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날엔 몰랐는데 일어나보니 칸쿤 호텔 방 안의 침대 옆에 메모가 놓여 있었다.
약 3일 동안 이 호텔에 머물면서 혼자 이 큰 방을 차지하고 지냈다.
처음엔 룸메이드에게 1달러만, 두 번째 팁부터는 2달러를 침대 위에 올려 놓고 나갔다.
그런데 팁을 1달러만 받겠다며 고맙다는 내용의 그런 메모였다.
그리고 팁에 대해 꽤 고마웠다는 걸 표현하려 한 건지는 몰라도 침대에는 전 날과 다르게 커다른 리본 표시와 화장대 쪽엔 수건으로 만든 학이 정갈스레 놓여져 있었다.
마침 방을 청소하러 온 선한 인상의 그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녀가 만들어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전날 침대에 올려두었던 2달러 중에서 나머지 1달러를 자기 손에 든 채로 이미 오늘의 팁을 받았다며 환히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뭐랄까, 이렇게 아침의 환한 한 순간을 내게 선물해 줘 고맙다는 인사로 1달러를 손에 더 쥐어주고 돌아섰다.
# 칸쿤 공항의 '에어로 멕시코' 카운터에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는데, 여자 직원이 오라고 손짓하더니 이것저것 확인 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며 서두르라며 재촉했다. 내가 빠듯하게 왔구나싶어 서둘러 수화물을 부쳤다.
오전 11시 56분 출발 비행기. 칸쿤에서 한 시간 이십여 분의 비행 시간 후면, 드디어 쿠바에 도착한다.
숙소는 이메일을 먼저 보내 대충 예약을 한 상황이었지만, 막상 쿠바에서 어떻게 보낼지 계획이 그리 서 있는 게 아니여서 그랬는지 비행기 안에서 사실 걱정이 조금 앞섰다.
그간의 피로감때문이었는지 기내에서 곯아떨어졌고, 어느 덧 빠르게 쿠바 공항에 다다랐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쿠바 땅에 처음으로 걸어들어섰을 때 뭔가 만감이 교차했는데..
그런 거 있잖아, 쿠바땅을 밟긴 밟았구나.. 그리고 청명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 입국 심사장에는 이미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심사를 위해 줄지어 서있었다.
본능적으로 쿠바에 입성한 많은 외국인들의 모습 보단 공항 안의 쿠바 현지인 모습부터 더듬게 되었다.
그러다 군살없이 몹시 날씬한 몸매의 안경을 쓴 이지적인 인상의 한 흑인 여자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내 앞 쪽에 줄을 선 서양 남자 관광객 두 명에게 여권을 확인하며 질문을 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공항 직원이 먼저 다가와 물어보기에 어느 정도 긴장을 하며 최선을 다해 대답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점점 친절해진 표정으로 남자 관광객들에게 질문을 하며 대화도 주고 받는 모습이었는데, 이윽고 몇 마디 후에 다소 수줍어하는 듯한 미묘한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괜찮은 남성과 대화한 후 약간 상기 된 채 옷매무새를 신경쓰는 여느 여인처럼 그녀 역시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의식하듯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다른 입국자들에게는 뭘 물어보거나 확인하진 않은채.
어디를 가나 비슷한 풍경은 또 비슷하게 이어지는 것 같다.
# 수화물 찾는 곳에서 짐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공항 안의 불이 꺼지며 기계도 멈췄다.
공항 안의 정전이라니.
너도나도 휘파람이며 탄식 비슷한 소리도 흘러 나왔다.
당황스러웠지만, 뭔가 슬핏 웃음이 나는 그런 상황.
이내 짧은 시간 후에 불이 다시 들어왔고,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수화물 컨테이너 속도도 참 느렸는데, 뭔가 느릿느릿 작동하는 그 곳에선 여유가 답이었다.
세월아 네월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짐을 찾는 동안 무려 네 번이나 정전이 됐다.
