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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카 Jan 09. 2016

#4. 여행은 해프닝, 해프닝, 해프닝

반갑잖은 해프닝으로 가득했지만……

오늘은 하언니가 짧은 망중한을 즐기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우리는 일찌감치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고작 이틀 묵었던 곳이지만 체크아웃을 앞두고는 어쩐지 마음이 헛헛해졌다. 작은 기내용 가방에 짐을 꾸려 넣는 하언니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숙소를 떠날 땐 왜 항상 싱숭생숭한지! 심지어 방콕에서의 일정이 아직 남아있는 나와 최언니조차도 다소 울적한 기분이었다.


우울한 기분을 애써 걷어내고 가방을 숙소에 맡긴 채 람부뜨리 로드로 나왔다. 아침의 람부뜨리는 밤과 사뭇 다르다. 짜이디 마사지를 기점으로 건너편에는 두 개의 라이브 바가 붙어 있고, 밤에는 이 두 라이브 바에서 마치 어느 쪽의 가수가 목청이 큰지 경쟁하는 것처럼 왁왁 노래를 부른다. 실력은 둘째 치더라도 성량 경연장처럼 소리를 지르다 보니 조용한 밤은 꿈도 못 꾼다. 사실 우리는 어제 방콕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그중 하나의 바에 들어가 술을 마시려고 했으나 그 소리에 기가 질려 침묵만 지키다 나왔다. 우리는 흥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지만 주변에서 너무 즐거우면 오히려 쪼그라든다. 흥이 많긴 한데 수줍게 많달까.


낮의 람부뜨리는 조용한 생활감이 넘친다. 골목의 초입에서는 출근하는 사람들, 혹은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길거리 반찬 가게가 열리고―저렴한 가격에 밥과 반찬을 종류별로 구매할 수 있다―느지막이 일어나 구시가지의 아침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노천 까페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각종 길거리 노점상들이 슬슬 자리를 펴기 시작하고, 툭툭과 택시 기사들은 큰길가에서 열심히 호객을 한다. 예뻐요! 귀여워요! 왓 포? 왕궁? 신기하게도 한국인인 것을 귀신같이 알아본다. 비슷한 경험을 홍콩의 나단 로드에서 한 적이 있는데, 예뻐요 귀여워요 아름다워요 등은 비슷하고 뒤에 따라붙는 말이 가쫘시계 가쫘가방있어요인 것만 다르다. 이럴 땐 태연하게 이미 너무 많이 들어 지겨운 소리라는 듯이, 익히 알고 있으니 굳이 강조할 필요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가면 된다. 우리는 웃지도 않고 우아하게 오케이, 아이 노우, 대꾸를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을 헤치고 걸어갔다.


아침을 먹기로 한 곳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한 바비큐 전문점이었다. 종종 태국의 음식점에서는 외부에서 보이도록 커다란 식재료들을 걸어놓곤 한다. 오리라거나, 돼지라거나, 닭 같은 것들. 여기도 밖에 커다란 오리를 걸어뒀다. 뭐 오리를 걸어놓은 것이 오리 요리를 잘한다는 보장이 되진 못하겠지만 여튼 하긴 한다는 뜻이니 우리는 슬금슬금 가게로 들어갔다. 의외로 동남아에선 북경 오리 요리를 잘하는 곳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닭 요리 전문점만큼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들어간 곳 역시 베이징 덕 요리를 하는 곳으로 간단한 식사 역시 제공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덮밥과 파스타 등을 주문했다.


파스타와 덮밥. Copyright 2015, 최언니. All Rights Reserved.


덮밥에 올라간 달걀을 한입 베어 물자마자 으악, 나는 작게 소리를 질렀다. 인상을 찌푸린 나를 보고 언니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생각도 못했는데 삶은 달걀이… 짰다! 어제는 페퍼민트 티 플롯이더니만 오늘은 salted egg, 염지란이 내 입을 괴롭히고 있었다. 


