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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l 12. 2024

좋아 보이면 10수쯤 접어줄 수 있지

행복은 가까이 있다. 하루 고생을 씻어내리는 샤워, 시원한 물 한 잔, 잔잔히 흘러나오는 반가운 음악. 그런데 샤워 거품에서 좋아하는 시트러스 향이 난다면? 물을 담은 컵이 손에 딱 맞게 가볍다면? 스피커 음질이 좋아서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면? 가까운 행복이 더 커진다.


일상을 좋은 것들로 채우고 싶다. 양말 살 때 후기를 보고, 샴푸에 들어가는 성분을 따지고, 유리컵이 내열 유리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수건. 매일 쓰는 것이니만큼 조금은 사치를 부릴 만하다. 온갖 브랜드의 다양한 수건을 사 보았다. 맨살에 닿을 때 폭신하고 부드러울 것, 긴 머리카락의 물기를 빠르게 흡수할 것.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마침내 정착한 것이 코마사 40수. 이 정도면 씻고 나오는 순간만큼은 호텔 부럽지 않다. 그랬는데.


며칠 전 30수짜리 수건을 들였다. 10수나 적었는데 심지어 비쌌다! 제정신이었다면 사지 않았을 거다. 예쁜 게 가득해서 눈이 돌아가는 편집샵, 그곳에 귀여운 토끼 가득 그려진 수건이 있었다. 예쁜데 쓸모까지 있는 물건이라니 이걸 안 사면 어디에 돈을 쓰냐고 덥석 가져왔다. 가계부를 쓸 때쯤에야 정신이 돌아와 아차 했는데, 뽀송하게 마른 수건을 욕실에 걸자 뭐 어때 싶어졌다. 햇빛 하나 들지 않는 곳이 밝아 보일 정도였다. 번갈아가며 만지면 40수 수건이 더 부드러운데, 그렇게 수건을 비교하며 쓸 일은 없으니까 상관없다. 상관없고말고. 이렇게 좋은데!


좋아 보이는 게 중요하구나, 정말 그런지만큼이나. 평소에 물건을 고르는 방식과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도 다른 결론이었다. 일할 때 특히 그랬다.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엔 일부러 관심이 없었다. 정말 일을 잘 하는 것만이 중요하니까. 인맥만을 위한 네트워킹도 하지 않고,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프로필 사진도 한 장 없이 살았다. 실속이 최고지, 내심 자랑스럽게 여기던 방식이었는데. 그게 최선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복잡할 것 없다. 좋아 보이는 건 대개 좋은 것이다.


일단 포트폴리오 디자인부터 바꿔야겠다. 내가 한 일들이 더 좋아 보이도록.



* 인스타그램에서 더 가까이 만나요! > @summer_un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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