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혼다 길들이기일까?
도쿄 현지 시각으로 12월 23일, 혼다와 닛산 그리고 미쓰비시의 CEO가 공동 지주회사 설립에 관한 양해 각서에 서명하고 기자 회견을 가졌습니다. 그 입김이 크게 약해지긴 했지만 15%의 지분이 있는 르노와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누가 봐도 혼다가 닛산을 떠안는 인수 형식의 전초라고 봐야죠.
미베 토시히로 CEO 부임 이후 혼다는 그 어느 때보다 개방적인 행보를 펼친 건 사실입니다. 한국에 직접 찾아와 LG 에너지솔루션과 협업을 진두지휘했는데요. GM과 얼티엄 플랫폼 관련으로 협력하는 일에 대해 임원들이 반대하자 ‘다른 대안 있으면 갖고 오라’며 강경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혼다 소이치로의 유지를 십분 활용해, 소니와 자율주행 전기차 아필라(Afeela)를 공개하기도 했죠.
하지만 닛산, 미쓰비시 얼라이언스와 맺은 이번 지주회사 설립 양해각서 아니 전단계에 착수한 이번 인수는 아무래도 혼다에게 득이 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자동차 산업을 잘 모르는 일반 경제 전문가들은 혼다가 전기차 영역의 개발이 늦어 닛산의 기술을 활용할 것이라고도 언급하는데, 한참 모르는 소립니다. 물론 혼다의 판매 포트폴리오 중에서 하이브리드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2026년까지 얼티엄 플랫폼을 사용하면서 시간을 벌었고 그 이후 전기차에 대한 로드맵도 세워져 있습니다. 게다가 럭셔리 브랜드 어큐라(Acura)의 이름으로 나온 얼티엄 기반 전기차 ZDX는 5,400여 대가 판매됐는데 실질적인 인도 시작 시점이 8월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아 EV6와 비슷하거나 이에 약간 못 미치는 실적입니다. 결코 나쁜 성적표가 아닌 것이죠.
닛산의 전기차 리프가 누적 판매량 100만 대를 넘긴 전설적 모델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능과 주행 거리 모든 면에서 2022년 첫 선을 보인 아리야(Ariya)이후 발전을 멈췄습니다. 물론 이 차도 북미 기준으로 300마일(480km)의 주행 거리를 인증받았고 2024년 기준 3분기까지 1만 4,000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던 닛산에 유일한 희망을 빛이었습니다.
특히 북미 시장에서 혼다 CR-V, 토요타 라브 4, 기아 스포티지 등과 함께 나름 경쟁구도를 만들며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컴팩트 SUV 인 로그(Rogue)가 크게 주저앉았습니다. 2024년 11월까지 19만 대에 못 미치는데, 12월 말까지 결산을 하더라도 전년의 27만 대는 아득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혼다가 CR-V와 로그의 판매 간섭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웃픈’ 상황입니다.
게다가 브랜드의 정체성 제고를 위해 내놓았던 스포츠 쿠페 페어레이디 Z(RZ34)는 지나친 한정생산 전략으로 존재감이 없어졌습니다. 페어레이디의 낭만을 재현하고 튜닝의 베이스카로 나름 이름을 알릴 것처럼 보였지만 이미 닛산은 생산 능력에서부터 허덕였습니다. 미약하지만 혼다가 득을 볼 수 있는 영역이라면 3.0리터급 스포츠 쿠페의 플랫폼인데 크게 수요가 많지 않은 시장이라는 점만 확인시켜준 게 Z입니다.
물론 이 실질적 인수 합병의 화풍이 피카소의 청색시대처럼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닛산의 손을 잡고 따라온 미쓰비시는 의외로 혼다가 갖고 있지 못한 영역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중공업이 모체인 미쓰비시는 닛산과 혼다에 비해 부품 수직계열화가 잘 되어 있죠. 혼다는 수직계열화보다는 모든 것을 본사에서 해결하는 방식을 취해오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채 역량이 닿지 못하는 부품은 수직계열화를 하지 못하고 그대로 외주화할 수밖에 없는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그 외주사에 혼다 출신의 요직을 앉힘으로써 어느 정도 안정화를 꾀하고는 있는데요. 대표적인 케이스가 케이힌의 오다가키 쿠니미치(오딧세이 1세대 개발자) 같은 경영자가 대표적이죠.