이거 쨔아…. 입도 제대로 다물지 못하고 우물우물대는 나를 보고 언니들이 다시 폭소를 터뜨렸다. 내가 몹시 한국적인 입맛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체 달걀이 이렇게까지 짤 필요가 뭐란 말인가! 차마 뱉지 못하고 나는 잔뜩 얼굴을 구겼다. 얼마나 짜던지 달걀이 혀에 닿는 순간 극강의 짠맛에 침을 질질 흘릴 뻔했다. 


하여간 음식에 대해서라면 나는 그다지 운이 좋지 못하다. 더운 나라에서는 나트륨 부족 현상을 우려해 종종 간이 아주 짜게 된 음식이 나오는데 하필 그게 딱 걸리다니. 나는 그제야 부엌 근처에 붙어있는 SALTED EGGS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우물우물, 짠 달걀을 씹으며 나는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팻말을 원망스레 노려보았다. 홍콩에서 설탕을 잔뜩 탄 녹차―장담컨대 콜라보다 달았지만 당당히 LOW SUGAR라고 쓰여 있었다! 더럽지만 그 녹차만큼은 한입 먹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컵에 그대로 뱉어버렸다. 나는 그 녹차를 마신 이후로 우리나라의 단 아이스티는 진짜 홍차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서양인들을 일백 퍼센트 이해하게 되었다―를 먹었을 때만큼이나 충격적인 맛이었다.


메뉴 선택의 불운은 오롯이 내 담당이었으므로 언니들은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냈다. 간이 좀 짜다고 말했지만 염지란만큼은 아니었고, 그냥저냥 먹을 만한 한 끼였다. 배부른 우리는 게으른 사자처럼 어슬렁어슬렁 밖으로 나왔다. 하언니가 공항으로 갈 때 타기 위한 미니밴을 예약해야 했으므로 람부뜨리 로드의 여행사들을 돌아볼 참이었다. 


카오산 로드에서 바로 공항으로 간다면 택시나 버스, 혹은 공항철도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미니밴을 예약하는 편이 좋다. 길거리에 있는 여행사 부스에서도 쉽게 예약할 수 있고, 대부분 공항으로 가는 관광객들을 태워 정각마다 출발한다. 예약이 빨리 차므로 일찍 예약을 마치는 것이 좋다. 우리도 람부뜨리 로드에 위치한 한 한인 여행사에서 예약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알맞은 차가 없다고 이른 시간의 차를 타야 한다고 했다. 열한 시 반 비행기에 여섯 시 차를 태워보낼 수는 없어서 우리는 예약을 포기했다. 정 안 되면 돈 아껴서 택시라도 타고 가지 뭐. 하언니는 이미 반쯤 포기한 얼굴이었다.


다음 일정은 왓 포다. 만일 방콕에서 단 한 번만 타이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왓 포를 추천한다. 한 시간 기준 길거리 마사지 숍보다 200바트 정도 비싸긴 하지만 마사지사들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훌륭해 실패할 확률이 적고, 숍 내부 역시 청결하고 쾌적하다. 방콕에서 이틀을 지내다 가는 하언니는 궁이나 사원을 구경할 시간이 없었기에 우리는 관광과 마사지를 겸해 왓 포에 가기로 했다.


왓 포의 석탑들. Copyright 2015, 최언니. All Rights Reserved.


카오산에서 왓 포를 갈 때는 택시를 타면 된다. 수상보트를 이용해도 되고. 나는 처음 방콕에 왔을 때 미친 짓을 한 적이 있다. 카오산에서 왓 포까지 걸어간 거다. 하필 시기도 방콕이 가장 더울 때인 우기 직전, 5월 초였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날이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우면 일시적으로 머리가 멎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아마도 실제로 멎었으리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카오산에서 왓 포까지 택시를 타면 기본료 30밧, 약 1,000원 정도 밖에 들지 않건만 대체 왜 그랬을까. 먼 거리는 아니지만 땡볕에 단지 천 원을 아끼겠다고 걸어갈 만한 거리도 결코 아니다. 그깟 푼돈을 아끼겠다고 따가운 볕 아래 끝없이 걷고 또 걸었던 기억이 난다.


