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나무 Mar 24. 2024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사라 장의 초로색 음악 지도






오르페우스는 아폴론에게 하프를 배웠습니다.

하프 명수가 된 그가 하프를 연주하면 맹수들과 초목들까지 매료시켰다고 하지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영을 어겨 아내 에우리디케를 명부에서 데려오지 못하고 실패한 오르페우스,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작년에 이어 사라 장과 다시 만났습니다.







첫 곡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데오' 중 발레음악이었습니다.

오페라에 발레 음악을 넣으면 안 되던 시기여서 궁정음악가가 모차르트의 악보를 찢어버리던 영화 '아마데우스'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악장의 보잉은 발레리나의 토슈즈처럼 가뿐하고 유연하더군요.

바이올린이 발레를 하는 듯요.

그날따라 유난히 음색이 생생하고 따뜻했지요.

새삼 예술의 전당의 잔향이 참 좋다는 걸 느꼈습니다.


어떤 여름이 저보다 더 파랄 수 있을까 싶게 사라 장의 드레스는 여름 향기 풀풀 날리는 초록이었습니다.

그녀의 나이도 초록인지라 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녀에게도 두려움이라는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당찬 걸음과 함박웃음의 푸른 에너지가 보는 이를 기분 좋게 했지요.







바이올린의 조련사답게 여유와 위트가 넘치는 자신감으로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한 장 한 장 펼쳐 나갔습니다.

1,2악장은 단지 열정적이지만은 않게 정제되고 안정된 톤의 연주였습니다.

그건 아마도 인생의 페이지가 바뀐 탓이겠지요.

3악장에선 다른 주자와 달리 여백 없이 넘어가는 패시지가 절묘했습니다.

활처럼 휘는 유연한 허리는 아찔했지만 위험이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고저를 떠나 다양한 소리의 향연에 취하여 과연 음악의 한계란 어디까지일까 생각했습니다.

25분이 넘는 협주곡은 너무도 순식간에 끝이 났습니다.

이어지는 박수소리마저 음악처럼 들렸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앙코르는 놀랍게도 '치고이너바이젠'이었습니다.

2001년 독일 발트뷔네 콘서트에서 도밍고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협연했던 장면이 떠올랐지요.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더군요.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과 함께 '배 부르고 등 따시면 그만이다'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그 순간은 허튼소리로 느껴졌습니다.


아첼레란도로 치닫는 종결부는 사람이 귀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빠르기가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음량이 너무 크면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듯 너무 높거나 낮아도 들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색은 750만 가지가 넘지만 그중 사람이 가시 할 수 있는 영역은 약 200개의 색상밖에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의 아찔한 질주 같은 연주는 안전하게 종착역에 다다랐습니다.


인터미션 후 첫 곡은 타워가 만든 '체임버 댄스'로 한국 초연이었습니다.

손님 많은 상점을 혼자 지키는 주인처럼 10여 종의 퍼커션을 혼자서 분주히 연주하는 팀파니스트의 질끈 묶은 머리카락에서 그의 의지가 보였지요.

세 종류나 되는 약음기를 분주하게 갈아 끼우던 트럼피터들의 구두 앞축은 메트로놈인 양 열심히 박자를 두드립니다.

지휘자가 없는 그 곡은 곡마다 악장(리더)를 바꾸었습니다.

틀에 박힌 고정 연주에서 벗어나 책임과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함이 아닐는지요.

돌아가며 리더 역할을 맡으니 단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 있는 디테일이 돋보이며 집중력이 한층 높았습니다.


마지막 곡은 모차르트 35번 교향곡 '하프너'

당시엔 귀족들의 후원을 받은 음악가들이 대부분이었지요.

베토벤의 '대공'트리오는 루돌프 대공을 위한 곡이며 현악 4중주 '라주모프스키' 그리고 이 곡 '하프너' 또한 귀족의 이름입니다.


지휘자가 없는 이유로 단원 전체가 인사를 하고 커튼콜도 단체로 받았습니다.

앙코르는 버르토크의 '루마니아 민속 춤곡'

힘찬 보잉으로 활 털이 끊어져 나가는 연주자들을 보며 대리만족의 쾌감을 느꼈습니다.

2악장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시소와 그네타기처럼 사랑스럽고 연주는 더할 나위없이 휼륭했습니다.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비가 밤을 배경으로 날개를 펼치더군요.

마침 카 오디오 CDP에서 조시 그로반의 'Remember When  It Rained'가 흘러나왔습니다.

흠뻑 젖어도 좋으련만 음악은 결코 젖지 않았지요.







공자께서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알고, 좋아하고, 즐기는 그 모두는 행복입니다. (2008년 7월)



*Josh Groban  'Remember When  It Rained'

오랜만에 들어도 좋군요.



'Remember When  It Rained' (출처 Youyube)





  

 



매거진의 이전글 '덮어놓은 책' 아이리스 머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