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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vvvvvibra Jun 24. 2019

나는 덕분에 얼마든지 꿈꾸며 살았다.

So long, woody. So long, friend

※스포주의


"나 제작년, 그러니까 너 처음 만났을 때 종종 너랑 사귀는 상상을 하곤 했거든"


너는 빙수를 먹던 숟가락질을 멈춘 채로, 나를 또렷히 응시했다.


"야릇한 상상말고 손 잡는거, 야자끝나고 놀이터에 앉아 쌍쌍바 나눠먹는, 나이에 맞는 순수했던 상상들 있잖아. 그 상상이 전부 현실이 되긴 했지만"


너는다시 빙수를 한 입 베어문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그랬듯, 시선은 부끄럽다는 듯 나를 피했다. 평소처럼 짗굳게 왜 눈을 피하냐는 장난은 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찍으려 습관적으로 꺼내는 카메라도 들지 않았다.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보면, 이런 상상들은 꽤나 어렸을 때 부터했어. 돈 걱정 하는 엄마에게 수 천만원을 턱하니 준다거나, 학교 축제에서 멋드러지게 노래를 부른다거나 그 때의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터무니 없는 상상들 말이야"


언제부터 그런 상상을 즐겨했냐는 너의 말에 곰곰히 생각했다. 


"나 유치원 다닐 때, 엄마가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왔던 '토이스토리1'를 처음 본 이후였어 이렇게 재밌는 상상들을 하게 된게"


너도 맞장구쳤다. 나도 그거 본 이후로 바비인형이 밤마다 깨서 놀 거라고 생각했다고, 어두컴컴한 새벽에 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걷다가 넘어지지 않게, 책상의 스탠드를 키고 잤다고 말했다. 나도 그랬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손오공과 베지터가 혹여나 싸울까 잠들기 전에 베지터는 서랍에, 손오공은 내옆에 놓고 잠들곤 했다.


"그때부터 이런 상상들이 일종의 습관이 됐나봐. 나중가서는 재밌더라고, 그 때는 이루어지길 바라서 상상을 한게 아니었어. 그저 재밌던거지"


요즘도 그런 상상을 하냐고 네가 물었다. 


"너랑 하고 싶은게 생기면 너의 반응이 어떨까하는 상상은 많이해. 그 외엔 안하지, 시간 아까워" 


다음 말이 목끝까지 차올랐을 때, 문득 네 손을 포근히 잡고 싶었다. 너의 손은 피하지 않았다.


"목적성 없이 순수하게 너와의 시간을 상상했던게 내 행동에 영향을 줬을거야. 나의 그 상상들은 내가 너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줬거든"


토이스토리가 맺어준 연인이라며 네가 웃었다. 빙수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영화 늦겠다. 이제 일어나자. 토이스토리 이번 편이 시리즈 완결이래. 나 울면 어떡하지?"


손수건 챙겼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토이스토리3> 영화표를 살랑살랑 흔들며 웃는 너의 모습이 어쩜 그리 예뻤을까.



9년만에 네 번째 토이스토리가 돌아왔다. 우리가 9년 전에 토이스토리3을 기다리면서 나눴던 대화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그러나 나눴던 대화처럼 더이상 그런 상상은 하지 않는다. 이제는 잘 안다. 상상해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이뤄질 수 있다 해도 기다리고 버텨내기에 내가 마주한 현실은 너무도 현실이라는 것. 9년이 걸렸지만 토이스토리는 돌아왔다. 그러나 우디는 완전히 떠났다. 우린 그러지 못해도 토이스토리4 덕분에 그 날의 추억은 돌아왔다. 그리고 너는 우디처럼 완전히 떠났다. 괜찮다. 너는 우디처럼 네 할 일을 다 마치고 떠난거니까. 나는 토이스토리 덕분에 상상했고 그 상상은 너에게 다가갈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네 덕분에 얼마든지 꿈꾸며 살았다. 그러니 너도 우디처럼 편안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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