더 우스운 것은 그렇게 걷다가 비둘기 모이 사기꾼에게 걸려 결국 50밧을 털렸다는 거다. 비둘기 군집에 기가 질려 멍하니 선 나에게 사기꾼이 다가와 억지로 모이를 쥐어주었고, 움켜쥔 손아귀 속 봉투가 터지던 그 순간 나는 지옥을 보았다.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는데 첫 번째는 사람이 너무 놀라면 비명도 지르지 못 한다는 거고 두 번째는 비둘기는 매우 탐욕스러운 동물이란 사실이다. 


이후 나는 원래 좋아하지 않던 비둘기를 거의 혐오하게 되었다. 오, 신이시여, 우매한 자에게 50밧의 철퇴를 내리시나니 이후 택시를 이용하는 현명함을 체득케 하시고! 친구들은 간혹 내가 비둘기를 보고 몸을 부르르 떨면 의아해 하지만,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내게 달려들던 강렬한 기억을 이야기해 주면 이내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주의, 싸남 루앙 앞에서 집시처럼 보이는 여인이 당신에게 다가오면 백 리 밖으로 도망갈 것. 내가 방콕에 처음 가는 지인들에게 항상 해 주는 이야기다.


내 경험 덕분에 우리는 안전하게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왓 포는 대형 와불과 불탑으로 유명하다. 같은 불교 문화권이라도 석재나 목재 탑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의 탑과는 달리 왓 포의 탑들은 형형색색 다양한 모양을 뽐낸다. 우리나라의 석탑이나 목탑에는 고아한 맛이 있어 그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왓 포의 불탑 역시 나름의 멋이 있다. 특히 와불은 실제로 보면 감탄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운주사의 와불과는 달리 암반에 조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팔을 괴고 옆으로 누운 듯한 모양으로, 광택이 흐르는 금색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원을 쭉 돌아 와불의 발 쪽으로 내려가면 크기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귀여운 느낌이다. 아마도 그 세심한 발가락과 발가락 지문 때문인 것 같다. 와불은 실제로 사람이 누운 것처럼 하나하나 꼼꼼히 빚어져 있고, 심지어 발가락엔 하나하나 동글동글한 지문까지 새겨 뒀다. 그걸 보노라면 어쩐지 아기 발을 간질이듯 와불의 발가락을 조물조물 만져보고 싶다. 만지면 인자한 얼굴의 불상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릴 것 같기도 하고. 엄숙하게 가부좌를 틀고 있는 불상만 보다가 길게 누워있는 불상을 보니 친숙한 기분이랄까. 물론 그렇다고 만져본 건 아니다. 우리는 문화인이므로 교양 있게 와불을 보고 나왔다.


석탑 아래서 느긋하게 오후를 즐기는 고양이. Copyright 2015, 최언니. All Rights Reserved.


마사지를 위해 왓 포 깊숙이 들어갔다. 왓 포 마사지 숍은 사원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곳까지 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따라서 설렁설렁 걸어가면 된다. 우리는 잠시의 대기시간을 거친 후 각자 마사지 옷을 받아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마사지 옷은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뒨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글을 쓰는 지금도 줄이 달려있는 곳이 앞인지 뒤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한 기억에 뒤였던 것 같지만 확언하진 않겠다. 마사지 복을 들고 어디가 앞이냐며 잠시 당혹한 하언니에게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 주고 나도 슬금슬금 옷을 갈아입었다. 예전에 이곳에서 옷을 잘못 입어서 마사지사가 웃음을 참으며 제대로 입혀준 적이 있긴 하지만, 뭐 어떤가. 그냥 대충 입고 마사지만 잘 받으면 그만이다. 


