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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과 낯섦이 함께하는
바르셀로나

2. 바르셀로나

by 전나무






카우치의 패브릭, 전등갓, 주방 가구, 이불과 베개, 식탁 의자, 발코니의 테이블 세트, 욕실 타일,

모든 것이 하얀색으로 통일된 바르셀로나의 숙소는 모던 심플의 대명사였습니다.


'이 집은 깔끔한 데다가 수(水) 세 권이라 더 좋은데.'


여기서 물이란 미네랄워터를 말합니다.

숙소 바로 맞은편에 슈퍼마켓이 있어서 무거운 생수를 쉽게 사들고 올 수 있는 장점이 있었지요.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있는 옹플뢰르에서는 슈퍼마켓이 너무 멀어서 기내용 캐리어로 물을 사 온 적도 있답니다.

유럽의 수돗물은 대부분 석회암이 많은 지하수나 호수, 강에서 추출해서 음용수로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많은 나라가 많으니까요.

숙소에 비치된 무선 포트 뚜껑을 열어보면 하얀 석회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닦이지도 않는 석회가 꺼림칙하여 냄비에 물을 끓일 때도 많지요.






첫날은 오후 느지막이 바르셀로네타(Barceloneta) 해변으로 향했습니다.

바르셀로네타는 항구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곳인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준비하며 인공적으로 조성한 해변입니다.

11월이 무색하게 따뜻했지요.

처음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가 2월이었는데 한낮의 기온이 26도까지 올라가서 놀랐던 걸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싶습니다.


파도는 우리들의 하루처럼 같은 모양으로 밀려오지 않습니다.

모래 위의 발자국도 어제와 다르지요.

늦은 오후의 바르셀로네타 해변에는 여행자의 분주함 대신 조용한 일상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반바지를 입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조깅하는 노인, 까르륵거리며 자전거를 타는 소녀들, 모래 위에서 홀로 요가를 하는 여인, 방금 수영을 마치고 나온 뱃살 퉁퉁한 아저씨가 샤워를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짙은 회먹색 구름 사이사이로 금빛 해가 내려앉는 중이었지요.

모래사장에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바다를 향해 앉아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우리도 젤라토를 먹으며 그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예술 작품 같은 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곳은 놀랍게도 병원이었지요.

아르누보의 걸작이라고 평가되는 이 병원은 산트 파우 (Sant Pau), 병이 저절로 나을 것만 같이 아름답습니다.


이곳은 병원이 신축 건물로 이전하면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었지요.

파우 길(Pau Gil, 1816-1896)이라는 카탈루냐의 부유한 은행가가 유언장에 병원 건설에 쓰일 막대한 자금을 남기면서 그의 수호성인인 Sant Pau의 이름을 붙여달라고 했습니다.

그의 뜻에 따라 가우디와 동시대 건축가인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가 설계하여 이 아름다운 병원이 만들어졌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환자들이 자연과 예술을 통해 치유되도록 설계했다고 합니다.

티켓을 구매하면 내부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산트 파우 병원 정면
건물 중앙에 파우 길의 동상
046_Hospital_de_Sant_Pau,_monument_a_Pau_Gil,_d'Eusebi_Arnau.JPG 산 파우 기증자, 파우 길(Pau Gil, 1816-1896) 동상
복도 천장
벽의 모자이크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까지는 숙소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되는 터라 위치도 좋습니다.

가우디가 마지막까지 매달렸던 걸작, 하지만 그의 생전에 완성되지 못한 이 성당의 공사가 계속되는 이유는 단순히 재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가우디가 남긴 설계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우디가 죽은 후 그의 설계도 대부분이 스페인 내전 중 소실되었고, 남아 있는 스케치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재해석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거죠.


첫 타임인 아침 9시로 입장 티켓을 예약했고, 9시 45분에는 파사드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티켓을 예약했습니다.(내려올 때는 나선형 계단으로 걸어 내려옴)

탄생의 파사드(Nativity Facade)는 가우디가 생전에 완성한 '예수의 탄생'을 묘사한 부조이고 수난의 파사드(Passion Facade)가우디가 죽고 30년 후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라는 모더니즘 조각가가 맡아서 진행하고 있지요.

타워로 올라가니 섬세한 꽃과 과일 모양의 조각들과 여전히 공사 중인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지만 생각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첫 경험이 무섭습니다.

