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나무 Mar 09. 2024

주소지 없는 음악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






세월에 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입니다.

275년 전, 독일 라이프치히 성당에서 처음 연주되었을 B단조 미사도 오늘처럼 아름다웠을 겁니다.

신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바흐는 독일어로 시냇물이라는 뜻입니다.

베토벤은 말했죠.

'바흐는 시내가 아니라 바다다'라고요.

평생의 직장이 교회였던 바흐는 오로지 신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가르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그는 신의 곁에 앉아있지 않을까요?


좀처럼 잡하기 힘든 연주,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이 연주한 B단조 미사는 신을 찬양하는 가장 아름다운 도구가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난생처음 성당의 미사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때 들어본 미사 음악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지요.

음악의 아름다움이 회개로 이끌어가는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미사는 착해지는 음악입니다.

성 토마스 합창단의 보이 소프라노가 첫 곡, '키리에 엘레이손'을 시작하자 맨 처음 성당에서 느꼈던 감정이 오롯이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는 소리라고 할까요?

숨은 쉬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고운 미성이 폐부를 파고들었지요.


고음보다 저음이 편안합니다.

그러나 소프라노와 달리 그들의 고음은 사뭇 다른 맛을 내고 있었어요.

어린 본 새벽하늘에 뜬 샛별처럼 말입니다.

음악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하늘을 하늘색이라 하고 바다를 바다색이라고 하는 것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는 것처럼 음악은 그저 아름다운 위로일 뿐이죠.


술래잡기나 구슬치기 놀이를 즐기거나 가끔은 잠자리에 실례를 해도 용서가 될듯한 작은 어린이들이 합창단의 일원입니다.

한 자리에서 두 시간을 서서 견디는 것조차 힘든 나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200여 페이지가 족히 되는 한 권의 악보에 들어있는 수많은 음표 속을 거침없이 헤쳐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평화의 비둘기요, 날개 없는 천사였어요.

꽃봉오리처럼 어리기에 완벽의 미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뻤습니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더 맑고 눈이 부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어짐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행해지던 교회의 공식 예배 의식인 미사를 수백 년 잇고 있는 독일인들이 부러웠습니다.

소위 독일의 3B라 일컬어지는 바흐, 베토벤, 브람스는 미사곡까지 그 계보가 이어졌습니다.

베토벤의 <미사 솔렘니스>와 음악회를 위해 작곡했다는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 바로 그것이죠.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는 30여 명 내외로 축소 편성이지만 깔끔하고 담백한 사운드로 목소리를 부드럽게 감싸주었습니다.

특히 트럼펫은 연주 내내 별이 뿜어내는 팡파르처럼 청아하고 시원했지요.

독창자가 노래할 때는 솔로 연주자도 자리에서 일어나 연주하는 모습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지휘자의 의도려니 생각했는데 그건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합니다.


제16대 토마스 칸토르(지휘자)인 게오르그 크리스토프 빌러는 시종 웃는 낯으로 지휘했는데 전체 곡을 함께 부르더군요.

하지만 키리에로 시작하여 글로리아로 끝난 전반부에서 솔리스트들은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게 느껴졌습니다.

후반부에 교체된 테너는 훨씬 매끄럽고 탄력 있는 노래를 했고 마지막 곡 <도나 노비스 파쳄(평화를 주소서)>은 앞부분의 미진함을 몰아내는 대전차 경주를 하는 글레디에디터처럼 휘몰아쳤습니다.

마치 진양조로 시작하여 휘몰이로 몰아가는 산조의 맛처럼 말입니다.


접근법은 다르지만 바흐의 음악은 하나입니다.

주소지도 없는 그의 음악을 정확하게 찾아가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그 길이 행복한 걸 알기에 연주하고 듣는 것일 겁니다.

클래식 음악의 마니아인 한 지인은 연주회에 갈 때면 늘 저녁식사를 거른다고 하더군요.

이유를 물어봤지요.

뱃속이 청정한 상태에서 음표를 하나하나 맛보기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다음 음악회엔 저도 그 음표의 맛을 음미해 봐야겠습니다.  (2008년 4월)

 

*라히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이 연주하는 바흐 B단조 미사 중 <도나 노비스 파쳄(평화를 주소서)>3분 20초 영상입니다.

평화를 얻어보세요.


  

J.S. Bach - Mass in B Minor, BWV 232: Dona nobis pacem 출처-Youyube
바흐 B단조 미사 악보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의 피카소, 파블로 카잘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