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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vvvvvibra Jul 04. 2019

인터뷰_근황

잘 다니던 홍보회사를 그만둔 퇴사 2개월 차의 백수(자칭 사진가)를 만났다. 평소의 그 답지 않게 너털웃음을 지으며 먼저 악수를 청했다. "심심해 죽겠는데, 연락 줘서 고마워. 인터뷰 재밌을 것 같아. 글 쓰고 있다는 것 때문에 도와달라 한 거지? 사진은 안 필요해?" 당신이 이렇게 살가웠나 싶다.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회사 다닐 때 만났던 당신은 세상의 염세란 염세는 다 갖고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커피 한 잔을 들이킨 후 근황 인터뷰를 시작했다.


Q. 퇴사한 지 두 달이라고 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사진을 찍었다. 정확히 말하면 보도사진이다. 나만의 취재 프로젝트 '서울을 취재합니다'를 시작했다. 6월까지 약 25곳 정도 돌아다니며 수 천장 정도 찍은 것 같다.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사진기자 준비의 일환, 포트폴리오를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Q. 사진기자를 따라다닌 건가? 정식 사진기자가 아니라 힘들었을텐데?


물리적으로 제약을 받는 건 없었다. 프레스 목걸이를 메면 입장할 수 있는 포토스팟 존이라든지, 프레스 존을 드나드는 건 부러웠다. 나도 사진기자라면 자유로이 드나들며 취재에 집중할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어쩔 수 없으니, 그들의 근처에서 그들이 어떻게 찍나 관찰하고, 따라 찍고, 나만의 앵글로 찍기도 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그 날 저녁 게재된 사진 기사와 비교해보면서 스스로 피드백했다. 아, 힘들었던 점은 하나 있다. 그들이 부러워서 힘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힘들다기보단, 꼭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간절함이겠다.


Q. 왜 사진기자가 되고 싶은가?


사진을 시작한 지는 5년 정도 됐다. 처음엔 마냥 취미였는데 점점 변하더라. 공공홍보, 공익광고를 좋아했던 광고홍보 학도가 사진에 빠져버리니 봐야만 하는 사진을 찍고 싶어 진 거다. 예쁜 사진도 좋고, 잘 찍을 자신도 있지만 나의 사진이 사회의 공기와 같은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사람들이 나의 사진을 보고 어떤 사회적 울림이나 느낌을 받을 때 엄청난 희열과 뿌듯함을 느낀다. 


홍보회사에서 일할 때도 언론홍보 담당이었다. 기자들을 자주 만났고, 사진기자를 대신해 여러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재밌었다. 잠자고 있던 꿈이 다시 눈 뜨게 된 결정적 계기다.


Q. 포트폴리오는 성공적으로 완성했나?


내 기준에 만족할 만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잠깐 쉬고 있으나 기회가 되면 몇 번 더 나가서 찍고, 추가하고 싶다. 공채가 뜨는 곳은 계속 지원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8월부터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함께 돌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Q. 왜 8월부터인가?


7월은 집에서 쉴 거다. 고향에도 내려갔다 올 거다. 퇴사한 지 거의 두 달을 채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 적은 손에 꼽는다. 4번? 


Q. 내가 당신 성격을 잘 아는데, 집에 가만히 있으면 죄책감 느끼는 사람이지 않나? 그런 당신의 입에서 쉬겠다는 말이 나오니 참 어색하다.


맞다. 나도 어색하다. 여전히 서울 집에 있으면 몸이 쑤시고, 마음이 좋지 않다. 하루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해서 그러는 듯하다. 친구들은 일종의 강박관념이라고 한다. 나도 아는데 사람 고쳐 쓰는 게 아닌가 보다.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청주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 가족이 주는 편안함 때문일까? 그곳에서는 다 내려놓고 쉴 수 있게 된다.


Q. 하루의 결과물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


사진, 가능하면 보도 사진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6월 1일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가서 내가 찍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을 찍었고, 남겼다. 그 결과물을 통해 내가 비로소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느낀다. 구의역 참사 3주기 추모제를 찍을 때도, 광화문 집회를 찍을 때도, 백사마을을 찍을 때도 똑같이 느꼈다. 