처음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방문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이번에도 빛의 아름다움에 취해 말없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감탄을 했지만 이미 알고 있는 터라 감흥이 처음과 같진 않았어요.

처음 이 성당에 발을 들였을 때 완공된 후에 꼭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었지요.

그런데, 어쩌면 끝나지 않는 것이 이 성당의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완공의 시점을 궁금해하지도, 기다리지도 말자 했지요.

완벽하게 완성되고 나면 이 도시는 더 이상 가우디의 꿈을 꾸지 않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대리석 위로 떨어지며 시시각각 다른 색의 파동을 만들어내는 것을 바라보며, 그저 그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는 볼거리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람블라스 거리, 보케리아 시장, 몬주익 언덕, 카사 바트요, 구엘 공원 등을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우리는 고딕 지구로 향했습니다.


제일 먼저 도착한 로열 광장(Plaza Real)에는 작은 공원과 관공서들이 모여 있습니다.

시의회 건물과 시청에는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인권, 자유를 위하여'라는 현수막이 보입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카탈루냐 지방은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하기를 원하는 투쟁을 하고 있는데요.

스페인 국기 옆에 그들의 분리를 상징하는 일명 '에스탈라다' 깃발이 함께 게양되어 있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시의회



이 광장의 공원에는 핑크색 장식의 전등 여섯 개가 달린 가로등 한 쌍이 겸손하게 서 있습니다.

이 조명은 가우디가 겨우 27세였던 1879년에 디자인되었는데 이것은 바로 바르셀로나의 건축 혁명의 시작이었을 겁니다.

친구와 나는 야상을 입었는데 현지인들은 거의 한여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반소매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어요.



로열 광장(Plaza Real)
가우디 첫 작품 가로등





알록달록한 초콜릿과 캔디 등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카가네르(caganer), 일명 '똥 싸는 사람'이라는 인형입니다.

전통적인 카탈루냐의 붉은 모자(바레티나)를 쓰고 바지를 내리고 맨 엉덩이를 보이며 배변하는 농부가 원조이지만 세계의 셀럽들 모습으로 만든 카가네르 피규어들이 진열장을 채우고 있어 구경꾼들의 시선을 잡아챕니다.



원조 카가네르 모습



멀리서 봐도 큼지막하고 웅장한 자태의 성당이 보이는데 삼성 Z플립 4와 폴드 4를 광고하는 커다란 현수막이 측면을 뒤덮고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주민들은 또 이 성당을 '라 세우(la seu)'라고도 부르는데, 세우는 카탈루냐어로 '좌석'의 뜻, 즉 이 성당이 교구의 본거지라는 의미입니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Cathedral of Barcelona)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당의 이름은 사실 성십자가와 성 에울랄리아 (Eulalia) 대성당입니다.







여기서 에울랄리아는 기독교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로 고문을 받고 순교한 13세의 소녀의 이름입니다.

지금도 성당 내부의 회랑이 있는 작은 야외 정원에는 13마리의 거위가 살고 있는데요.

이 거위들은 바로 성 에울랄리아가 13마리의 거위와 함께 고문을 견뎠다는 전설에 의해 지금까지 13마리의 거위들을 키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대성당의 정면이 그대로 보이는 루프탑 바가 있는 콜론 호텔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워낙 유명세를 타는 곳이라 웨이팅도 잦은 곳이라는데 아직 시간이 일러서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두 친구는 술을 못하고 나 역시 너무 이른 시간이라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지요.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이 평범한 그곳은 성당뷰로 한 몫하는 곳이었습니다.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지요.








스페인 간식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추로스,

우리 셋 다 식사량은 많지 않지만 틈틈이 간식을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사탕 한 알, 초콜릿, 반쪽, 머핀과 커피, 이런 식으로 에너지를 채우는 거죠.

고딕 지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츄레리아 라이에타나 (Xurreria Laietana)를 찾았습니다.

보통 핫초코, 초콜릿, 캐러멜 또는 연유 같은 달콤한 디핑 소스와 함께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그러나 담백함을 좋아하는 우리는 추로스만으로도 만족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갓 튀겨내어 바삭하고 따뜻할 때 먹는 게 최고입니다.