마사지는 훌륭했다. 기본적으로 마사지 금액이 상당하긴 해도 그 정도 금액을 낼만한 퀄리티다. 오일 마사지는 고급 스파를 가는 것이 좋지만 타이 마사지라면 왓 포가 정말 최선의 선택이다. 특히 최언니는 크게 만족해 두둑하게 팁을 드리고 나왔다. 우리는 다같이 관절이 흐물흐물해져 노곤한 몸으로 카오산으로 돌아왔다. 하언니의 짧은 휴가를 위해 남은 하루를 즐거웁게 불태울 생각이었다.




다음 목적지는 간단한 간식을 위한 커피숍이었다. 카오산에 올 때면 내가 항상 가는 디저트 샵이 있다. THE FABULOUS. 경찰서 방향에서 카오산 로드로 진입해 오른쪽으로 보이는 세븐일레븐 근처 트루 커피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골목으로 쭉 들어가면 작은 광장을 두고 정면으로는 트루 커피, 오른쪽으로는 똠양꿍 전문점 똠양꿍―첫 방콕 여행 때, 나는 진미라는 똠양꿍을 먹어보겠다고 여기서 똠양꿍을 시도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한 적이 있다. 향취가 어지간히 강한 것이 아닌 데다, 유독 고수 냄새가 강한 음식이다. 뚜껑을 열었다가 그대로 닫고 나온 음식은 똠양꿍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이 있고, 왼쪽으로 THE FABULOUS가 있다.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곳이라기보단 현지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인 듯싶다. 개인적으로 이곳에서 파는 초콜릿 새틴을 좋아하는데, 우리는 여기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저녁을 먹으러 갈 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골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더니 건물을 모두 허물고 다시 짓는 중이었다. 헐. 뭐야! 우리는 망연자실 텅 빈 광장을 둘러보았다. THE FABULOUS 뿐만 아니라 트루 커피와 똠양꿍, 로컬 마사지 숍까지 모두 헐어내고 재건축 중이었다. 황망한 얼굴로 멀거니 선 우리를 보고 공사 인부들이 와르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여행에 가서 겪는 해프닝은 더러 시간이 지나면 즐거운 것으로 기억되기 마련이지만, 그날 겪은 일들은 대체로 재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짜디짠 소태 같은 달걀을 먹거나, 당장 공항에 갈 차가 없거나, 혹은 여행 전부터 꼭 가야지 마음먹은 가게가 없어지거나. 하언니를 보내야 하는 날이었기에 나는 내심 더 시무룩해졌다. 언니들은 아무 곳이고 들어가 간단하게 차 한 잔 하자고 말했지만 사실 기분이란 게 그렇다. 언제고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큰맘 먹고 나온 곳에서 일정이 어긋나면 맥이 다 빠지는 기분이다. 게다가 나는 여러 번 방콕을 찾을 때마다 이곳에서 카오산의 오후를 즐기곤 했다. 좋은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가 사라진 것은 내 추억의 한 조각마저 증발한 듯한 감상을 줬다. 에잇, 어쩔 수 없지만 속이 다 헛헛한 기분이었다. 달라질 것도 없건만 자꾸자꾸 뒤를 돌아보며 근처 2층에 위치한 한 까페로 발길을 돌렸다.


다행한 점은 이것이 전화위복이 됐단 거다. 까페를 찾아 올라가면서 한 여행사를 발견했다. 우리는 아직도 하언니를 어떻게 수완나품으로 돌려보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언니에게 돈을 좀 빌려주어 택시를 태워 보낼까, 아니면 다른 여행사를 찾아야 할까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와중에 까페 옆에 위치한 여행사가 보였다. 