# 짐을 찾은 이후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공항 밖으로 나오자 택시를 외치며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계속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움직이기 이전에 달러를 쿠바 돈으로 어서 환전을 해야 했기에 환전소를 찾아보니 공항 밖에 딱 한 군데가 있었다.
환전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니 이미 내 앞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짐 찾기에 이어 또다시 시간 안에 늘어지게 있어야 했다.
멕시코에서 달러를 거진 사용한 터라 조금 더 생각을 갖추고 멕시코에서 달러를 미리 인출해 왔어야 했는데, 허겁지겁 오느라 그러질 못했다.
수중엔 달러가 그리 많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물가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쿠바니까 이 정도 달러면 급한대로 오고 가는 택시비이며 하루 숙박비정도는 대충 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겨우 겨우 한 시간여를 줄을 서서 기다린 뒤 달러를 쿠바 돈으로 환전하는데 남자 직원이 환전하는 돈이 이게 다인건지 그런 표정으로 물어봤다.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그가 내민 외국인 전용의 쿠바 화폐인 '쿡'은 금액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바꾸기 위해 내밀었던 달러 금액과 거진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온 쿠바 돈을 다 합해보니 내 손에 몇 장 쥐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좀 당황스러웠다.
오기 전 정보에 의하면, 쿠바에서 ATM 이용하기란 매우 어려우며 돈도 소액으로 계속 환전해서 사용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 잠시 고민이 들었다.
그때 사실, 쿠바 공항 내의 ATM에서 달러든 쿠바 '쿡'을 찾으면 돈 부분은 간단히 해결될 부분이었다.
그런데, 바보같이 낡은 쿠바 공항에선 ATM 찾는 건 무리일거라는 생각으로 공항 내 오직 하나뿐인 환전소에서 있는 돈을 다 털어 빨리 환전하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ATM 사용도 무리이고 지금 환전한 현금도 다 떨어지면, 쿠바에서 체크카드와 신용카드만 써야 하나..카드가 되는 곳만 찾아가야 하나..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돈을 환전하고 나오자 비교적 단정한 인상의 택시 기사가 익숙한 듯이 택시 이용을 요구했다.
제안이 아니라 거의 확신에 찬 요구 수준이었다.
나보고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봤을 때 주소를 내밀자 30쿡을 불렀다.
오기 전 정보에 의하면 공항에서의 택시비용은 거진 25쿡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30쿡은 비싼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내가 가는 올드 하바나는 뉴하바나보다 먼 곳이라며 이 비용은 아주 당연하다고 확신에 찬 듯 말했다.
앞자리가 3인 30쿡은 뭔가 비싸보이고, 바가지가 맞지 않을까 싶었지만, 뭐랄까 짐찾기와 환전에 지친 나는 안전하고 빠르게 주소지로 이동하고팠다. 저렇게 확신에 차 나를 이끄는 택시 기사를 안 지 오 분여도 채 안됐지만, 뭔가 적어도 안전하고, 신속하게 데려다 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냥 내 바람이었을지도/당시 바가지가 맞았다)
택시 안에는 호주 국기가 꽂혀 있었고, 코알라 인형도 보였는데, 기사 얘기를 들어보니 호주인을 게속 안내하면서 선물로 받은 거라고 했다.
말하는 내내 상당히 자랑스럽게 말을 했는데, 멕시코에서 호불호가 극히 갈렸던 호주인들을 보았던 터라 나는 약간 냉냉하게 들었던 것 같다.
쿠바에 오긴 했구나.
나는 어떤 여행으로 채워나가려나.
환전 금액도 적은데 남은 숙박비랑 생활비는 잘 찾아서 쓸 수 있으려나. 혹여나 돈 없이 쩔쩔 아끼고 사려가며 지내려나. 멕시코와 달리 핸드폰 데이터 사용도 안되고, 전화도 안되는 쿠바에서 내 생사여부를 가족과 지인들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 아마도 거의 못전하겠다싶고.
멕시코에서 보냈던 기억으로 생각이 이어지다가도 아차, 지금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드디어 여기에, 쿠바에 왔으니 생각일랑 접어두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자, 어떻게든 잘 되겠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