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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29. 2024

풀리아의 하얀 진주, 오스투니

27. 오스투니(Ostuni)

 





숙소를 나서면 카페테라스에서 커피부터 마시곤 한다.

이탈리아에서 한 달 동안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물들기 마련인가 보다.

바리에서 오스투니까지는 기차로 약 50분,

오스투니 구시가는 역에서 약 3km로 걷기에는 좀 멀다.

버스 티켓을 사기 위해 역 근처의 타바키로 들어갔다.

커피 주문하는 사람, 나처럼 버스표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복작복작,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돌아올 때 티켓까지 2장에 2유로, 작은 코무네라 저렴하다.


오전 10시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그늘 한 점 없는 바깥은 햇살이 무척 뜨거웠다.

30분쯤 지나 약 20~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을 즈음 버스가 왔고 빈좌석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특별할 것도 아름답지도 않은 풍경을 따라 15분쯤 갔을 때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에 따라 내렸다.

그리고 구글맵을 켤 필요 없이 그들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섰다.

 









오스투니 역시 풀리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이트 시티 이다.

누군가는 '이탈리아의 그리스'라고 표현했지만 그건 좀 과하지 않은가 싶다.

색칠 없이 자연 그대로 둔 돌담이나 벽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자연스럽게 때가 타고 이끼가 생겨서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없다.

심지어 돌담에 노랗게 말라붙은 새의 오물마저도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마을의 입구는 흰벽에 군데군데 얼룩덜룩 시커먼 오물이 묻어있어 예뻐 보이지 않았다.

하얀색은 모든 걸 덮을 수도 있지만 가장 오염되기 쉬운 컬러이기도 하다.

   

알베로벨로, 폴리냐노 아 마레, 로코로톤도, 모노폴리 등 풀리아 지방에 화이트 시티가 많은 이유가 뭘까?

중세 때는 흰색 페인트 칠을 한 게 아니라 쉽게 구할 수 있는 하얀 석회를 발랐다.

하얀색은 좁은 골목을 밝게 해 주고 여름에는 뜨거운 빛을 반사하는 효과가 있어 실내를 좀 더 시원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17세기에 이트리아 계곡에 흑사병이 돌았지만 오스투니를 비롯해 석회를 바른 집에 사는 사람들은 전염병의 영향을 받지 않고 비교적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건축에 사용된 석회의 알칼리 성분은 박테리아의 증식을 막는 효과가 있고 또한 석회의 하얀색은 자연 살균제로 작용한 이유였다.  

그 관습은 현재까지 이어져 지금도 매년 하얀 석회를 여러 겹 칠하거나 흰색 페인트칠을 한다.


오스투니는 '새로운 도시'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스투 네온(Astu neon)에서 유래했다.

꽃과 선인장으로 장식된 좁고 흰 거리가 미로처럼 이쪽저쪽으로 갈라지고 있어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망설이며 가다 보니 커다란 리베르타 광장(Piazza della Libertà)이 나타났다.

여기가 중심이라는 것을 말해주듯 활기 넘치는 레스토랑과 카페, 부티크 상점, 기념품 샵과 젤라테리아들이 화려하게 들어서 있다.










맨 먼저 눈에 띈 건 전 날, 레체에서 보았던 산 토론초 기둥이다.

오스투니는 광장이 상대적으로 작아서인지 오론초 성인의 동상이 훨씬 커 보였고 레체가 밋밋한 기둥인 것에 반해 조각으로 장식되어 훨씬 고풍스럽다.

이 기둥은 17세기에 풀리아를 강타한 전염병과 기근에서 오스투니를 살아남게 도와준 산토론초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지어졌다.


리베르타는 오스투니에서 가장 큰 광장으로 지금은 오스투니 시청인 산 프란체스코 궁전(Palazzo San Francesco)과 산 프렌체스코 아씨시(San Francesco d'Assisi) 교회가 있다.    

프란체스코 아씨시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성당은 아씨시가 있는 움브리아 지방은 물론이고 풀리아 지방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다.


광장 한쪽에 뒤뚱뒤뚱 위태롭게 걸음마를 하는 아기에게 하네스가 채워진 게 보였다.

아기용 하네스는 처음 보는지라 신기했다.

 














베네치아의 탄식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스코파 아치(Arco Scoppa)를 지나면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당(Cattedrale Santa Maria Assunta)이 보인다.

오스투니에서 원픽은 바로 그 성당의 전면 파사드이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시에나와 오르비에토의 대성당 파사드는 컬러풀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었지만 그곳은 오직 심플한 디자인으로 풍기는 은은한 멋이 맘에 딱 들었다.

날개 같은 양쪽 면은 연속된 레이스 프레임으로 볼록한 곡선 모양이고 장미창 위쪽의 중심 부분은 오목한 곡선으로 만들어 마치 거대한 크라운(왕관) 또는 신부의 티아라를 연상시킨다.

장미창의 가장자리는 24개의 기둥으로 원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24시간을 의미하고, 두 번째 작은 12개의 장식은 12개월을, 가장 안쪽의 7명의 아기 천사는 일주일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오스투니에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힌 문'이라는 별명이 붙은 문이 있다.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그 문은 사실 한 고급 호텔의 일부로 출입용이 아니라고 한다.

마치 그 문을 열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나올 것만 같은 신비감이 있다.

파란 하늘과 하얀 담, 파란 문과 선인장이 그리스를 연상시키게 하는 곳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끊이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우연찮게 벼룩시장을 많이 만났다.

그로즈난, 코르토나, 아레초에 이어 네 번째이다.

그날은 오스투니에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액세서리라든가 작은 장식품보다 가구, 장식용 그릇과 거울, 오래된 부밀레 등 덩치가 큰 제품들이 많다.