저기 한 번 가 볼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그래, 가 보자. 언니들이 찬성했기에 현지 여행사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혹시 수완나품으로 가는 여덟 시 차가 있나요? 내가 묻자 더없이 너그럽게 생긴 주인아주머니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손을 휘젓더니 어디론가 바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살짝 불안해졌다. 미니밴이라는 게 여행사마다 하나씩 개인적으로 운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니밴 운영 업체는 따로 있고 여행사에서는 그 업체에 연결을 해주고 돈을 받는다. 한인 여행사에서 단호하게 이미 차가 남아 있지 않다고 장담을 했기 때문에 정말 모든 업체 차량이 전석 매진일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여기저기 전화를 하던 주인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덟 시 차 있어, 오케이? 헐, 있단다! 나는 떨어져서 기다리던 언니들에게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 있대 있대! 언니들은 꺅 소리를 지를 정도로 기뻐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예약증을 내주며 이것을 작성하라고 말했다. 최언니와 나는 예약증을 서둘러 작성하는 하언니를 두고 뒤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미니밴이라면 다른 어떤 교통수단보다 안심이다. 하언니가 일필휘지로 예약증을 적어 내자, 주인아주머니는 여전히 온화한 얼굴로 15분 전까지 여기로 와야 한다며 이따 보자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THE FABULOUS를 가지 못한 것은 여전히 아쉽지만, THE FABULOUS가 제대로 있어 거길 갔다면 이 여행사를 찾아오지 못했을 테니 해프닝이 뜻밖의 좋은 결과를 낳은 셈이었다.


까페에서 하언니는 전투적인 모습으로 빵 칼을 들었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문제가 해결되자 식욕이 돌아온 듯했다. 우리는 곧 마지막 만찬을 즐기러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원래 당장의 허기는 어떤 호화로운 만찬 약속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법이다. 얼마 전에 그맘때 사진을 다시 열어봤다가 혼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언니 얼굴에 온통 생기가 넘치고, 한 손에는 빵 칼을 한 손에는 버터를 들고 해맑게 웃고 있다. 세상에, 어찌나 인자하던지 와불이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뭐, 그럴 만하다 싶다. 교통편도 해결했고, 허기도 채웠으니 세상에 걱정할 것이 뭐가―사실은 있었지만 그땐 몰랐으니까, 원래 인생은 예고 없이 찾아드는 일들로 화려하게 망하는 거다―있으랴! 우리는 까페에서 한동안 노닥거리며 창밖을 구경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카오산의 까페, 그리고 비 오는 카오산. Copyright 2015, 최언니. All Rights Reserved.


우리가 까페에 있는 동안 짧은 폭우가 쏟아졌다. 다행히도 우리는 실내에 앉아 있어 전혀 젖지 않았지만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봉변을 당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나기는 예고 없이 쏟아지지만 동남아의 스콜은 차원이 다르다. 천천히 흐려지고, 한두 방울 물이 떨어지고, 그 다음에 쏴아 하고 쏟아지는 우리나라의 소나기와는 달리 그야말로 왁! 하고 쏟아지는 기분이랄까.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소나기는 여러분 준비하세요 우산도 꺼내 드시고요 우산이 없는 분들은 처마 밑으로라도 몸을 피하시고요 비가 옵니다아아아아아앙 이런 느낌이라면 스콜은 비온돸!!!!!!!!!!!!!!!!! 같은 느낌이다. 한 마디 주의나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무자비함은 가히 어디에도 비교할 수가 없다. 물론 그만큼 빨리 멎기는 하지만, 스콜이 올 때 무방비하게 거리에 서 있다가는 그저 옷 입고 샤워한 것이 차라리 나은 꼴이 되는 거다.


비가 서서히 잦아들고 거리에도 물이 빠지자 우리는 더 비가 오기 전에 레스토랑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원래는 다시 쌈쎈의 쪽 포차나를 갈까 생각했었는데, 미니밴을 잡아 둔 이상 집합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그냥 이 근처의 괜찮은 식당에 가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카오산이나 람부뜨리는 딱히 맛집이랄 만한 데는 없고, 대충 노천의 아무 레스토랑이고 들어가면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음식들을 즐길 수 있으므로 우리도 며칠 전부터 눈여겨본 곳으로 가기로 했다. 람부뜨리 로드의 사왓디 테라스였다. 첫날 숙소가 이 근처였는데 갈 때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데다, 짐을 맡겨 둔 숙소와도 그다지 멀지 않아 적합한 듯싶었다.