또한 미쓰비시는 혼다에 없는 상용차 사업 부문을 갖고 있습니다. 미쓰비시 후소(Fuso)가 그것으로, 이 회사의 미래 먹거리는 바로 수소 상용차입니다. 미쓰비시 후소의 2000년대 사정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다. 현재는 89% 이상의 지분이 다임러 트럭에 넘어가 있죠. 원래 2023년 토요타 산하의 히노와 수소 상용차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한 경영 통합을 시도했으나, 히노의 비리로 인해 무산됐습니다.
한데 히노와의 경영 통합 불발은 혼다에게 기회입니다. 혼다 역시 수소 연료 전지 영역에서는 발군의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혼다지만 토요타와도 수소 부문에서는 거리낌없이 협업을 진행했습니다. 다임러의 지분이 절대적이라지만 어차피 히노와의 경영 통합도 그러한 지배구조 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잘 하면 뜻하지 않게 다임러-미쓰비시 후소가 갖고 있던 유럽 및 아프리카의 상용차 시장에서도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는 기회입니다. 물론 이건 ‘행복회로’가 완벽하게 현실화했을 때의 이야기죠.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 혼다와 닛산의 지주회사 설립은 일본 정부의 은근하고도 실질적인 영향력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대만 폭스콘의 닛산 인수 시도에 놀란 일본 정부가, 일본의 자존심인 자동차 기업을 넘길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을 갖고 혼다를 압박했다는 것이 업계의 합리적 추측이죠.
그러면 토요타가 아니라 왜 혼다가 이 십자가를 져야 할 기업으로 지목됐을까요? 표면적으로는 일본 내 1위 기업에 대한 건전한 견제와 경쟁 구도 구축이라는 의도가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일본 정부에 대해 저자세를 취하지 않은 혼다에 대한 길들이기가 아닐까 합니다.
1960년대 알본 정부는 ‘특정산업진흥 임시조치법안’을 진행했는데 이 때문에 혼다는 4륜 자동차 진입이 막힐 뻔했습니다. 이 때문에 혼다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가 최고급 니혼슈 여러 병을 들고 통상성을 찾아가 “몇 날 몇 밤을 새든 좋으니 통상성 대신을 불러오라”고 버텼습니다. 결국 특진법은 시행되지 못했는데, 혼다 소이치로 때문이 아니더라도 특진법은 무리가 많아 무산될 수밖에 없는 법이었습니다.
메이지 유신 시절부터 일본 권력자들과 함께 성장했던 토요타와는 달리, 혼다는 말 안 듣는 고집쟁이 장인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물론 일본 기업이니만큼 정부와 무작정 척을 지진 않았지만, 총리 초청한 연회 자리에 혼다 소이치로가 굳이 작업복을 입고 참석했다든지 하는 일화는 유명하죠. 일본인들에게 사랑받고 외화도 벌어다 주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마냥 편하지만은 않은 대중 영웅의 이미지를 가진 기업에게, 굳이 닛산에 대한 책임을 안긴 것이 우연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도래, 현대차그룹의 가파른 부상 등으로 과거보다 혼다의 위상이 약해진 지금, 일본 정부로서는 혼다를 길들일 절호의 기회로 보였을 겁니다. 한국의 현 대통령이 워낙 사고를 거하게 쳐서 그렇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도 2024년 내 15%대의 지지율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죠.
과연 혼다는 이 강제적인 강혼 생활을 잘 이겨내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저력 있는 혼다라지만 이번엔 진짜 어려움을 안게 됐습니다. 혼다 자동차와 브랜드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버텨내든, 쇼윈도 부부 생활만 유지하다 닛산을 털어버리든, 아니면 정말 닛산의 얼마 안 되는 정수급 기술이라도 획득하든 혼다가 이 위기를 잘 극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