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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집착

by 안나

"한입만 더~"


어린 시절, 늦잠을 자 퉁퉁 부은 얼굴로 급하게 책가방을 둘러메고 있을 때면 엄마는 항상 한입에 넣을 크기의 먹을거리를 준비해 줬다. 하얀 밥에 달콤하고 고소한 진미채를 올린 뒤 조미김을 싸거나, 호로록 먹을 수 있는 적당한 온도의 계란찜, 달큰 시큼한 유부초밥, 그리고 사각사각 한 조각의 사과 등.


"아, 나 늦었어!"

라며 신경질을 팩- 내다가도 그것들이 주는 작은 든든함에 반해 한입, 두 입 먹은 뒤 학교를 향해 달려가곤 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성장기 아이의 뱃속에선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나곤 했는데 그것이 살짝 부끄럽다가도 '내일은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 아침밥 더 먹고 와야지.' 하며 지키지 못할 약속을 스스로 하곤 했다.


극 예민 상태였던 사춘기 무렵에는 "한입만 더"가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안 먹고 가겠다는데 엄마는 그냥 그 시간에 쉬지, 왜 굳이 다 먹지도 않는 먹을거리들을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힘들게 계속 움직이는지. 다 먹지 못했다는 미안함은 화로 종종 번졌고 그것을 '밥 집착'이라 생각했다.


엄마뿐만 아니라 할머니 또한 "밥 많이 먹어. 다이어트 그런 거 하지 마. 왜 이렇게 말랐니." 라며 밥, 밥, 밥. 그놈의 밥 이야기뿐이었다.


호리호리한 몸이 유독 추앙받던, 스키니진이 유행하던 나의 대학생 시절. 나 또한 유행에 따르기 위해 소식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곤 했다. 그로 인해 분명 성인이었음에도 (내 기준) 나를 향한 밥 집착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했다. 먼저 아기를 낳은 지인들의 '밥 고민'을 종종 듣곤 했다.


아이가 분유를, 이유식을, 유아식을 잘 먹지 않아 스트레스라는 말에 "배고프면 자기가 더 달라하겠지. 그냥 안 먹으면 주지 마."라며 (그때 당시엔 쿨하다고 생각한)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툭, 조언을 가장한 참견을 얹기도 했다.


어느덧 나 또한 9개월 차 아기엄마가 되어간다.


"한입만 더~"


철분 섭취가 중요하다기에 안심을 사다가 갈아 이유식에 넣어 주었는데 아기는 먹을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도리도리 하며 푸-푸, 이유식을 내뱉을 뿐.


손목보호대를 한 채 작은 숟가락을 손에 쥐고 앙 다문 입안에 넣으려 진땀을 빼며 익숙한 대사를 반복하고 있는 내 모습에서 젊던 엄마가, 건강하던 할머니가 스친다. 처음엔 낯설더니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쿨하게! 밥 집착 따위 없이! 아기를 키우겠다던 나는 아기가 잘 먹는 날은 웃고, 잘 먹지 않는 날은 한숨을 쉬며 하루 섭취량을 열심히 체크해 보는 초보 엄마가 됐다.

비로고 되돌아보니 어릴 적 '집착'이라 여겼던 '밥' 챙김은 바쁜 아침마다 하루를 버틸 힘과, 남들이 정한 기준에 적합하지 않더라도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스스로를 아낄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이 됐다.


밥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나는 또다시 작은 내 아기의 힘의 원천이 될 밥, 분유와 이유식 열심히 챙기고 있다.


"밥은 요즘 많이 먹냐"던 할머니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서글퍼지지만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엄마와 아빠는 종종 바빠서 끼니를 거를 딸을 위해 맛있는 것들을 준비해 주시고, 잠시라도 식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열심히 기어 다니는 손녀를 맡아주시 밥챙김에 여전히 진심인 편이시다.


따듯한 '밥'을 챙겨 먹고, 또 소중한 존재에게 '밥'을 챙겨주는 익숙한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틸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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