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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B Nov 24. 2020

모녀 상봉

2018년 3월 31일 - 파리

파리 공항으로 어머니를 마중 나가는 길, 밴쿠버 공항에서 어머니를 맞이할 때와는 기분이 너무 다르다. 낯선 길이 한몫했지만 익숙한 영어 대신 불어가 주변을 둘러쌓고 있다는 점이 날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언어도 문화도 잘 모르는 유럽에서 앞으로 두 달 동안 어머니를 잘 모시고 다닐 수 있을까.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을 어머니와의 긴 여행에 즐거운 추억만을 가득 채우는 게 가능하긴 할까. 생각이 많아질수록 설렘과 동시에 걱정이 늘어간다.


생각해보면 20살이 되고 나서 어머니와 이렇게 오래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사이좋은 모녀 지간이지만 각자 위치한 곳에서 서로의 삶에 부대끼다가 얼굴을 보는 날은 명절이 대부분이었다. 따로 살아온 지난 16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얼마나 변했고 달라져있을까. 낯선 도시와 환경에서 같이 보내게 될 2달의 시간 동안 우리는 상상보다 많은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될까 아니면 의도치 않게 언짢아하는 일이 자주 생길까. 아마 2달 뒤에나 알 수 있겠지. 전보다 많은 이해와 사랑이 우리의 관계에 가득 차길 바라며, 어머니를 향해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 창문을 통해 빠르게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비행기 도착 시간을 보니 한 시간이 지연된 것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샤를 공항에서의 동선과 짐 찾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천천히 가도 어머니보다 빨리 도착하겠구나.’라고 생각한 게 나의 실수였다. 기차에서 내려 어머니께서 나오시는 게이트로 걸어가다 보니 그곳은 어머니뿐 아니라, 나에게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고자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헉헉’ 거리며 두리번거리는 내 시야에 걱정이 가득 찬 어머니의 얼굴이 들어왔다.


어머니!


큰 소리로 외치며 뛰어가니 금세 표정이 환해지시는 어머니. 내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하지 않고 허공을 울려 어머니께로 전달되는 모습을 보자 괜스레 울컥, 눈물이 났다.


내가 알고 있던 정보와는 달리 비행기는 연착이 되지 않았고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시며 기다리고 계셨다. 첫 단계부터 삐걱거리던 만남은 앞으로 순탄치 않을 순례길을 암시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는 격한 포옹으로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



타지에 살면 효녀가 된다는 말이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나 보다. 오랜만에 뵙는 어머니의 표정에 근심을 가득하게 만들었으니.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철부지 딸내미다.


2018년 3월 31일, 우리는 파리에서 상봉했다. 화재가 나기 전의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오일 동안 파리에서 꿈같던 시간을 보내고 바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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