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오랜만에 쓴다. 6화 정도 길이의 극본을 구상하고 1화 대본을 쓰다 말았고, 소설도 구상했지만 글을 쓰는 건 오랜만이다. 사실 업무상 필요한 글, 일지도 쓰고 있지만 글을 쓰는 것은 오랜만이다.
내 감정과 생각을 쓰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글을 쓸수록 나에게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내 글을 읽고 좋다고 하지만, 결국 내 글은 어디에도 제대로 팔리지 않았다. 좋다고 한 것도 거짓말 같았고, 나를 뽑지 않은 것도 거짓말 같았다. 그럼에도 괜찮았다. 글은 원래 무용하고, 글이 돈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삶은 변하지 않는다.
직장에 있는 것이 점점 괴롭다. 하는 일에 환멸이 느껴지고 마주하는 사람들과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없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불행한 일들이 부드럽게 오기를 바라지만 가장 지쳐있을 때 나를 기습한다. 바라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내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더 자세히 쓰고 싶다. 하지만 직업윤리가 내 입을 막아선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을 세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단순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불행하다. 겨우 직장에서의 역할을 해내고 그 직장을 통해 삶을 겨우 지탱한다.
그런데 요즘 글을 쓰는 게 특별한 행위인양 구는 사람들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글을 쓰는 나에 들떠있고 취해있는 사람들이 자주 보여서 괴롭다. 거기까진 괜찮은데 사람 봐가면서 설명하거나 가르쳤으면 좋겠다. 전에는 사람이 처음 뭐 배우면 그럴 수 있지 싶었는데 자꾸 보이니 짜증 난다.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들을 수준도 아니고, 이제 그 누가 그런다고 해도 짜증 난다고. 매대에 쌓인 소설만 봐도 짜증이 나는데.
장르 문학은 괜찮다. 대부분은 충실하게 자기 소임을 다하니까. 순문학에 관해선 나중에 자세히 쓰겠다.
세상에 다 이상한 것들 뿐이다. 가끔 생각해보면 학교라는 존재도 그렇다. 도대체 학교는 왜 있는 걸까. 그토록 아이를 기르는 것이 싫어서, 기르기 버거워서 학교라는 곳에서 사회화와 교육을 맡아서 하는 건데 왜 그렇게 일말의 감사함과 고마움도 없이 적대하거나 하대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그렇게 적대할 거면 자기가 홈스쿨링을 하지. 학교를 무슨 정치인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인심 쓰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으니 이러겠지.
그냥 난 학교에 관해선 영원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난 충분히 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다.
후회하는 것은 나를 의심하지 말고 떠나고 싶었지만, 여전히 견딜 힘은 있었을 때 떠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도망치고 싶을 때 더 도망치지 못하도록 나 스스로 견고하게 이 삶에 결착시켰다는 점이다. 삶은 멈추질 않고, 나는 늙어가고 내 안전판들도 낡아간다.
난 매일 퇴근 후에,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삶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누군가 얘기해줬으면 하고 생각한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거짓말 이어야 한다.
* 헤더 사진은 박솔뫼의 미래 산책 연습 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