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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Mar 28. 2024

예술은 발전하는 게 아니라...






모딜리아니(Amedeo Clemente Modigliani, 1884년 7월 12일~1920년 1월 24일) 좋아하는 건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의 목과 얼굴에서 몽환적인 매력이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짧은 생애 동안 오직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 1898년 4월 6일 ~ 1920년 1월 25일)에게서 미술적 영감을 얻었던 모딜리아니, 죽은 에뷔테른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다음 날 그를 따라 투신했습니다.(임신 8개월)

아마도 천국에서도 그의 모델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



이에 반해 독신으로 살았지만 숱한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며 열 명의 사생아를 낳았던 클림트(Gustav Klimt, 1862년 7월 14일 ~ 1918년 2월 6일).

그가 유일하게 정신적 사랑을 했던 여인은 에밀리 플뢰게(Emilie Louise Flöge 1874 ~ 1952)였습니다.

클림트는 그림을 그릴 때면 언제나 아프리카의 스먹과 비슷한 인디고블루의 길고 헐렁한 작업복을 입곤 했지요.

그건 자신의 동반자라고 여겼던 에밀리가 만든 옷입니다.

그의 영혼이 스며있는 빛바랜 푸른 작업복이 첫 전시실 유리관 속에 누워 있었습니다.


   


Gustav Klimt, Emilie Louise Flöge




현대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클림트의 전시를 보러 간 것은 '베토벤 프리즈'나 누드 드로잉이 아닌 '유디트'였습니다.

그녀가 베어버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보고 싶었지요.

그녀의 한쪽 눈에 찍힌 금색 물감이 화룡점정처럼 여겨지더군요.

유디트가 던진 단 한 번 눈길에 중독되어 목이 잘리는지도 몰랐던 적장 홀로페르네스처럼 나 또한 최면이라도 걸린 듯 시간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도 모르고 오래도록 그림 앞에 서 있었습니다.


클림트는 그림을 그릴 때 액자까지 염두에 둘 만큼 섬세하게 그림의 조화를 고려했습니다.

유디트의 액자 윗면에 제목이 쓰여있는데 그 글씨체는 빈분리파의 타이포그래피(글씨체)와 똑같다고 하더군요.


유디트를 소재로 한 그림은 살로메만큼이나 많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데일 것 같은 팜므파탈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는 흔치 않으니까요.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고 했습니다.

유디트나 다나에, 살로메의 스토리를 모르면서 그림을 보는 것은 색의 조화와 면의 분할을 보는 의미 그 이상은 아닐 겁니다.


카라바조가 그린 유디트와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는 다릅니다.

카라바조의 유디트는 칼로 남자의 목을 베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혐오감이 가득하지만 멈칫거리는듯한 두려움이 보입니다.  

하지만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다릅니다.

굵은 팔뚝과 미간을 잔뜩 찡그린 표정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꼭 베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이지요.



Judith Beheading Holofernes (Caravaggio) 1598년


Judith Beheading Holofernes by Artemisia Gentileschi, 1612년




클림트의 유디트는 어떨까요?

검은 머리칼에 반쯤 벌린 입과 눈 속에 일렁이는 미소가 신비스러운 황홀감을 안겨줍니다.

마치 적장의 목을 베는 순간 오르가슴을 느끼는 여인처럼 말이지요.

온통 황금빛인 그의 그림에서는 화려한 치장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과연 그에게 붙여진 금빛 마술사라는 표현은 적절합니다.




Judith and the Head of Holofernes, 1901




클림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에로스의 여성입니다.

프로이트는 여성이 자기 몸에 없는 것을 강렬하게 욕망하며 결국 자신이 그 욕망의 대상으로 직접 변해간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가 죽는 날까지 생각한 것은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라고 합니다.

예술사회학자 아놀드 하우저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창부는 격정의 와중에서도 냉정하고, 언제나 자기가 도발한 쾌락의 초연한 관객이며 남들이 황홀의 도취에 빠질 때에도 고독을 느낀다. 요컨대 창부는 예술가의 쌍둥이 짝이다.'


최초의 팜므파탈은 이브이며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은 에로티시즘이 아닐까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곧 쾌락이라고 하니까요.

한 점의 자화상도 그리지 않고 여성과 풍경만을 그린 클림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는 작품은 단연 '키스'일 겁니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만큼 아름다운 것도 드물지 싶습니다.

에로스와 아름다움, 사랑과 열정으로 직조된 매혹의 태피스트리는 최고의 값을 경신하고 있지요.

많은 상품에 그의 그림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 클림트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클림트의 그림이라고 절대로 짐작할 수 없는 초상화가 있습니다.

'Portrait of Helene Klimt '

클림트의 형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어린 조카 헬렌의 후견인이 되었고 그녀가 여섯 살 때 그려진 그림입니다.

내 스마트폰의 프로필 사진은 오래도록 모딜리아니의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망설임 없이 헬렌의 초상화로 바꾸었답니다.

 


portrait of helene klimt



클림트를 후원하던 부부의 딸인 아홉 살 소녀 '메다 프리마베시의 초상' 역시 눈길을 끌었지요.

전시회에 가면 보통은 도록을 구입하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도록에 실린 그림에서는 클림트의 황금빛 비밀과 유혹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Portrait of Mada Primavesi




모차르트보다 바흐가 우수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베토벤보다 말러 교향곡이 더 발전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피카소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더 훌륭하다거나 고흐보다 앤디 워홀이 낫다고 할 수 없지요.

예술은 발전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저 변화할 뿐이지요.


내게 있어 예술은 늘 오늘입니다. (2009년 4월)



피아니스이며 지휘자였던 프리드리히 굴다((Friedrich Gulda, 1930년 5월 16일 ~ 2000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가 아들을 위해 만든 곡입니다. 오늘 날씨와 잘 어울리네요.



Friedrich Gulda,  Aria (출처 Yoi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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