보기 힘든 헴프 리넨을 무더기로 놓고 판매하는 곳도 있다.

한참 퀼트를 할 때 같았으면 당장 구입했을 텐데 이젠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시장의 규모가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넓은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골목까지 온갖 나이 든 물건들이 수도 없이 펼쳐져 있다.

너무 더워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고 당 보충을 위해 지퍼백에 넣어간 청포도를 먹었다.

목에 감은 손수건은 이미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상인들은 대부분 늘어놓은 물건과 멀치감치 떨어진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땀을 식히고 있다.

부채질을 하거나 물을 들이켜는 사람도 심심찮게 보인다.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로우 비디오 같다.

'너무 더운데?' 하며 근처 약국에 걸려있는 초록색 전광판을 바라보고 깜짝 놀랐다.

무려 '39도'였다.



















혼자 여행할 잘하는 거울 셀피를 찍기 시작했다.

작정하고 찍으니 거울이 정말 많다.

한 바퀴를 크게 돌아 나오는데 견과류를 파는 트럭이 보였다.

마트에서 산 피땅콩을 아주 맛있게 드시던 BB가 생각이 나서 500g을 샀다.

시장하여 시계를 보니 어느덧 1시가 넘었다.







광장의 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풀리아의 가정식 백반과 샐러드, 그리고 탄산수를 주문했다.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음식도 나오기 전에 물 한 병을 다 마셔버렸다.

쌀과 귀리가 섞인 밥에 따뜻한 국물이 자작하게 부어져 있고 홍합과 구운 채소가 곁들여진 백반은 간도 적절하고 입에 맞았다.

하지만 샐러드는 보리로 보이는 곡물과 토마토 위에 그라노파다노 치즈와 커다란 바질 잎 하나가 얹혀있는데 너무 차갑고 시큼하여 거의 먹지 못했다.

식사를 마쳤지만 이글거리는 태양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새 기온은 40도로 올랐다.









돌아가는 기차는 3시 11분 출발이라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천천히 버스 정류장으로 향해 걸어가는데 아프리카계의 흑인 모자가 눈에 띄었다.

용도 모를 알록달록한 천과 가방을 바닥에 늘어놓은 노점상인데 엄마는 더위에 지쳤는지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잠에 든 모양이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는 더위에 칭얼댈 만도 한데 무료한 듯 엄마 주위만 맴돌고 있다.

바로 옆에는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대조적인 투샷에 잠시 맘이 심난했다.




  





버스가 서 있는 모습이 보여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야속하게도 코 앞에서 떠나버렸다.

날씨는 덥고 적어도 30~40분은 기다려야 할 텐데 어디로 가야 할까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곧바로 버스 대가 도착했다.


혹시 기차역으로 가느냐고 물으니 안 간다면서 떠난 저 버스기차역에 가는 거라고 말했다.

실망한 얼굴로 버스에서 내리자 기사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 버스에 타라는 손짓을 다급하게 한다.

버스는 곧바로 출발했고 저만치 다음 정류장에 서 있는 버스 옆에 멈췄다.

기사는 문을 열어주며 그 버스로 바꿔 타라고 했다.


내가 그 버스를 탈 수 있게 일부러 먼저 출발한 건지, 아니면 출발 시간이 돼서 나를 태워준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의 친절한 도움으로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기차역에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

사소한 친절이지만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관통하는 역사의 실내는 제법 시원했다.

맞은편에 중년 남녀가 앉아있다.

전형적인 여행자 차림의 여자는 책을 보는 중인데 발치에 작은 백팩이 놓여있다.

옆에 앉은 남자는 맥북으로 뭔가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옷차림이 남다르다.

검은 셔츠에 물방물 무늬가 있는 보타이를 매고 깨끗한 검정 구두를 신고 있다.

옆에는 실버 컬러의 리모와 캐리어에 체크무늬 블랙 재킷과 블랙 페도라가 걸려 있다.

39도의 찌는듯한 온도에 그의 셔츠는 손목까지 단추가 채워져 있다.

땀으로 목욕을 할 정도이련만 남자의 얼굴은 뽀송뽀송하다.

학자 스타일의 남자는 뭔가를 골똘하게 들여다보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렸는지 여러 명이 역사로 들어왔다가 자리가 없는 걸 확인하고 플랫폼 쪽으로 나갔다.

기차가 도착할 시각이 가까워지니 남자는 재킷을 입고 페도라까지 챙겨 썼다.








바리에 도착하니 31도, 결코 낮은 온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늘한 느낌이다.

기차역에서 나와 숙소로 향하다가 역사 건물에 붙어있는 슈퍼마켓을 발견했다.

5일 동안 바리역을 매일 오고 갔는데 모르고 지나쳤었다.

게다가 그날은 일요일이라 마트가 쉬는 날인데 그곳은 영업을 하고 있고 우리가 늘 이용하던 시그마 보다 훨씬 컸다.

스파게티 생면을 사볼까 하고 들어갔는데 면발이 꽤 굵은 쌀국수가 보였다.

게다가 생면이라 주저 없이 장바구니에 담고 삼겹살과 밸런타인 피네스트도 한 병 샀다.


인간의 불행 중 상당수는 혼자 있을 수 없어서라고 했다.(쇼펜하우어)

그렇다면 BB는 하루종일 혼자라서 심심했을까?

아니면 혼자라서 행복했을까?

모노폴리로 3일 차 바다 수영을 자매들은 충분히 즐거웠을지도 궁금하다.


여행의 예정된 플랜이 모두 끝났다.

숙제를 다한 기분이다.

이 여행은 과연 스스로에게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내일은 바리 해변가의 근사한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멤버들 모두와 멋진 점심식사를 해야겠다.'

생각하며 천천히 육교 계단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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