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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B Dec 01. 2020

순례길의 첫 친구, 라이너

2018 4월 5일 - 파리에서 바욘으로 가는 길

지난 오일 간 파리에서 보낸 나날을 뒤로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첫 목적지인 바욘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직까지는 순례길에 대한 기대감보다 파리를 떠난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이른 시간인 아침 7시부터 떠날 준비를 하고, 아침을 먹는데 황당한 뉴스가 들렸다.



파업으로 특정일에 기차 운행이 취소되었습니다. 기차를 이용하시려던 고객은 미리 스케줄을 확인하시고 여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십시오.




아니,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왜 여행할 때는 언제나 이토록 황당한 일이 생기는 건지. 더구나 기차 운행이 최소 되었는데 어떻게 여행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는가.


'예상치 않은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면 그 일은 절대 우리를 빗나가지 않는다. 역시나, 우리가 바욘으로 출발하는 오늘도 파업에 해당되는 날짜다. 마침 핸드폰을 보니 지난 일주일 동안 나의 친구가 되어준 니꼴라로부터 문자가 잔뜩 와 있었다. 기차 파업에 대한 뉴스 링크와 함께 대부분의 기차 스케줄이 취소되었으니 내가 타는 기차 스케줄도 확인해보라고 했다. SNCF 웹사이트(프랑스 정부에서 운영하는 기차 회사)를 확인해보았으나 영어 서비스를 찾을 수 없다. 출근해서 정신없이 바쁠 니꼴라에게 도움을 청했다. 흔쾌히 대답을 한 그는 잠시 후에 취소된 기차 리스트를 전달했다.


아... 예외는 없다. 우리가 타려던 기차도 취소되었다. 하필이면 우리가 바욘을 가는 날 파업이라니! 너무 바빠서 잠도 거의 못 자고 일한다는 니꼴라는 두 시간 동안 버스 스케줄, 카풀 스케줄, 가격표 그리고 표를 사는 웹사이트를 보내주었다. 영어로 통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 너무 미안해. 그래도 좋은 점은 네가 파리에 하루 더 있을 수도 있으니까."


지난 일주일, 파리의 숨은 장소에 데려가며 영화 같은 휴가를 선사해줬던 니꼴라, 어쩜 마지막까지 이렇게까지 달콤할 수 있는지. 파리에는 이제 지붕이 생겼으니 언제든지 놀러 오면 된다고 말해주던 나의 첫 프랑스인 친구. 그의 여유와 낭만은 그저 일주일 머물다 떠나는 여행객에게도 전달된다. 당황함에 얼떨떨하던 나도 니꼴라의 도움으로 점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당일 오후 2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찾았다. 장장 11시간이 넘는 이동시간 후 새벽 1시 10분에 도착할 예정이다. 원래대로라면, 4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혹시나 마주칠 순례자와 이야기하며 창밖의 풍경을 즐기고자 했건만, 이미 첫 계획부터 단단히 틀어졌다. 그래도 버스가 있음에 감사하며, 어머니와 나는 가방을 두 개씩 메고 버스가 출발하는 곳으로 찾아갔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우리가 가져온 모든 물건은 짐이 되어 어깨를 짓눌렀다. 헉헉거리며 가뿐 숨을 내쉬는 우리에게 한 걸음을 떼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파리에서 지난 5일 동안 패션쇼를 하던 멋쟁이 모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다. 이제 우리는 어느 누가 봐도 낯선 곳에서 고생하고 있는 여행객이다.




기차 파업으로 인해 운영하는 임시 버스였던지, 우리가 찾아간 곳에 터미널은 없었다. 티켓에 적힌 지하철 출구에 어머니와 짐을 두고 나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 나섰다. 티켓에 프랑스어로 위치가 표시되어 있긴 했지만 막상 그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버스 정류장 표시가 없어 제대로 찾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30분 동안 주변을 배회하며 표시를 찾아다녔지만 아무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몸은 무겁고, 버스는 보이지 않고. 어머니께는 웃어 보이지만 속은 불안으로 새카맣게 타들어간다. 버스 출발 20분 전,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건지도 모를 사람들이 가방을 들고 서서히 모여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에 있던 아주머니를 잡고 버스 정류장이 맞나 물어보지만 눈만 똥그랗게 뜨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티켓을 보여주니 그제야 "위! 위!" (Oui는 프랑스어로 Yes란 뜻이다)라고 소리친다. 아주머니는 큰 목소리로 나의 불안을 저 멀리 날려 보냈다.


선진국인 프랑스라 버스의 시설을 내심 기대했건만 이건 한국의 고속버스보다도 못하다. 의자는 딱딱하고 간격은 좁아서 다리를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 앞으로 11시간을 달릴 생각을 하니 너무도 까마득하다. 들리는 마을마다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내리고 타는 사람들. 이들은 버스에 타고서도 수다를 떠느라 자리에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운전기사라면 출발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라고 고함을 질렀을 법도 한데 프랑스인 운전기사는 넉살도 좋다. 그도 승객이랑 수다를 떠느라 시간은 조금씩 더 지연되고 있다. 1시 10분에 도착은커녕, 빨라야 새벽 2시일 거 같다.  


