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최소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은 항상 꽉 차있다. 생각이 많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사실 삶의 질 향상에 때때로 악영향을 미치는 건 확실하다. 요가 수련의 마지막 사바아사나 자세를 취할 때조차 내 머릿속을 콕콕 찌르며 온몸의 긴장을 유발하는 달갑지 않은 것들. 신경을 곤두세우는 흩뿌려진 그것들을 모아 다른 공간으로 내보내고 싶을 때가 많다.
반갑게도, 간혹 풍선처럼 부풀던 추상적인 생각의 조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때가 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려진 결론일 때도 있고 가끔은 딱히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어떠한 경험을 한 뒤 무언갈 깨닫게 되는 찰나의 순간도 있다. 이렇게 정리된 생각은 다시 우뚝 설 용기를 준다. 형상화할 수 없지만 내 존재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디딤돌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긍정적인 생각은 금세 머릿속에서 잊히는 반면에 부정적인 생각은 현실과 깊게 맞닿아있어서인지 잊을만하면 새로운 형태로 떠오른다. 반갑지 않지만 자꾸 다가오는 그것들은 과거에 애써 잊었던 어둠까지 함께 끌고 오곤 한다. 이 것을 제 때 제대로 떨쳐내지 못하고 귀찮다고 외면하면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가 마음이 아프고 그러다가 몸이 아프고 어느 날은 가볍게 들던 2L 물병을 드는 것조차 힘겹다. 매일 마시던 물 한잔을 따라 마시는 게 그렇게 벅차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상황이 지속되지 않기 위해, 또 다가오도록 방치하지 않기 위해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정리된 생각을 분리하는 연습을 해본다. 정리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 이 불쾌한 것이 어떤 형태인지 설명하기 어려워 곤욕스러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연필 한 자루를 쥐고 하얀 무지 노트에 그것들을 흩뿌린다. 금세 뭉뚝해진 연필심 덕분에 글씨는 계속 뭉개져서 그림인지 글씨인지 분간이 어렵지만 손가락이 아플 때까지 뿌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오래 고민하던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이면 얇고 뾰족한 파란색 펜을 들고 줄무늬가 촘촘하게 채워진 빳빳한 노트를 핀다. 그리곤 또박또박 정리된 생각을 담는다. 무지 노트에 세네 장 휘갈겨 쓰던 것이 한 두줄로 요약되는 순간의 희열은 오래 묵은 체증을 내려준다.
무지노트와 뭉뚝한 연필심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는 요즘이다. 개운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애써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은 어떠한 형태로 묶어내 보려 하기보다는 일단 그냥 두기로 해본다. 정리된 생각의 탄생은 가끔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내기에는 어려운 걸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