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카 Jul 06. 2016

필립 로스, <에브리맨>

흔해빠진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책은 누군가의 죽음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평범한, 흔해빠진 어떤 죽음. 하지만 마지막 문장처럼, 이 장면이 가슴 아리고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이유는 죽음이 그토록 흔해빠졌기 때문이다. 병이나 사고처럼 불특정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모든 생명에 기다리는 당연한 운명. ‘살아있는 것은 모두 죽는다’, 혹은 ‘영원한 것은 비-영원성이라는 개념 뿐이다’처럼 모호하고 철학적인 문구로는 영영 죽음을 설명할 수 없는 것 같다. 글을 쓰는 나도, 읽는 당신도 결국은 죽는다. 사멸(死滅)은 시간이 흘러 지나가는 것처럼, 낮 뒤에 찾아오는 밤처럼 자연의 당연한 순리다.


<에브리맨>은 이 당연한 명제를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설명한다.


Philip Roth (1933~ )


나한테는 생존에 대한 뿌리 깊은 애착이 있어. 나는 여기서 빠져나갈 거야.


평범한 남자로 묘사되는 주인공―작품 전반에 그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은 언제나 죽음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 어린 시절의 탈장 수술부터,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던 심각한 복막염, 갑작스레 찾아온 심장 폐색증까지. 어렸을 때부터 병약한 몸을 타고난 탓에 여러 번 죽을 위기를 넘기며 얻은 일종의 강박이다.


모두가 그렇듯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은 대단한 것이라, 주인공은 소설 내내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강한 애착을 느낀다. 집요하게 묘사되는 젊은 여성에 대한 집착 역시 진정으로 성욕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다는, 젊을 때와 다르지 않다는 고집처럼 보이고, 형에 대한 질투심 역시 그의 절박함을 대변하는 듯하다(주인공이 형에게 질투심을 느꼈던 것은 화목한 가정 때문도, 사회적 성공 때문도 아닌 오로지 그의 생명력 때문이다). 


게다가 모두가 그렇듯, 그도 늙는다. 시간은 으레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던 것을 뺏어가고 주인공은 그것을 뺏기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안정, 생명력, 힘, 리듬, 창조성으로 묘사되는 젊음에 비해 노년은 불안정, 나약함, 무기력, 이질감, 무감각으로 그려진다. 퇴직 후 왕성하게 이어오던 창작 활동 역시, 노인들이 모여 사는 타운에서 점차 적어진다. 젊음은 창조다. 노화는 쇠락이다. 선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감각을 통해, 필립 로스는 천천히 시들어가는 노년을 잔인하게 묘사한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딸의 말에 위로를 받으면서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다고는 잠시도 믿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아직 젊고 힘있는, 아무 것도 잃지 않은 그들은 결코 알 수 없다. 사멸에 가까워 노인들이 무엇을 잃어가는지.


자신이 원하든 하지 않든, 사람은 늙고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작품은 주인공에게 찾아오는 노화의 과정을 천천히 설명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거대한 운명에 맞설 수 없는 나약한 개인으로 묘사된다. 어떤 운동이나 건강식품, 천하의 묘약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 노화라지만, 특히 주인공은 수 번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매번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구하고 생명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복막염이라거나 폐색증, 동맥 경화등을 묘사하는 필립 로스의 문체는 무미건조하기 그지없지만 그래서 더욱 공포스럽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칼날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 더욱 두려운 것은 그것이 나를 겨냥한 칼날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를 기다리는, 아무도 도망칠 수 없는 노화와 사멸의 칼날이다. 주인공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준비된 결말을 향해 천천히 걸어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 여자가 왜 저러고 있는지 아시오?”
“알 것 같군요.”
그도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말은 이런 뜻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게 내게 그랬듯이 저 여자에게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게 모두에게 그렇듯이 저 여자에게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인생에게 가장 혼란스럽고 강렬한 일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정말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단 삶을 맛보고 나면 죽음은 전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삶이 끝없이 계속된다고 생각해왔지요. 내심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아니, 댁이 틀렸소.”
남자는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저 여자는 늘 저랬소.”
그는 절대 용서 못 할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저 여자는 자기가 이제 열여덟 살이 아니기 때문에 저러는 거요.”


<에브리맨>은 노년을 전투라고 말한다, 가장 약하고 투지가 떨어질 무렵에 맞이하는. 그에게 노년은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다. 건강, 기억, 힘, 창조성, 외모, 사랑하는 사람…, 많은 것을 잃고 사그라드는 시간. 허나 그것은 너무나 흔해빠졌다. 모두에게, 살아있는 모두에게 예정된 현실이다.


그렇다, 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다.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