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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Apr 01. 2021

국제결혼 부부들을 보며

대화가 동일 국적 부부의 80% 수준까지는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젊은 날 연애를 시작할 때나 관계를 맺을 때는 그리 깊은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남녀 간의 감정이란 것은 뭐 그닥 가치관이나 철학에 맞지 않아도 얼마든지 연애를 할 수 있을만큼 발전할 수 있다. 첫눈에, 첫 만남에 스킨십을 넘어 깊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그래 난 관대하다.(두둥 x1)


하지만 연애라도 좀 깊게 할라치면, 길게 가져가면 그런 남녀 간의 충동과 끌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1년 이상 사귈만큼 길지 않아도, 자주 오래 같이 할수록 대화가 되어야 지속가능하다. 더 깊어지는 것도, 결국 가치관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야 하고 그려려면 대화의 폭과 넓이와 깊이가 모두 중요하다. 대화의 질과 양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부부가 된다는 건, 가족들의 교류도 필요하게 되고 더 나아가 아이를 키우면서 부딪히게 될 다양한 일들에 부모로서 같이 고민하고 방향을 잡고 이끌어 주거나 서포트해주어야 하는데 그럴 때 대화의 수준이 낮고 깊은 이야기가 힘들며, 애매하고 미묘한 표현이 되지 않는다면 절망스러운 일들이 펼쳐진다. 필연적이다.


나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지만 많은 국제결혼 부부를 알고 있다. 겉으로만 아는 사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국적과 모국어를 쓰는 부부는 대화를 조금만 해보아도 그 부부 간의 대화의 수준도 파악이 된다. 그리고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중학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화를 하고 산다고 추정된다.


부부가 서로 다른 모국어를 가졌는데 그 중 하나가 아니라 영어를 쓰는 경우, 문제는 두 명의 영어 수준이 모두 각자의 모국어에 바탕을 둔 브로큰 잉글리쉬에 사용하는 단어도 중학생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케이스가 절대다수다. 또한 부부 중 하나의 모국어를 배우자가 맞춰 쓰는 경우에 그 배우자가 학교에서 정규과정으로 언어를 습득하고 일정 정도의 수준에 올라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또 역시 좋다, 싫다, 맛있다, 재미있다 수준의 대화만 가능하다. 바디 랭귀지?그건 초면에, 대화 불가능한 사람 간의 소통을 돕고 또 어느 정도 소통이 원활할 때 조미료가 되어 소통을 돕는 것이지 부부가 한 배를 타고 수십 년을 가정을 꾸리고 경제 생활과 양육과 교육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소통의 수단은 아니다.


가끔, 띠동갑 이상의 나이차가 나는데 남자가 중년에 여성이 서른 이하일 경우 선입견은 극히 강화된다. 이럴 때 대화가 초등생 수준으로 이루어지는 걸 보면, 혹은 조금만 일상회화 수준을 벗어나 진행되면 부부 중 일방이 눈 초점이 풀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주변을 보기 시작할 때면 결말이 눈에 선해진다.


물론 그러고도 오래 잘 살 수 있다. 아이들은 내버려두면 알아서 크고 교육은 자기가 배우고 싶으면 학교에서 배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통하면 그만이지 하고 오래 잘 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부부와 우리 부부가 인간 관계를 맺을 일은 생기지 않는다.


몸의 대화만큼 실제 대화도 깊어야 하고 넓어야 한다. 소위 속궁합이 중요한만큼 겉궁합도 중요하다. 가치관이 맞고 말이 잘 통하고, 관심사가 비슷하고 취미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부부가 잘 살 수는 없다. 그 부부 중 최소한 일방은 외도의 길로 인도될 것이다. 성은 그만큼 중요하다. 최소한 40대까지는. 50대는 모르겠다 안 살아봐서. 지금 내 몸 상태와 성적 욕구의 정도를 봐서는 중요할 것도, 아닐 것도 같다.(두둥x2)


반대로 섹스의 합은 잘 맞는데 지적 욕구와 생활의 필요충분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역시 그냥 상호간의 청춘의 즐거움으로 끝나는 게 맞다. 결혼 생활은 길고 지루한 고난의 길이다. 이 여정에는 두 사람 말고 각자의 가족과 미래의 아이와 양육과 교육이 뒤따른다. 그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서로의 성적 매력이 추락하기 시작하며 그 때 비로소 인간성과 가치관, 그리고 두 사람이 자녀로서 자라왔던 20여년 간 각자의 부모에게 받은 무형의 상속자산 등이 그 부부관계가 훗날 바닥을 뚫느냐, 보합세에서 추후 반등하냐를 가늠한다.


성적 매력이 부부관계의 시작과 근본이 되어야겠으나 그건 아이를 갖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과정, 결혼 생활 시즌 2에서는 부부 모두에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이건 최소 아이가 2살 정도까지, 최장은 한이 없다. 운 좋게 서로 노력하여 아이 두 돌을 지나면 다시 시즌3가 시작되는데 두 사람 모두 성적매력을 다시 갖추고 기본 욕구만 충족하던 짐승 같은 양육의 시기를 지나 이제 자녀교육의 시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아이가 말을 하고 걸어다니며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시즌 3는 대화를 요구한다. 시즌 3가 시작된 부부가 대화의 양과 질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은 내리막을 뜻한다. 둘 중 하나가 버틸 수는 있고 어쩌면 둘 다 존버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희망했던 행복은 안녕이다.


대화는 그만큼 중요하다. 섹스도 오르가즘까지 느낄 수 있어야 하듯, 대화도 지적충동과 욕구를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양질의 대화의 끝엔 오르가즘과 비슷한 뭔가 충만한 세상이 펼쳐진다. 몸의 대화와 실제 대화가 모두 질과 양을 충족하면 안정감은 따라온다. 둘 중 하나의 밸런스가 무너질 때 어렵사리 지탱되는 부부 관계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이다.


물론, 양쪽의 국적이 다르고 모국어가 다르면 같은 국적의 부부만큼 대화의 수준이 나올 수는 없다. 이때 관용적인 태도와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가 충돌을 막아주고 이해의 폭을 넓혀줄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 인성이 갖춰진 부부라면 걱정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본 국제커플들은 그렇지가 않...(두둥x3)


아무튼, 부부 간에 주제불문 심도 있는 토론까지도 가능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속궁합과 성적취향이 맞더라도 지혜, 지식, 마음 이 셋 중 둘은 서로 맞아야 길고 긴 고난과 역경의 결혼생활, 끝도 없는 시험의 나날들을 이겨낼 수 있다.


"더 솔직히 말해줘? 셋 다 맞아도 힘들어."(두둥x4)






오늘은 내 주변, 서른 살 이상의 나이차를 가진 국제결혼 부부와 초등학생 3학년 수준의 대화를 하는 국제결혼 부부들을 보며 드는 생각을, 어제 아내가 띠동갑 국제커플을 보고 한 몇 마디 말들이 생각나서 적어봤다.


이제 결혼 15년, 이미 영겁의 세월을 지내온 것 같은데 앞으로도 45년은 남은 것 같다. 이를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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