우리는 가서 마지막 만찬을 화려하게 즐기겠다는 각오로 온갖 요리를 다 주문했다. 팟 타이, 소프트 쉘 뿌빳뽕커리, 오징어 구이, 마지막으로 치킨 바비큐까지. 여기에 스팀드 라이스까지 추가하고 우리는 역시 너무 많지 않을까 잠시 고민에 잠겼다(미리 알려주는 정답: 전혀 많지 않았음)


많으면 싸 가면 되지. 음식에 있어서 언제나 나와 비슷한 취향과 사상을 공유하는 최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아님 남겨도 되고. 나도 태평하게 말했다.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 웨이터는 우리가 태국 사람이었다면 물었을지도 모른다. 혹시 일행이 몇 명이세요? 뒤에 더 오시나요? 우리의 영어도 짧고 그의 영어도 짧았기에 그냥 오케이 하고 가버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와 최언니는 귀국 이후 다시 유럽 여행을 떠나는 최언니를 배웅하기 위해 한 중식당에서 만났는데, 그때 그랬다. 꼭 지금처럼 푸짐하게 요리를 시키자 사장님이 매우 조심스럽게 저렇게 물어보셨던 거다. 나와 최언니는 똑같이 대답했다. 남으면 싸 가면 되죠. 아님 남겨도 되고요(다시 한 번 미리 알려주는 정답: 전혀 많지 않았음).


뿌빳뽕커리, 오징어 구이, 팟 타이. Copyright 2015, 최언니. All Rights Reserved.


팟 타이는 여전히 맛있었고, 소프트 쉘 크랩에 비벼 먹는 밥도 진미였다. 아, 언젠가 내가 아주 유명해져서 온갖 이상한 짓을 해도 사람들이 칭송할 정도가 되면 꼭 태국의 미식에 대한 진지한 유머로 가득한 책을 내고 말 테다, 빌 브라이슨처럼.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죄다 방콕에 모여들어 진미대행진을 하는 날을 나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진지하게, 과연 방콕이야! 이런 말이 언젠가는 맛있는 음식의 대명사가 될 날이 오리라. 


우리는 두말도 않고 조용히 식사에 집중했다. 미식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에 대한 모독이기에, 더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식사를 했대도 과언이 아니다. 몇 가지 음식을 먹고 있자 그날의 하이라이트, 치킨 바비큐가 나왔다. 다른 어떤 요리보다 우리는 이 음식을 기대하고 있었다. 초벌구이를 하고 소스를 끼얹은 닭 위에 발화점이 낮은 술을 붓고 즉석에서 불을 붙여 익혀주는 요리다. 철판구이 요리처럼 요리의 맛 자체보다 볼거리를 파는 요리 중 하나로, 잔뜩 기다리고 있던 메뉴였다. 우리는 수줍고 조신한 자세로 앉은 닭이 서빙되어 오자 일제히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치킨 바비큐. Copyright 2015, 최언니. All Rights Reserved.


예상치 못한 것은 생각보다 불이 활활 타올랐다는 거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최언니와 하언니는 나란히 앉고 나는 그 건너편으로 앉아 있었다. 비가 막 그쳐 선선한 바람이 언니들에게는 뒤바람으로, 내겐 맞바람으로 부는 셈이었는데 그게 문제였다. 알콜을 붓고 불을 붙이자 활활 타오르는 불이 바람의 기세를 업고 내 방향으로 무섭게 닥쳐들었다. 헉, 나는 몸을 뒤로 쭉 뺐다. 오오, 언니들은 신기해하며 동영상을 찍고 있었지만 나는 나를 덮치는 화기에 화들짝 놀라 내 머리를 사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때 내가 찍은 동영상을 보면 초반에는 신기한 듯 우와! 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후에는 이리저리 몸을 빼느라 앵글은 휘청휘청 흔들리고 감탄사 따위 들리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하다, 불이 정말 셌으니까. 나는 하마터면 아주 사랑스러운 3세 유아의 앞머리를 갖게 될 뻔했다. 


