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끄적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나무 Mar 31. 2024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와 야나체크






하루키의 에세이 <먼 북소리>를 챙겨 들고 여행을 떠난다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가 있다. 

나 역시 술술 넘어가는 문체에 매료되어 그의 책을 섭렵했었다.

그리스에서 살다가 질리면 이탈리아로 가고, 글을 쓰다가도 배 들어오는 시간이 되면 포구로 나가 어슬렁거리다가 생선을 사서 요리하는 그의 생활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출간 전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던 소설 1Q84는 1984년에 다른 길로 빠져나가는 의문의 다른 해를 뜻한다.(여기서 Q는 Question)

1,2권 각각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이지만 주말 내내 책을 내려놓지 못하고 읽었다.

목차를 보면 1,2권 모두 스물네 개의 장으로 엮어졌는데(모두 48장) 1,3,5... 23의 홀수는 여주인공 아오마메, 2,4,6... 24의 짝수는 남자 주인공 덴고의 이름으로 구분되어 있다.

소설의 챕터마다 소제목이 붙어있어 스토리를 예견하기도 한다.








알고 보니 각권 24개의 장은 음악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피아노의 구약 성서라고 일컬어지는 바흐의 연습곡집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빗대어 쓴 것이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48곡의 12 음계 평균율을 1권(24곡),2권(24곡)에 균등하게 배치한 피아노곡이다.

하루키다운 발상이다.

홀수 장의 아오마메를 읽고 나면 짝수 장의 덴고 이야기가 전개되며 홀수 장을 궁금하게 만드는 묘미가 있다.


하루키의 작품에는 대부분 음악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상실의 시대>라고 알려진 <노르웨이의 숲>은 같은 제목인 존 레넌의 노래가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하루키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음악 취향이 클래식에서 재즈까지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 1Q84는 첫 피이지부터 야나체크(Leoš Janáček 1854-1928, 체코)의 신포니에타가 나온다. 






여주인공 아오마메가 타고 있는 택시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흘러나온다.

주차장처럼 차로 가득한 고속도로의 택시 안에서 듣기에 어울리는 음악은 아니다.

일반 대중이 쉽게 즐겨 들을 수 있는 종류의 곡은 더더욱 아니다.

책에서 언급하듯 그 곡의 첫 부분을 듣고 곡명과 작곡가를 알아맞힐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아주 적다'와 '거의 없다'의 중간쯤일 것이다.

하지만 아오마메는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조금 더 읽다 보면 야나체크가 1926년에 작곡해서 조국에 바친 이 음악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모티브를 암시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품에 소개된 <신포니에타>를 수록한 조지 셸이 지휘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바로토크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음반은 1970년대에 소니 뮤직에서 발매되어 지난 30년 동안 약 1만 장 남짓 판매되었다.

하지만 하루키의 1Q84가 발매되자 단 3주 만에 1만 장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또한 <1Q84>라는 제목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된 조지 오웰의 '1984'역시 새로운 특수를 맞고 있다.


시청률 40%를 육박했던 드라마 <선덕여왕>에 힘입어 판매량이 부진했던 김별아의 장편 소설 <미실>의 판매량이 급증한 거와 다를 바 없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그 밖에도 존 다울랜드의 고음악 <라 크리메(눈물)>나 마이클의 <빌리진>도 다시 찾아들었을 거라 짐작한다.


책에 부록으로 CD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제목도 라벨이 작곡한 음악의 제목과 같다.

그러므로 당연 그 음악의 CD가 보너스로 붙어있다.

저자가 덜 알려진 음악을 소개하는 목적도 있지만 저자의 안목을 신뢰하는 독자들은 흔쾌히 그 음악들을 따라 듣기 마련이다.

또한 불황인 출판계나 침체기 음반 시장에서 '임도 보고 뽕도 딴다.'라는 식의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비닐 케이스에 CD만 달랑 들어있기 때문에 대부분 수록곡에 대한 설명이나 연주자에 대한 정보가 없다.

제대로 된 케이스가 없다 보니 보관도 어렵고 팽개쳐지기 쉬운 탓에 아쉬움이 없지 않다.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데 계절은 상관이 없다.

사실상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 때는 여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을이 말을 걸어오는 공간에 책을 들여놓을 수 있다면 인생의 또 다른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비밀스러운 동굴로 들어가 활자에게 윙크를 하는 일 또한 행복의 열쇠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2009년 11월)





파반느(Pavane)

16~17세기 유럽 귀족들이 궁전에서 즐겨추던 춤의 무곡. 

에스파냐어로 '파보(Pavo)'는 공작새라는 뜻이며, 파반느란 우아하게 움직이는 공작새처럼 느리고 위엄있는 자세로 춤을 추는 무곡를 뜻함

어원은 이탈리아 도시 ‘파도바’(padova)에서 유래했으며 가브리엘 포레와 라벨의 파반느가 대표적임.



Ravel :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출처 : Youtube)

   



매거진의 이전글 예술은 발전하는 게 아니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