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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루 Aug 31. 2020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던 날

조금 무서운 에세이


  움직일 수 없었다.


  어깨, 팔, 다리, 그리고 얼굴까지. 누군가 내 몸을 곧 통째로 삼켜버릴 것처럼 짓눌렀다. 위협을 느끼는 순간. 아주 거칠게 발버둥 쳤으나, 눈을 뜨진 못했다. 아늑해야 할 침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밀실 공포. 이럴 때 눈을 뜬다는 건, 어리석은 결정이 될 터였다. 당시 나는 아는 것보다 궁금한 게 많은 나이였지만, 보지 않고도 예상할 수 있었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는 건. 사람의 모습을 가장한 괴상한 형체란 걸.     


  처음 가위에 눌린 건 중학생 때였다. 한가로운 주말. 엄마는 밀린 빨래를 돌리고, 아빠는 야구를 보고, 오빠는 게임기를 챙겨 친구 집에 갔던 날이다. 나는 방문을 닫고 혼자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잤을까. 게슴츠레 눈을 떴을 때 방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허기가 졌다. 무언가 먹을 작정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어떤 압력에 의해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납작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침대 옆 커다란 창가에 빛이 들었다. 당시 내 방은 작은 다용도실과 붙어있었다. 그곳은 세탁실이자 창고로 쓰였다. 불투명한 창가에 누런 불빛이 들어오는 건. 대부분 엄마가 빨랫감을 넣거나. 또는 세탁이 끝난 빨랫감을 꺼내러 올 때였다. 가끔 불 꺼진 방에 누워있는데 다용도실에 불이 켜지면 짜증이 났다. 어쩐지 요청한 적 없는 ‘그림자 공연’을 보게 되는 것 같아서다.      


  한데 그날은 달랐다. 나는 동공을 창가 쪽으로 돌리고는 입을 벌리려 애썼다. 엄마 나 좀 도와줘. 소리쳐야 했으니까. 하지만 입도 맘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마치 입술을 굳어가고 목소리는 누군가 훔쳐 간 것만 같았다. 모든 게 제압당한 상황. 만약 저 누런 불빛이 꺼진다면, 짧은 내 15년 인생도 마감될지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든 도움을 요청해야 다. 나는 창가를 향해 벌리면 벌릴수록 비틀리는 입을 열어 어, 어, 어. 짧고 탁한 소리를 힘껏 꺼냈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세탁이 끝난 빨랫감을 부지런히 옮겨야 할 엄마 실루엣이 우뚝 서 있었다. 마치 서서 나를 내려보는 듯한 자세로. 나는 실루엣을 자세히 뜯어보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왜냐면, 실루엣은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결혼 후 한 번도 긴 머리. 그것도 긴 생머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실루엣은 엄마가 아니었다.      


  겁이 나서 눈을 감아버렸다. 점점 몸을 누르는 힘의 강도가 세졌다. 마치 다시 눈을 뜨라는 듯. 내게 경고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20여 년도 지난 일이 아직도 기억나는 건 ‘실루엣’ 때문이 아니다. 어떤 감각 탓이다. 형체를 확인하지 않기 위해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눈을 꾹 감았던 것보다. 그 형체가 내 위로 옮겨와 긴 머리카락으로 내 뺨을 간지럼 태우던 느낌. 이걸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던 날이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몇 번인가 지독한 가위에 눌린 적이 있다. 살면서 누군가는 경험하고, 또 누군가는 경험하지 않는 일. 굳이 겪을 필요가 없는 일을 만나고 난 후에 대체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따져본 본 적이 있는데, 공간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결론을 내렸었다. 가장 섬뜩했던 건 마지막으로 가위에 눌렸을 때다. 언젠가 공포물을 쓰게 된다면 마지막 기억을 꼭 녹여내리라 결심했었다. 물론, 이미 성인이 된 후에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면 ‘내가 겪은 괴담’이라며 지겹게 이야기했다.      


  몇 년 전 ‘가위에 눌렸다’라고 말하는 현상이 ‘렘수면’. 즉 자는 동안 깨어난 의식과 달리 근육이 깨어나지 않고 마비된 상태인 ‘수면 마비’였다는 걸 알게 됐다. 인체는 신비한 것이니 그럴 수 있다. 내가 귀신으로 추측하는 실루엣도 과학에서는 꿈에서 보았던 내용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환각’이라 한다.       


  난 과학을 믿는다. 하지만 가늘고 차가웠던 머리카락이 내 뺨을 간지럼 태우던 그 느낌도 생생히 기억한다.

  





  무더운 여름밤에 올리려고 써둔 글인데요. 긴 장마와 전염병으로 인해 축축한 우울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이제야 올립니다. ‘조금 무서운 에세이’를 써 봐야지. 마음먹었으나.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오늘도 하늘은 흐리네요. 부디 하늘도 일상도 맑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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