다행히도 놀라운 순발력으로 머리와 눈썹을 사수할 수 있었다. 나는 언니들에게 내가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언니들은 영상을 보고 화기가 이렇게 셌었냐며 화들짝 놀랐지만, 이내 걱정은커녕 영상이 잘 나왔다며 부러워했다. 아, 동생이 홀라당 머리를 태울 뻔했는데 신경도 안 쓰는 무자비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배신감에 몸을 떠는 나는 아랑곳 않고 언니들은 즐겁게 닭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에잇, 그래 먹자. 나도 닭에 달려들었다.


치킨 바비큐는 맛있었다. 우리는 약간의 잔해를 빼고 완벽하게 다 해치웠다. 역시 안 많았어. 최언니가 확신에 가득찬 말투로 말했다. 맞아. 하언니도 맞장구를 쳤다. 맛있는 음식에 과한 건 없는 법이지, 나도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은 모든 음식을 150% 정도 맛있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사왓디 테라스는 그것을 감안해도 꽤 괜찮은 레스토랑이었다. 이렇게 먹고도 한 사람당 300밧, 즉 10,000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가격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요리를 다 먹고 길거리를 내다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말 그대로 생각나는 모든 화제에 대해, 잠시도 쉬지 않고. 짧은 휴가가 끝나고 점점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아주 짧은 시간도 허투루 낭비하기 싫었다. 하지만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가는 시간을 붙들어 둘 수는 없다. 여섯 시 반이 지나 슬금슬금 하늘의 농도가 짙어질 무렵, 우리는 억지로 엉덩이를 뗐다. 이제 슬슬 숙소로 돌아가 맡겨둔 짐을 찾고, 각자 짐을 들고 하언니는 공항으로 우리는 다른 숙소로 향해야 할 시간이다. 하언니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운 듯 가기 싫다고 중얼대며 걷고 있었고, 우리도 농담 삼아 가지 말라고 하언니를 붙들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짐을 들고 람부뜨리에서 카오산으로 내려오자 어느새 날은 어두워져 있었고, 거리는 카오산의 밤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첫날 최언니와 내가 구경했던 카오산과 다르지 않았지만, 헤어짐을 앞두고 보려니 울적하기만 했다. 생각 같아서는 여권이라도 빼앗고 싶었지만 말마따나 그러다간 회사에서 하언니 책상을 빼앗길 판이라 나는 얌전히 자제했다. 


흑, 가지 마아. 최언니가 꼭 잡은 하언니 손을 흔들며 말했다. 하언니가 울망울망한 눈으로 말했다. 나도 가기 싫어어어…. 아, 그때 그 광경을 동영상으로 찍었으면 한 편의 절절한 신파극이 나왔을 텐데. 최언니와 하언니는 잠시간의 이별이 영원한 헤어짐이라도 되는 양 잔뜩 슬퍼하며 손을 맞잡았다. 나도 하언니와의 이별을 매우 슬퍼하고 있었지만 하언니와 최언니가 조금 부끄러웠다는 것은 비밀로 하자. 최언니와 하언니의 애절한 비극을 보던 사람들이 남몰래 웃음을 삼켰다는 것도.


곧 공항으로 가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통솔자가 수완나품으로 가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하자 우리는 손을 흔들어 하언니를 배웅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버스나 공항철도를 태워 보냈다면 맘이 안 놓였을 것 같다. 하언니가 못미더웠다는 것이 아니라,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사람이라 어떻게든 안전하고 편하게 보내주고 싶었다. 혼자 택시를 타고 람부뜨리로 올 때도 이렇게 가는 거 맞느냐며 몇 번이고 확인을 하던 것이 기억나 그런지 택시도 불안했고. 미니밴이라면 저렴한 가격에 공항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니 크게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공항에 도착하면 꼭 카톡하라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손을 크게 흔들었다. 하언니도 고개를 끄덕이고 환하게 웃으며 여행사를 나섰다.


