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 Mar 11. 2024

수족관을 다녀오면서.

생각보다 생각이 많아져 브런치로 쓰게 된 이야기.


주말에 아쿠아리움을 다녀왔다. 잠실에 있는 아쿠아리움인데, 여긴 벨루가라는 흰돌고래가 살고 있어 유명한 곳이다. 오후 여섯 시를 넘어서 입장하니 아이들이 많이 없어 주말임에도 쾌적하게 관람 가능했다. 사진도 많이 찍고, 여러 수중 동물들을 보고 나왔다. 그리고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족관과 동물원이 괜찮은 공간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F처럼 즐기고 집에 와서 T처럼 고민하는 나) 생각을 기록하다 보니 호흡이 길어져 간만에 브런치로 남겨본다.


1. 10% 정도 불편함

내게 수족관과 동물원 관람 행위가 얼마나 불편할지, 수치로 생각해 봤는데 한 10% 정도로 결론 내렸다. 생명체 중 가장 강하다는 이유로, 다른 생명을 가둬두고 전시하여 지켜보는 행위가 10% 정도 불편하다니. 정말 T발놈인가? 싶었지만 그럼에도 90% 정도 괜찮았던 이유는 꽤 여럿 있었다.


2. 90%가 괜찮은 이유

수족관과 동물원이 이전처럼 가둬둔 생명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번 잠실 아쿠아리움에서도 의외의 전시공간들이 있었는데, 빙하가 녹아 서 있을 곳이 없던 북극곰과 펭귄의 그림도 있었다. 멸종 위기종과 같이 인간의 도움이 필요한 종은 교배를 통해 성공적으로 새끼를 낳은 동물도 있었다. 나아가 아픈 동물을 치료하는 공간, 물속에 버리면 쉽게 썩지 않는 물품들도 전시 돼 있었다. 이런 공간들은 아이와 어른에게 다시 한번 경각심을 주는 공간이 됐다. 즉, 오히려 곁에 두면서 이들을 더 잘 알게 되고 공생의 방안을 제안하는 모습. 충분히 순기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벨루가에게 사람 이름 같은 명칭을 붙이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나아가, 편협한 인간에 맞춰 '귀여운 생물'만 전시하진 않았다. 물론 수많은 생명체 중 그래도 상업성이 있다 판단한 생물들을 전시했겠지만, 예전처럼 지나치게 편중돼 전시하지 않았다. 보기에 징그럽거나 별로 인기 없어 보이는 물고기들도 충분히 많았다. 이런 물고기들은 보호가 필요하거나, 사람들이 알고 배려가 필요한 종인 경우가 많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원은 귀여운 생명체 위주라 예외일 것 같다..)

새우에 먹히는 플랑크톤이 불쌍하다 느끼는 사람은 없는데, 갈매기에 잡아먹히는 아기펭귄은 측은하게 느낀다. 사실 대부분의 인간은 편견 속 자연을 이해하고 있다.


또한, 수익성이 없는 시장에서 '배려'나 '양보'를 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의 노력은 선한 마음이 기반이 되지만, 대부분의 큰 동기는 수익이 난 상태에서 시작된다. 어찌 됐건 내가 낸 입장료에서 일부는 생명체를 위해 쓰이게 된다.(아주 미약할지라도) 이런 절차 외에 내가 생명체 보호나 지원을 위해 기부할 공간은 찾기 어렵다. 세상의 시선이 모일수록, 감시자가 많아질수록 그 세상은 더럽혀지기 어려워진다. 수족관과 동물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생명체에 대해 조심하고 더 나은 방향을 생각하게 된다.

수족관 관람을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나만의 90%의 세 가지 이유였다.

3. 그렇지만 다시 10%가 불편한 이유

그럼에도, 10% 정도 불편한 건 어찌 됐던 가둬져 있는 생명체의 의사를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가둬져 불행하다는 시선 역시 인간 기준 사고지만, 대부분 생명체가 좁은 공간에 있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사실이다. 자연에 돌아가 먹이사슬에 의해 잡아 먹히는 것보단, 이곳에 있는 것이 나을 것이란 생각도 고정관념이 된다. 반대로 가둬진 이 생명체를 먹고사는 다른 생명체는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인간이 자연에 개입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사례는 사실상 없다. 우린 여전히 인간 외 생명체와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가둬져 오래 사는 것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위험을 감수하는 세상. 어느 세상이 나을지 우린 동식물에게 물어보지 못했고 답을 듣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인간만이 판단하고 해석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점은 수족관 관람의 10%의 불편함을 가져다주었다.



4. 그냥 웃고 넘어갈 이야기들

즐겁게 보고 왔지만, 사실 주변에서 수족관 관람이 불편한 분들이 있어 이야기를 듣고 생각한 뒤 글로 써봤다. 주변의 대화에서 생각이 정리되는 경우도 있고, 심정적으로 결론은 정해져 있었는데 여러 논거를 붙여 구체화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수족관 관람에 대한 내 이야기는 후자에 가까웠다. 생명체를 보러 갈 때 죄책감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으니까. 오늘 글로 내 행동의 이유를 조금 더 들여다보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90%의 즐거운 마음으로 관람을 할 것이다.

동물 애호가 분들, 자연을 중요시 여기는 분들은 너그럽게 넘어가주셨으면 한다. 그분들의 시야에선 말도 안 되고 부족한 글이 뻔하기 때문에. 나 역시 조금씩 더 살아가며 깊은 사고와 다양한 경험이 더해지면 언젠가 이런 논리도 달라지겠지. 양해를 구해본다.


별개로 잠실 아쿠아리움에 갇혀있던 벨루가는 바다로 나갈 준비를 서서히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시점이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벨루가를 잘 아는 사람들은 드넓은 자연으로 나가는 것이 벨루가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결정했다. 드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벨루가를 생각하면 조금 설렌다. 사람의 도움을 얻어 적응력을 높여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꽤나 이상적이다. 이번 벨루가의 성공적인 자연 적응이 이뤄진다면, 멸종 동물들에게 인간이 학습을 하고 돌려보내는 일들에 대한 비판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 날 힘겹게 한다면. (feat. 게임이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