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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환 Dec 28. 2022

3년의 운전연습,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과 떨리는 마음

감독관은 연신 브레이크를 밟았고, 나는 이제 그만 탈락시켜 줬으면 했다.

 올해 마지막 일주일 간의 휴가. 갑자기 든 옅은 몸살에 월요일을 온통 잠으로 보냈다. 개운했다. 화요일 오후 즘에서야 미룬 운전면허 시험을 치렀다. 무려 '19년도부터 3년 간의 미룸과 중단, 그러니까 3번의 필기시험 그리고 6번의 기능시험 뒤 치른 첫 도로주행 시험이다.



 

 서로 알게 된 지 2년이 채 안 되는 내 배우자는, 내게 그렇게 하기 싫으면 운전면허를 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솔깃- 했었지만, 그녀는 친구들 혹은 부모님들과의 식사 자리가 생기면 늘 자신감 찬 얼굴로 그 말을 꺼냈다. '언젠가 우리에게 위급한 일이 생기면, 예를 들어 출산이 임박했다거나 하는 상황이 생기면 본인이 한 손으로는 배를 잡고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으면 되는 일이라고.' 그럴 때마다 주위의 사람들은 내게 운전면허를 빨리 따라고 협박했고, 그때마다 배우자는 그들에게 한 달 만에 합격한 운전 면허증을 자랑했다. 굳이 운전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유튜브와 시물레이션 학원 만으로 세 번의 기능시험, 두 번의 주행시험 끝에 합격했다고. (그녀에 비하면 나는 빅바이어이자 호구인데, 지난 3년간 운전면허를 위해 쏟아부은 돈이 250만 원 정도이다.)


 12월 초에 2주간의 긴 휴가가 있었다. 팀장님은 내게 휴가 기간 동안 무엇을 할 건지 물어보았다. '운전면허나 따 보려고요.'라고 말하자 주위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드디어 따는 거야?', '주행시험을 칠 때 알려주면 코너마다 현수막을 들고 서 있을게.', '면허를 딴다고 말한 지 5년은 지난 것 같은데.'(5년 아니고, 정확히는 3년이다.) '휴가 끝날 때 면허증 들고 오는 거야?' 그분들의 표정을 보고 생각했다. 이제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고.


 와이프가 다녔던 집 근처의 시물레이션 운전학원을 찾아갔다. '-씨 남편 분이세요? 큰 결심을 하셨네.' 그 말에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고작 면허를 따는 게 큰 결심을 할 일인가 하며. 하지만 내겐 큰 결심인 게 맞는 말이라 반론할 순 없었다. 운전을 해 본 적 있냐는 말에 나는 자신감 있게 이미 기능시험을 합격한 이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물레이션 시험을 치렀는데 2시간 내내 실격되었다. 그리고 긴 휴가 동안 매일 운전학원을 출석하게 되었다. 가볍게 시험 삼아 먼저 쳐본 기능시험은 가볍게 떨어졌고, 무거운 마음으로 치른 두 번째 시험은 로드콘을 짓눌러버려서 탈락했다. 착잡한 마음으로 치른 세 번째 시험에선 비상 깜빡이를 켜둔 채 가까스로 종료선을 최저 점수로 통과했다. 감독관에게 물어보았다. 왜 깜빡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냐고. 감독관은 짜증 난 투로 비상등을 켠 채 운전하지 않았냐 말했다. 그리고 원서를 받아 돌아가는 내게 수고했다고 상냥하게 웃어주었다. 아마 내 나이를 본 듯했다. 착잡했다.




 또다시 12월 말 일주일 간의 휴가. 첫 도로주행 시험을 향하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겁다. 어제 가벼운 몸살을 핑계 삼아 하루종일 누워있던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럴 때면 바쁜 와이프에게 머리가 아프다 말하기도 그렇다.) 늘 30분 일찍 도착해 긴- 순번을 기다리다 사람들이 빌 때 시험을 치르던 예전과 달리, 가까스로 지각을 면했다가 첫 순서로 다급하게 출발했다.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마다 숨죽이며 도로를 응시했다. 옆자리 감독관은 연신 브레이크를 밟았고 나는 이제 그만 탈락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스스로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게 놀라웠다. 내가 이처럼 유약한 사람이었나. 갑자기 든 노란 신호에 정지선을 넘었고 실격처리되었다. 감독관은 첫 시험 치고 꽤 잘했다고, 하지만 코너링을 더 연습해야 한다 말했다. 다음날 다시 운전학원에 출근했고 두 시간 동안 코너링을 연습했다. 늘 칭찬받던 회사 밖 세상. 쉬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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