Q. 사진 말고도 그런 결과물을 얻어낸 적이 있나?


바로 어제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다가 저녁에 아는 형을 만나 밥을 먹고, 커피 한잔 시켜놓고 3시간을 떠들었다. 대화의 주된 주제는 내가 내 인생 살아가는 법, 남의 말이나 눈치에 흔들리지 않는 법, 수많은 외력을 버틸 내력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비슷한 방황의 시기를 먼저 겪은 선배로서 내게 해주는 조언,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우리의 주변인을 돕고 싶다는 의기투합 등 엄청나게 많은 주제의 대화를 나눴다. 나의 생각이 한층 더 깊어지는 대화들이 그 날의 결과물이었고, 난 살아있음을 느꼈다. 


Q. 하루의 결과물을 통해 나를 증명하거나, 성장해 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맞다. 증명은 기본이고, 성장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사실 이런 뿌듯함을 지난 1년 10개월 동안 일할 때보다 두 달 사이에 더 많이 느꼈다. 퇴사 잘한 거라고 얘기해라 빨리.


Q. 당신 얼마 전에 나한테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게 됐다며 기뻐하던 거 기억하나?


... 전전 직장에서도 퇴사 계획은 가지고 있었다. 동기부여가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직장에서 더 이상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전 직장으로부터 좋은 조건의 입사 제의를 받게 됐고, 이직했다.   


Q. 그래 놓고 한 달 뒤에...


알아. 나도 알아.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몰랐던 거다. 필요한 건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이 아니라, 원하는 일에 대한 도전이었다. 무섭더라. 도전에 나이 제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 2019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나는 평생 도전하지 못한 걸 후회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차선책의 경력과 능력이 주는 안정감에 취해 얌전히 살 것 같았다. 그래서 사진기자에 도전하려고 나왔다. 결과가 좋든, 안 좋든 최선책에 대한 도전은 해야 인생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아서.


Q. 지금 상황에 대한 불안함이 없진 않을 텐데?


끊임없이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눈 결과, 나를 덮쳤던 내 불안함의 5할은 남들과의 비교였다. 비교하면 끝이 없지 않나. 그래서 나만 보고 있다. 내가 가진 것들도 보며 그렇게 살고 있다. 나머지 5할의 불안함은 또렷이 존재한다. 앞날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뭐 굶어 죽겠나? 사진 잘 찍고, 하루하루 꾸준히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살아가는데 내 이런 행동들이 내 미래에 대한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어떤 쪽으로 든. 나사 빠지지 않게 조심은 해야지.


Q. 꼭 사진기자만을 바라는 건가? 포토그래퍼나 사진작가 같은 건?


그게 사진기자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울걸? 기약이 없지 않나, 아까 말했듯이 난 최선책에 대한 도전을 2019년 그 이후까지 끌고 갈 생각이 없다. 투잡 시대니까 언젠간 가능할 거라곤 보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내 사진이 갑자기 확 뜬다면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사진은 평생 찍을 거다. 언젠간 내 사진관을 차리고 싶다.


Q. 사진관? 노후 계획 같은 건가?


그렇긴 한데, 로또 되면 바로 차릴 거다. 콘셉트도 이미 몇 가지 정해뒀다. 사업 기밀이라 말은 하지 않겠다.


어 그래 Q.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공채 지원해놓은 곳이 있다. 그 곳의 결과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1차 붙으면 2, 3차 준비한다고 바쁠 거다. 부디 그랬으면 한다. 떨어진다면 7월 열심히 쉬고 8월부터 열심히 포트폴리오도 보내고, 재취업 준비도 할 거다. 어떤 길이든 멘털 잡고 정진, 그러니 지켜봐 줘라.


Q. 전전 직장이나, 전 직장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나? 받아주겠다 했다며


사람이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 이 있는 거다.


Q. 미안하다. 근황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의 정체성을 사진과 연관 지어 설명해달라


나는 길거리와 사람 그리고 포토저널리즘을 사랑한다. 나는 누구든 봐야만 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고, 나의 사진으로 인해 누군가는 희망을, 반성을, 사태의 심각성을, 사랑을, 행동의 동기부여를 얻길 바란다. 나는 당신의 또 다른 눈이다. 


Q. 고생했다. 잠깐 쉬고 인터뷰 이어가자. 다음 인터뷰의 주제는 연애다


끝난 거 아니었어? 또 해? 갑자기 연애라고?


눈치채셨나요?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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