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 2018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를 영화관에서 봤다. 동네에 이걸 상영하는 영화관이 이럴 때 행운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영화가 끝난 뒤,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사이에 껴서, 서로에게 서로가 듣고 싶지 않은 말과 소리를 전하지 않고, 천천히 둘러서 걸어올 수 있었으니까.
멕시코의 로마를 배경으로 어느 가정의 입주 가정부로 일하는 클레오의 이야기이고,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클레오는 주차장에 매일 쌓이는 개똥을 치우고, 빨래를 하고, 백인처럼 보이는 가족의 음식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그 집의 아이의 옷을 갈아 입히고, 잠을 재우고, 대문이 열릴 때 개가 뛰쳐나가지 않게 붙잡고 있는다.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사람이라면, 추가 결제없이 볼 수 있는 영화이지만, 트위터와 인터넷 상의 시네필들의 호들갑 때문에 영화관에서 봤다.
"영화관에서 꼭 보셔야 합니다." 같은 말들이었다.
이유가 뭐였더라. 난 그들이 영화관에서 보셔야한다고 한 이유가 뭐였는지 기억을 더듬으면서 작은 영화관에 앉았다.
영어와 스페인어는 일반 자막
미스텍 어는 괄호 안의 자막
그외 언어 자막 없음
이 자막이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떴다. (정확한 건 아니다.)
미스텍 어는 주인공 클레오의 모국?어다. 클레오는 같이 입주해서 가정부 일을 하는 동료와 이야기할때는 미스텍 어를 하고, 집주인 가족과 이야기 할 때는 스페인어를 쓴다.
안온한 집의 풍경이 펼쳐지고 클레오는 말이 적다. 이따금 동료에게는 미스텍어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클레오는 이 집의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의 위치에 있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주인공이자 화자이기도 하다. 후반부에 가면 큰 일을 겪은 클레오의 말은 극도로 적어진다. 말이 없는 클레오는 영화의 중심에 여전히 있지만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로마의 중산층 가정이 겪는 이야기의 화자가 된다. (잠시지만) 그리고 클레오는 자신 안의 있는 말을 한다.
이런 극도로 절제된 화자는 주변의 풍경들을 도드라지게 한다.흑백의 화면은 천천히 인물들을 따라가고 이따금 클레오를 따라가길 멈추고 클레오가 있던, 풍경을 비춘다.
그리고 생활 소음, 거리의 소리, 로마의 소리들이 잘 들렸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쯤 왜 인터넷의 시네필들이 왜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라 했는지가 떠올랐다. 소리 때문이었다. 엔딩 크레딧을 보니 이건 쿠아론 감독의 의도이기도 한 것 같다. 제목도 로마니까.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로마. 클레오의 로마. 괄호 안의 로마.
[괄호 안의 말들] 을 둘러 싼 스페인어와 영어로 전달되는 백인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풍경'이 되고, 클레오가 동료와 같이 쓰는 방에서 뱉는, 자신과 똑같은 일을 하는 이들과 백인들의 파티에서 빠져나와 나누는 [괄호 안의 말들]이 그 '풍경'의 중심이 된다.
그래서, 영화가 좋았냐면 좋았다. 보시려면 영화관에서 보시길 추천하는데 소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트북이나 컴퓨터 화면과 일반 스피커로 봤을 때 는 좀 별로일 것 같아서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런 류의 영화. 백인들 결국에는 좋게 그려져....) 일단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