아, 갔다…. 중얼대는 최언니의 말에는 허탈함이 묻어났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이틀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셋 중 하나와 인사를 하자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와서 불편하거나 피곤했다면 헤어짐이 반갑기라도 할 텐데, 우리 세 명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양 하나 불편한 것도 없이 즐겁기만 했다. 확실히 이럴 땐 우울하다. 처음부터 둘이었다면 몰라도 갑자기 사람이 하나 빠지니 맥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터덜터덜 캐리어를 끌고 택시를 잡으러 큰길로 나섰다. 날은 덥고, 하언니는 갔고, 하루 종일 여기저기 돌아다녔던지라 최언니나 나나 축 쳐져 있었다. 대충 손을 휘휘 내저어 택시를 잡고 있는데 안녕!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날아들었다. 아이고야, 사실 나는 뒤에 서 있던 최언니가 아무도 없는 허공에 하언니에 대한 인사를 보내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이 언니가 이렇게 감상적이었나? 반은 놀랍고 반은 민망해 하며 슬쩍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도 감상에 젖은 최언니가 아니라 하언니였다. 미니밴을 타는 곳까지 걸어가던 하언니가 킬킬대면서 놀란 우리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푸하하하,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잘 가! 진짜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하언니는 끝까지 서서 택시를 타고 멀어지는 우리에게 손을 휘휘 저어 인사를 했다.


세 명이 함께했던 휴가는 그렇게 끝났다. 반갑잖은 해프닝으로 가득했지만, 어쨌든 세 명이 함께했기에 가장 즐거웠던 하루였다. 전날 아시아티크에서 웃고 떠들며 어딜 가든 이렇게 즐거우니 우리는 이리 먼 곳에 올 필요가 없다고 농담 삼아 말했지만, 사실 처음으로 함께 타지에 나와 같은 생각과 같은 시간을 공유했기에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듯싶다. 장소와 시간이 달라져도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흐뭇한 사실을 만끽하며. 함께 보낸 시간이 어찌나 흡족했는지 나와 최언니는 하언니를 보내고 상당히 우울해 했고, 어딜 가든 하언니를 그리워했다. 아이고, 하언니랑 왔어야 하는데. 그러게, 같이 왔어야 하는데. 우리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여우처럼 말끝마다 하언니를 찾았다. 하언니도 먼 서울에서 카톡을 보내며 불과 어제인데 이미 꿈 같아 너무 아쉽다며 안타까워했다.


아, 마지막으로 다음날의 이야기를 미리 하자면, 하언니에게는 그 반갑잖은 해프닝으로 가득한 하루가 끝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 가장 먼저 하언니의 메시지를 확인했는데, 첫 마디가 이랬다. [나… 비행기 내일로 예약했었다?] 아이고, 최언니와 나는 육성으로 탄식했다. 오후 열한 시 반과 새벽 한 시 반 비행기 중 고민하다 열한 시 반 비행기를 예약하면서 날짜를 안 바꿨단다. 다행히도 한국인 부부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귀국하긴 했지만, 큰일 날 뻔했다며 하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푸하하하, 잘 들어간 게 천만 다행이네. 우리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행은 해프닝, 해프닝, 해프닝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날이 그걸 증명하기 위해 준비된 것만 같았다. 어쨌든 온갖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하언니는 시간에 맞춰 귀국해 언니 책상을 지켰고, 세 명이 함께하는 일정은 모두 즐거웠으니 된 게 아닐까. 다음번엔 꼭 휴가 맞춰서 오래 있다 오자, 우리 셋은 그때의 여행을 되짚어 회상할 때마다 이렇게 다짐하곤 했는데―이 정도면 꽤 성공적인 동행이었던 것 같다. 나는 기원하고 있다. 어디든, 언제든 상관없고, 글을 한 자도 못 써도 괜찮다. 언젠가 이 사람들을 꼭 양 옆에 끼고 다시 한 번 정처 없는 유랑을 떠나겠다고. 돌이켜 생각하면 이 여행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수확이 아닌가 싶다. 어떤 불쾌한 해프닝이라도 즐길 수 있는 여행 메이트를 남긴 것. 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즐거운 조합이라면 어떤 힘든 여행이라도 반드시 따라나서야지, 나는 그 밤 잠들며 깊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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