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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카 Jan 18. 2016

#epilogue. 굿바이, 방콕!

낫띵-래스트-포에버



“당신 직업은 뭐에요?” 


음, 나는 과연 내 직업을 영어로 설명했을 때 이 친절한 택시 기사님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짧은 고민에 빠졌다. 


“글을 쓰는 일이에요. 일종의 작가랄까요. 대중이 관심 있는 분야, 특히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죠.” 


오! 탑승했을 때부터 시종일관 친절한 얼굴로 웃던 기사님이 글을 쓰는 일이라는 말에 사뭇 놀란 기색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럼, 이번에는 태국에 대한 글을 쓰러 온 건가요? 아니면 영감을 받으러?” 


“뭐, 일종의 영감을 받으러 온 셈이죠, 저는 방콕을 사랑하거든요….” 


나는 지레 양심에 찔려 어물거렸다. 아, 글을 쓴답시고 노트북을 들고 온 사람이 정작 쓰고자 했던 글은 단 한 자도 못 쓰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무슨 운명적인 질문이란 말인가! 분명히 영감을 받으러 왔건만 영감만 받고 놀다 가는 길이라고는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나는 하하 웃었다. 영감을 받으러 온 건 사실이니까, 실제로 글을 썼는지는 차치하고 말이지.


다행히도 기사님은 태국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는지, 쓰고자 했던 글을 모두 썼는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이런 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얼마나 있다 가는 길인가요? 열흘? 혼자 왔어요? 오, 친구와? 하하, 친구를 보내고 따로 남을 정도로 방콕을 좋아하는군요. 방콕에는 처음인가요? 다섯 번! 여러 번 오셨네요! 오, 진짜 방콕을 사랑해요? 나는 이런 얘길 들으면 너무 기분이 좋아요…, 많은 외국인들이 방콕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기사님이 더 이상 내 직업에 대해, 내가 쓴다는 글에 대해 묻지 않는 데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물으셔도 관계는 없는 일이지만 영 양심에 찔려 어쩔 줄을 모르겠는 기분이었달까. 다행히도 수완나품이 보일 때까지 기사님은 그 이야기를 더는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이 기사님은 내가 ‘일종의 작가’이며, 영감을 받기 위해 ‘사랑하는’ 방콕에 왔다는 것을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수완나품 공항이 멀리 보일 무렵, 기사님은 진지하게 말했다.


“Nothing lasts forever라는 말을 알아요?”


예? 다소 난해한 태국식 발음에 내가 몇 번이고 되묻자 기사님은 아예 뒤를 돌아보고 한 단어씩 발음해 주었다. 낫띵-래스트-포에버. 음, Everything lasts forerver? 내가 첫 단어를 잘못 알아듣고 되묻자 기사님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낫띵-래스트-포에버! 아무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고요.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들어본 적 있어요. 기사님은 그제야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태국은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사람들만 변하는 게 아니라 나라가 모두요. 태국 사람들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많이, 빠르게 변하고 있죠. 다음번에 태국에 오면 또 태국은 변해 있을 거에요. 누구도 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요. 아무 것도 영원한 것은 없어요.”


그렇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기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모르고 멍하니. 하지만 기사님은 내 의아한 기색에도 아랑곳 않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쉬워하지 말아요.”


기사님은 웃었다.


“방콕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방콕이 어떤 모습이든지, 당신은 여기에 올 때마다 당신이 사랑하는 방콕에서 무한한 영감을 받을 수 있어요. 방콕이 어떤 모습이든지 사랑한다면 좋은 글을 많이 쓸 수 있을 거에요. 그러니까 아쉬워하지 말아요. 낫띵-래스트-포에버. 결국 아무 것도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아! 나는 멍하니 기사님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이 다정한 기사님이 직접 내게 사진까지 보여주며 아무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고 몇 번이고 강조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겹다고, 이젠 옆 동네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자주 온 곳이래도 내가 사랑한 이 곳, 방콕을 떠나기가 그토록 아쉬웠나보다. 기사님이 그러니 아쉬워하지 말라고 다독거려 줄 정도로. 낫띵-래스트-포에버…. 나는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낫띵-래스트-포에버, 낫띵-래스트-포에버, 낫띵-래스트-포에버. 아무 것도 영원한 건 없어요…. 나는 빙긋이 웃었다.


모든 이야기에는 에필로그가 존재한다. 


조금 서툴게 말하자면, 열흘간의 이 여행에 이토록 완벽한 에필로그는 없을 것 같다. 낫띵-래스트-포에버. 아무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 순간의 감회도 어느덧 무뎌져 있는 것처럼.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수십 수백 번 이 글을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읽어대도 그 순간에 느꼈던 무언가를 망각해 가겠지.


하지만 좋다, 그래, 괜찮을 것 같다. 그 순간에 내게 반짝거리며 닿았던 무언가를 영영 기억할 수 없게 되어도 이제는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온 세계가 아름다웠다는 것을, 그리고 더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 잊지 않으려 한다. 그때의 온 세계가, 그리고 다가올 어떤 순간이 아름다운 것은 그 반짝이는 시효성 때문이라는 것도. 낫띵-래스트-포에버, 낫띵-래스트-포에버, 낫띵-래스트-포에버. 영원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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