시나몬과 설탕이 뿌려진 달콤하고 고소한 추로스를 먹으며 연인의 키스를 찾아갑니다.








저 멀리 두 남녀가 키스하는 모습의 거대한 모자이크가 보입니다.

이 거대한 키스는 다소 민망하게 보일 수 있지만 알고 보면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사진작가 조안 폰트쿠베르타가 만든 이 포토 모자이크 벽화는 고딕 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 중 하나로 가까이 가서 보면 작은 타일로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80개씩 50줄, 그러니까 4000개의 사진을 타일로 구워서 만든 작품입니다.

폭 8m, 높이 4m의 거대한 이 벽화는 사진작가 조안 폰트쿠베르타가 지역 신문의 독자들에게 광고를 내면서 시작되었습니다.(2014년)


'당신에게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라는 질문과 함께 그에 걸맞은 스냅사진을 신문사로 보내달라는 광고를 했습니다.

1714년 바르셀로나가 군사적으로 포위된 지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진행된 여러 가지 행사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들은 사진을 보내왔고 그 사진들을 한 조각 한 조각 배치하여 키스하는 두 남녀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은 다시 도예가 안토니 쿠멜라가 각각의 타일로 만들면서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 벽화는 일시적으로 전시할 예정이었지만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인해 영구 설치하게 되었다고 해요.







작품 옆에는 미국 작가 올리버 웬들(Oliver Wendell)의 글이 쓰여있습니다.

"키스의 소리는 대포 소리만큼 크지 않지만, 그 메아리는 훨씬 더 오래 지속됩니다."


'자유로운 순간들'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자신의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담겨 있더군요.

사진 한 장 한 장은 개인의 기억이지만, 그들이 모여 '사랑'이라는 결과로 다시 태어난 의미가 아름다웠습니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본인들의 사진을 찾는 재미도 쏠쏠할 듯합니다.

행복한 순간들, 자유로운 표정들, 뜨겁게 타오르는 눈빛들, 사랑은 결국 이런 작은 조각들이 모여 완성되는 게 아닐까요?

낭만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그 메시지가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고딕 지구의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을 걷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기타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중년의 거리 음악가가 기타를 안고 앉아 있었지요.

낡은 재킷, 세월이 새겨진 손끝, 그러나 그의 연주는 세련되었고 단단했습니다.

기타 줄이 떨릴 때마다 공기에 한 겹씩 감미로운 떨림이 쌓였지요.

그가 연주하는 곡은 멕시코의 대표적인 볼레로 '베사메 무초'였습니다.

처연하기까지 느껴지는 멜로디인 베사메 무초의 뜻은 'Kiss me much'라는 걸 아시나요?


키스해 줘, 많이 키스해 줘

마치 오늘 밤이 마지막인 것처럼

키스해 줘, 많이 키스해 줘

너를 잃는 게 두려워, 나중에 너를 잃을 게 두려워

키스해 줘, 많이 키스해 줘

마치 오늘 밤이 마지막인 것처럼

키스해 줘, 많이 키스해 줘






석조 건물 사이로 울려 퍼지는 멜로디는 먼 옛날 이 거리를 스쳐간 사랑과 그리움까지 불러오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드문드문 각자의 자리에 서서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어요.

그의 눈빛은 어디에도 닿아 있지 않았고, 기타와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허름한 옷차림과 상관없이, 이 순간 그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시간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연주가 끝났지요.

내심 알함브라 궁전을 연주해 주면 좋으련만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 마음이 통했을까요?

악사가 기타 줄을 트레몰로로 튕기기 시작했는데 바로 타레가의 그 곡, 알함브라의 궁전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전통 음악인 플라멩코에 기타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이 기타 강국이긴 하지만 거리에서 연주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수준이었습니다.

소리의 파동 속에서 한동안 서 있는데 친구 L이 천천히 다가가더니 기타 케이스 안에 동전을 살포시 놓았습니다.

길지 않았지만 연주자도 나도 그리고 이 거리도 음악이라는 한 조각의 시간 속에 함께 머물러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기타리스트가 앉아있는 모퉁이를 돌면 베니스의 '탄식의 다리'를 연상케 하는 작은 다리가 보입니다.

마치 수백 년 전에 만든 것처럼 예스러운 모습인데요.

그곳 역시 키스처럼 고딕 지구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장소라고 해요.