달리던 버스 안에서 찍은 풍경. 흐리다가 날이 개고 다시 흐려지길 반복했다.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그 길에도 존재했다.




복도 건너편의 옆 좌석이 앉아계시던 분의 옷을 보니 심상치가 않다. 60대로 보이던 그분은 버스를 가득 채운 다른 승객들과 달리 등산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그가 첫 카미노 친구가 될 것만 같은 기분에 말을 걸었다,


”혹시 순례길에 가세요?”

“네, 맞아요.”


50개 정도의 좌석에 승객들이 빼곡히 자석을 차지하고, 심지어 복도까지 가득 들어섰지만 등산복을 입은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우리와 같은 줄에 앉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참고로 버스에 좌석번호가 없고 도착하는 대로 빈 좌석에 앉는 방식이었다.) 순례자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여기서부터 이미 작동한 건 아닐까. 순례길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공통분모는 이미 충분하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온 라이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 달간 휴가 안에 순례길을 다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도전할 거라고 했다.



밤 열 시에도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라이너가 너무나도 간절한 얼굴로 물었다.


“오늘 밤에 어디서 지내요? 괜찮다면 저를 재워줄 수 있어요? 오늘 너무 늦게 도착할 거 같아서 호텔에 연락해두었는데 회신이 없어요.”


마침 우리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던 터였다. 숙소 사진과 정보를 다시 확인하니 다행히도 침대가 두 개였다. 몇 마디의 말도 서로 건네지 않았던 사이었건만 너무도 애처로운 얼굴로 부탁하는 라이너를 차마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럼요, 호텔에 갈 수 없으면 우리와 같이 지내요."라고 답한 후 나는 곧 잠이 들었다.



어머니께서 나를 깨우시는 목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2시가 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사가 바욘에 도착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때가 새벽 2시 반. 놀랍게도 공원 앞에 위치한 버스터미널에서 내린 사람은 우리 세 명이 전부 였다. 라이너는 최대한 우리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내리면서 다시 버스운전기사에게 택시 정류장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버스운전기사가 알려준 곳은 마침 우리의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희망을 가지고 택시 정류장으로 향했지만 택시는커녕 사람의 흔적도 없었다. 미안한 얼굴로 나와 어머니를 돌아보던 라이너. 나는 라이너의 미안함을 덜기 위해 더욱 쾌활한 목소리로


"렛츠고!"라고 소리쳤다.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한바탕 웃고 나선 우리는 같이 숙소로 걷기 시작했다. 숙소까지 거리는 600미터. 걸어서 11분이 걸린다고 했지만 인적이 없는 길에 무거운 짐들을 들고 걷자니 마냥 멀게만 느껴졌다. 낯선 풍경과 어둠 끝에 핸드폰의 플래시를 이용해 숙소와 방의 열쇠를 찾았을 때의 기쁨이란.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며 소리 없는 고함을 질렀다.



아뿔싸, 문을 열고 들어선 숙소는 사진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넓고 아늑해 보이던 사진과 달리 실제 숙소는 작은 원룸에 침대만 하나 덩그러니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에어비앤비 웹사이트에는 침대가 두 개라고 적혀있다. 불과 오 분 전,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기쁨에 고함질렀던 때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침낭을 바닥에 핀다고 해도 부엌 조리대 앞 쪽으로 한 명 누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도 빠듯했다.  라이너도 어이없는 표정이었지만 우리에게 더 이상의 선택은 없었다.


"우리 침낭이 두 개 있으니까 바닥에 펴줘도 돼?"

"어쩔 수 없지."


실망한 얼굴로 침낭을 꺼내던 라이너. 갑자기 그가 흥분해서 날 불렀다. 침대 옆으로 장식장이라 생각했던 가구가 사실은 사다리였다. 사다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 끝으로 매트리스의 끝자락이 보였다. 창고라고 부를 정도로 작은 공간에 매트리스를 올려놓고 침실이 두 개라고 광고한 에어비앤비 주인이 원망스러웠지만 우리는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 것만 같이 소리 지르며 기뻐했다. 12시간 20분의 장거리 버스 이동에 라이너는 눕자마자 타지도 못한 기차 소리를 내며 자기 시작했다. 순례길에 들어섰다는 현실이 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라이너의 코 고는 소리에 한 시간은 잠들지 못했지만 ‘알베르게에서 날마다 마주칠 그 한 명을 벌써 마주친 것뿐, 예정보다 빨리 순례길에 들어섰다,’고 마음먹으니 코 고는 소리도 이전만큼 괴롭지만은 않다.


아침이 되자 나도, 어머니도, 라이너도 서로를 개의치 않고 훌러덩 옷을 벗고 갈아입는다. 우리에겐 무엇이든 통용되는 핑계가 있으니까.


우리는 순례자고, 여기는 순례길이라는 것!


5일 동안 바욘에서 쉬기로 한 우리와 달리 라이너는 다음날 생 장 피에 드 포드로 떠났다. 그는 다리에 무리가 와서 그만두는 날까지 3주 동안 매일, 우리에게 사진과 정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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