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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카 Jan 14. 2016

통계 전문가 파커 파인, 행복을 찾아드립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파커 파인 사건집>

Mystery : The duckoo 시리즈는 미스터리 덕후인 글쓴이가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떠드는 글입니다. 이 글은 지극히 사적인 관점으로 쓰여졌으며, 무맥락, 무소용, 무의미를 목표로 합니다. 





[Mystery : The duckoo] 통계 전문가 파커 파인, 행복을 찾아드립니다

애거서 크리스티 <파커 파인 사건집>

*애거서 크리스티 <파커 파인 사건집>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중에서 ‘덜 유명한’ 작품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 무리다. 추리소설의 여왕, 데임(Dame) 작위―여성에게 하사되는 작위로, 남성의 기사 작위에 해당됨―를 하사받은 최초의 추리소설 작가. 비단 추리소설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이 여류 작가야말로 가장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중 하나가 아닌가. 포와로부터 미스 마플까지, 장르물 마니아들이 최고로 꼽는 몇몇 탐정의 어머니이기도 하고. 


그래도 비교적 대중에게 덜 알려진 작품 중 꼭 한번 읽어 봐야할 작품을 하나 꼽아본다면? 포와로와 미스 마플이 나온 작품은 제외하고, <0시를 향하여>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 워낙 유명한 작품도 다 빼자. 만일 남은 작품들 중 꼭 봐야 할 작품을 하나 꼽는다면 이 작품이 아닐까. 탐정도 경찰도 아닌, 유쾌하고 명랑한 ‘통계 전문가’ 파커 파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파커 파인 사건집>이다.



Who is Mr. Parker Pine?


애거서 크리스티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파커 파인이 아님은 확실하다. 에르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의 유명세 탓인지, 안타깝게도 그녀의 또 다른 페르소나들은 그다지 유명치 못하다. 특히 파커 파인의 경우 14개의 단편에만 등장하는 캐릭터다. 파커 파인이라는 이름을 대도 ‘그게 누구?’ 라는 반응이 돌아올 법하다. 


허나 이 탐정, 일단 책을 펴면 매료되기 딱 좋은 캐릭터다. ARE YOU HAPPY? IF NOT, CONSULT MR. PARKER PINE(행복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파커 파인 씨와 상담하십시오) 라는 광고 문구는 자못 도발적이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홀린 듯이 파커 파인을 찾고, 자칭 통계 전문가 파커 파인은 각자에게 놀라울 정도로 걸맞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어쩜 그리 잘 아시나요?” 하는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다 통계 덕분이죠.”라고 대답하는 파커 파인을 보노라면 그가 갖고 있는 통계자료란 과연 어떤 것이기에, 궁금증을 감출 수 없다.


그의 매력이 단지 공무원 출신 통계 전문가라는 독특한 이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커 파인의 가장 큰 자산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다른 사람과 교감을 나누는 탁월한 능력’이라고 말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파커 파인이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페르소나보다 단연 우월한 것은 의뢰인의 사정을 단숨에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불안하고 슬프고 지루하고 불행하고 절망하고 욕망에 찬 사람들, 그들을 꿰뚫어보는 능력만큼은 단언컨대 미스 마플 이상이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언제나 기발하고 독특한 트릭보다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 사이의 긴장감과 이해관계를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범죄가 일어나기 전 사람들의 불안과 고통을 묘사하는 데 크리스티 이상의 작가는 없다. 그런 면에서, 사건이 일어나기 전(혹은 더 악화되기 전) 사람들을 이해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이 통계 전문가는 크리스티의 작품에 가장 적합한 히어로일지도 모른다. 


황금가지의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출처 http://goldenbough.minumsa.com/book/1409)


왜 <파커 파인 사건집>인가?


무엇보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면면이 눈길을 끈다. 간혹 어떤 단편에서는 서사보다 캐릭터가 빛나곤 한다. 물론 <파커 파인 사건집>이 내러티브가 부족한 작품은 아니지만, 의뢰인들의 면면은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는 종종 ‘어리석은 인간’들이 등장한다. 학벌이나 지위와는 관계없이 너무나 황당하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고, 자신의 신념을 절대선이라 믿는 사람들. 언뜻 보기에 너무나 고귀하고 우아해보이는 사람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고, 납득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파커 파인 사건집>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아내를 붙잡기 위해 파커 파인에게 찾아왔다가 도리어 자신이 젊은 여성에게 빠져버린 순진한 남편이라거나, 의협심에 불타 처음 보는 여성들의 말을 의심 없이 믿는 어떤 영국 신사라거나. 심지어 친구의 반지를 모조품과 바꿔치기하고는 몰래 되돌려놓고 싶다며 파커 파인을 찾는 부인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우매하고 어수룩한 인간으로 묘사될지언정 구제할 수 없는 절대악은 아니라는 점이다. <파커 파인 사건집>에 나오는 사람들은 더러 교활한 데다 용렬하고, 미욱하고 아둔하기도 하지만 하나같이 어딘가 마음을 끄는 데가 있다. 


크리스티의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무엇보다 인간이다. 사람들 사이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틈이 생기고, 아주 사소한 차이가 끔찍한 결말을 불러오기도 한다고 크리스티는 종종 지적한다. 이 단편집의 등장인물들은 그녀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준비된 것 같다. 우리가 그러하듯이, 어리석은 소리를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이 인물들은 우습게도 인간적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서도 ‘행복’을 찾아준다는 광고에 혹해 파커 파인을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니, 얼마나 우습고 가여운가!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을 리 없으련만, 그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은 때때로 당혹스러운 웃음을 자아낸다. 종종 자신이 사건을 찾아가는 포와로나 미스 마플과는 달리, 사건이 자신을 찾아오는 파커 파인의 이야기가 조금 더 유쾌한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간절한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실소를 선사하는 것이다.


12편의 단편이 실린 <파커 파인 사건집>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파커 파인을 찾는다. 불륜, 이혼, 사기, 도박, 절도, 모험, 살인 등 죄목도 다양하기 그지없다. 범죄 유형과 면면을 보자면 크리스티가 집필한 모든 미스터리의 축약판이래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언젠가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법칙’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칼럼을 써 보려 했었는데, 공식 완역판만 79권에 이르는 소설들을 모두 다시 읽고 통계를 내려니 너무나 방대한 작업이라 포기했었다. 만일 나같은 궁금증을 가진―혹은 어리석은 시도를 할―사람이 있다면 그를 <파커 파인 사건집>으로 대신해도 좋지 않을까. 다양한 캐릭터와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애거서 크리스티 월드의 집대성이래도 과언이 아니다.



파커 파인의 세계로 빠지는 일


의뢰인을 위해서라면 포와로와 미스 마플 이상으로 대담하고 과감한 행보를 서슴지 않는 이 유쾌발랄한 탐정의 이야기는 정말로 매력적이다. 아마 파커 파인이 그들보다 못한 것이 있다면 그저 작품의 절대량뿐일 터. 기나긴 밤 잠이 오지 않는다면, 혹은 크리스티 전집의 방대한 양에 기가 질려 어떤 작품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면 가장 좋은 선택 중 하나다. 망설임 없이 집어 들길, 그리고 파커 파인에 매혹되길 빈다 .



제멋대로 미스터리 지수

캐릭터의 의외성 ★★★★

트릭의 기발함 ★★

유쾌함 농도 ★★★★☆

주인공의 쇼맨십 ★★★

작품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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