하지만 이곳엔 어두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주교의 다리(Pont del Bisbe)라고 불리는 이 대리석 다리는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 박람회 때 만들어졌습니다.

이 다리를 디자인한 건축가는 가우디의 열렬한 제자 조안 루비오 이 벨베르(Joan Rubió I Bellver)로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등에도 참여한 건축가입니다.

그의 꿈은 바르셀로나 대성당 주변을 네오고딕 양식으로 다시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1929년 국제 박람회에 맞춰 고딕 지구의 비고딕 양식 건축물을 철거하고 고딕 양식으로 리모델링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의회는 이를 탐탁지 않아 했고 그의 계획은 거부당했고 그 대신 육교를 만드는 것만 허가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못마땅했던 그는 육교를 만들며 소심한 복수를 계획했습니다.

다리 밑에 단검에 찔린 두개골을, 그 아래쪽에는 왕관을 조각했습니다.

다리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정말 두개골과 단검 모티브가 보이더군요.









이 두개골을 보는 사람은 불운이 찾아온다는 믿고 싶지 않은 전설이 있는데 그곳을 지나갈 때 뒤로 걸어가면 저주를 피할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또한 두개골에 박힌 단검을 제거하면 바르셀로나가 함락되고 파괴될 것이라는 소문도 전해집니다.

심지어 그 두개골은 단순한 조각품이 아니라 진짜 인간의 유물이라는 소문도 있다고 합니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이 다리는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히는 명소입니다.



여행 날짜가 정해지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콘서트 일정을 알아보았습니다.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6일 동안 콘서트는 없지만 발레 공연이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였지요.

우크라이나에 있는 학교의 방공호를 만드는 기금을 모으기 위해 해외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백조의 호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우크라이나를 돕는 차원에서 발레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클래식 발레는 차이코프스키가 원조지만 러시아권인 우크라이나 발레도 유명하니까요.

게다가 티켓도 저렴했습니다.

우리 셋은 미리 챙겨간 블레이저를 단정하게 입고 공연장인 카탈루냐 음악당 (Palau de la Música Catalana)으로 향했습니다.


카탈루냐 음악당 역시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아르누보 스타일의 건축물이지만, 가우디의 건축물들만큼 관심을 받지는 못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눈이 휘둥그레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죠.

이곳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1905년에서 시작해서 1908년에 완공된 이 콘서트홀의 외관은 각각 다른 꽃무늬가 있는 모자이크 기둥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내부 천장에는 베토벤, 바흐, 모차르트와 같은 위대한 거장들의 이름이 쓰여 있어요.


일찍 입장을 해서 공연이 시작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충분했기에 2층 발코니로 올라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공연장이라 카메라를 안 가져간 것이 매우 아쉬웠지요.

스마트폰도 화질이 뛰어나지만 돋보기를 끼지 않으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게 어렵습니다.


무대 좌우에는 안셀름 클라베와 베토벤의 흉상이 있고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든 창문으로 자연광이 가득 차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그곳의 하이라이트는 콘서트홀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돔입니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돔 모양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태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홀 안을 자연광으로 가득 채워 빛과 음악이 어우러지도록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20221106_154754.jpg 카탈루냐 음악당 외부
20221106_160600.jpg
20221106_160714.jpg
1층 로비와 계단
무대 벽면의 모자이크화와 파이프 오르간
화려한 천장
천장 중앙의 스테인드 글라스
2층 발코니 천장에 음악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음
발코니에서 내려다본모습
천장 중앙의 돔 모양의 스테인드 글라스
20221106_190830.jpg 공연이 끝난 후 무대인사를 하는 오데트 공주와 지크프리트 왕자



개인적인 느낌이었을까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의 표정은 마치 풀이 죽은 듯 어두워 보였습니다.

전쟁 중인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를 떠돌며 춤을 추는 건 결코 맘이 편하지 않을 테니까요.


첫날은 해변에서 느긋한 오후를 보냈고

둘째 날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방문하고

셋째 날은 고딕 지구에서 설렁설렁 보냈습니다.


내일은 스페인의 작은 '이비자'라고 불리는 시체스(sitges)에 다녀올까 합니다.

매년 10월 초,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호러, 판타지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곳이며 게이들의 성지이고 누드 비치가 있다는 그곳은 어떤 느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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