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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렌 Apr 14. 2021

사춘기 딸아이의 옷을 사주며

나는 원래 쇼핑을 좋아했지.

딸아이의 옷을 사주고 있다.


아, 당연히 아기였을 때부터 옷을 사 입혔다. 당연히. 그런데 아이가 점점 클수록 아이들의 옷을 사는 것은 아내와 함께일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열 살이 지나 점점 여자, 남자의 외모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는 같이 옷을 사러 가도 아들 옷은 내가, 딸애 옷은 아내가 좀 더 관여했다. 아이들도 이렇게 할 때 편해하는 느낌도 들고 쇼핑 자체가 좀 더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감이 있었다. 딸은 나보다는 아내의 추천을, 아들은 엄마의 말보다 내 권유를 더 따랐다.


한편, 이곳에서는 옷 쇼핑을 함께 다 같이 즐기는 일이 한국에서에 비하면 줄었고 - 워낙 연중 내내 똑같은 옷을 입으니 사시사철 옷을 바꿔 입는 서울에서의 삶에 비하면 단조로운 탓이다 -, 선택의 폭도 한정되어 있기에 아이들 옷을 사는 것이 약간 더 뭔가 할 일을 하는, 살짝 의무감이 드는 일이 되었다. 이는 아내가 그다지 쇼핑을 즐기지 않는 탓도 있다. 연애할 때부터 아내는 내 옷 쇼핑하기를 더 즐겼고, 본인은 알아서 일하기 편한 복장, 업무에 적합한 옷을 실용적으로 혼자 휙 가서 구입하는, 해치우는 편이었다.


우리는 결혼과 출산, 이어지는 양육 과정과 이민을 거치며 그렇게 즐기는 쇼핑에서 점점 거리를 두었다. 최근 2-3년은 특히 그저 순수한 필요에 의해 구입하게 되는 일이 더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문득, 아이들 모두 키가 160cm를 넘어 얼추 어른에 가까워져 가고 향후 1-2년 사이에 어른 몸이 될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이제는 아이들 옷 브랜드가 아닌 성인 옷 브랜드에서 옷을 구입해도 되는 때라는 걸 깨달았다. 전에 어느 순간 아이들 옷이 사기가 힘들어졌던 것은 이제 아동복은 안 나오고 성인 옷에서 고르기는 치수가 애매한 시기가 왔기 때문인데 때마침 코로나로 외출이 더 줄었던 탓에 이 시기가 온 줄 몰랐던 것이다.


이에 아내에 비해 쇼핑이나 스타일에 관심이 더 많은 나는 아들 옷은 물론 딸애 옷도 직접 사 보기 시작했다. 아내는 사지 않는 스타일, 여기 옷가게나 쇼핑몰, 백화점에서는 잘 팔지 않는 스타일의 옷을  단골인 해외 사이트에서 찾아서 모바일로 구입했다.(이곳에서는 전형적인 한국 스타일이나 이 나라 스타일이나 좀 다 별로다.) 이 사이트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팔다보니 사이즈가 굉장히 애매하고 편차가 데, 크면 아내가 입으면 되니 까짓 거 사이즈 차트가 애매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 구입하는 것이니까 배송 이슈가 있어서 단순히 사이즈 문제로는 반품이나 교환하는 게 만만치 않은데 딸아이와 아내의 키가 이제 몇 센티 차이도 나지 않으니 어느 정도 부담을 던 것이다. 아들은 아직 나와 차이가 좀 나지만 내년 초만 되어도 170cm는 넘을 테니 아들도 내가 실수로 구매한 작은 옷을 입어도 될 것이다.


무튼, 그래서 나는 한때 아내 옷을 사던 생각으로 딸아이 옷을 사기 시작했다. 티나 상의부터 바지, 원피스 등을 사봤다. 사이즈 문제로 실패도 있었지만 대체로 모두 제법 잘 어울린다. 아이도 좋아라 하고 아내도 탐을 낸다.


렇게 내가 사 입힌 옷을 입은 딸애를 보니 아내와 연애할 때, 신혼 때 같이 옷을 사러 다니고 새 옷을 입던 아내를 보던 기분이 조금 나는 거다. 오호라.


가만 생각해보니 아내도 아들 머리스타일에 나보다 더 관심이 많은데 비슷한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내야 원래 쇼핑을 즐기지 않고 필요에 의한 쇼핑을 하는 타입이라 딸애 옷을 사면서 나처럼 신나게 고르고 구입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무튼 나는 이제 어딜 가도 사이즈 문제로 골치가 아프지도 않고 비슷한 감성으로 옷을 사 입혀도 되니 좋다. 나중엔 슬슬 같이 고르며 좋은 취향을 알려주고 스스로 스타일을 만들 수 있게 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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