 뒤 언젠가 친구들과 마이애미로 여행을 갈까 생각하고 얕게 찾아본 적이 있는데, 직항 비행편이 없고 허브 공항에서 마이애미로 이동하는 항공편도 자주 있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시간 소모가 많아 휴가 5일 내기도 빠듯한 직장인이 가기엔 적합한 여행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야 싸구려 다인실 호스텔에서도 잘 잤지만, 지금은 힘들고 불편한 거 잘 못참는다. 마이애미의 갈만한 호텔들은 상당히 비쌀 것이다. 하지만 증가한 수입이 드라마틱하지 않은 것 대비 눈높이는 드라마틱하게 높아졌다. 여러모로 그때보다 현실의 벽이 더 두꺼워졌다. (게다가 코로나19 이슈로 여행 자체에 대한 가불가 여부도 매우 불투명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일에는 정말 타이밍이 있다 싶다. 조금은 호기를 부려 비상금을 깨고 시험 하나를 버려가며 다시 마이애미를 갔던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물론 이제는 그때 포기했던 것들이 내 인생에 대수로운 요인이 아니게 됐으니 할 수 있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다만.


만약 지금 방문한다면, 그때만큼 좋지는 못할 것이다. 이미 두 번 경험한 것이기도 하고 8년 새 꽤 많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다양한 환경과 자극에 노출이 됐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별로 새로운 게 없어서 감흥이 떨어지는 것도 슬프지만 진실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가보고 싶고, 가볼 것이다. 내가 좋아하던 그 도시 그리고 신나하던 스물 넷의 나를 다시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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