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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Dec 25. 2024

2024년 12월 25일, 강변을 걷다

하남-남양주 사이에서 본 것들

최근 하남으로 작업실을 옮겼습니다. 18년을 대구에서 태어나 살았고, 21년간 안양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옮겨 온 서식지입니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식물들도 자리를 옮깁니다. 동물만큼 그 시간이 짧지 않을 뿐이죠. 


자동차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차가 없습니다. 물론 시승차가 워낙 자주 나와서 불편은 못 느끼지만 그래도 차가 없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죠. 불편하지만 또 차로 다닐 때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스타필드 하남 건너편의 카페 리버브릭에, 대중교통을 타고 다녀왔습니다. 지인의 부모님이 이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4년 3월에 오픈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시승 중에 기착지로 선호합니다. 살고 있는 곳 기준으로 40분 정도 거리입니다. 차로는 20분 거리인데 공휴일 저녁이면 팔당대교 진출입로가 무척 붐비기 때문에 대중교통과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버스 정류장과 이곳은 멉니다. 팔당대교를 건너 좌회전하는 버스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을버스 한 대, 지선 버스 한 대 정도가 하남과 이곳을 잇는 것으로 보입니다. 배차 간격은 30분이 넘었습니다. 수요가 없다는 뜻이겠죠. 


하남을 등지고 넘어가자마자 내린 자리에서 남양주 덕소 방향으로 1.7km 정도를 걸어가면 됩니다. 버스 정류장은 새마을주택입니다. 작은 제조업체들이 몰려 있는 곳인데 아무래도 휴일이라 조용했습니다. 



정류장을 등지고 걸어가다가 근처 굴다리에서 사진을 좀 찍어 볼까 하고 도로의 얕은 수풀을 넘어가는 순간 뭔가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시커먼 포대 같은 것이 펼쳐져 있는 형상이었는데 알고 보니 죽은 새였습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파리가 들끓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때 모르는 풀씨만 근처를 서성거리다 사라졌습니다. 


로드킬의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뭔가 독이 있는 것을 먹고 추락해 죽은 것을 누가 수풀로 치워 놓은 것 같았습니다. 요즘 도로 청소 차량이 돌아다니지 않는 곳이 드물기 때문에 평일에 이걸 봤다면 수거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12월 24일과 25일 사이에 죽은 것 같습니다. 


아직 기름기가 남은 깃털 위에 석양이 번들거렸습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죽음을 전시하고 싶진 않았지만 문득 촬영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까지 새의 이름은 몰랐습니다. 


민물가마우지의 사체


죽음을, 주검을 미적 사치의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아 보정 장난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파드마 즈라바 프라바릍타야 훔.


이 사진을 구글에 넣어 검색해보니 민물가마우지라고 합니다. 2023년에 유해 조수로 지정되었고 2024년붙어 포획과 사살이 허용됐다고 합니다. 이유는 민물어족자원의 씨를 말리고 산성이 강한 분변이 하중도 수풀을 고사시키며 토양도 산성으로 변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강원도 인근에서는 양식장이나 낚시터에서 물고기들을 몽땅 잡암멍거 골치라고 합니다. 


겨울 철새로 원래 한반도 남부까지 가던 이 새는, 한반도의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이제는 서울의 겨울에도 자주 보입니다. 2020년에 한반도의 겨울에 안착했는데 2024년에 죽여도 되는 새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 새도 독극물을 먹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겠습니다. 생태계 파괴라고 하니 전문가가 아닌 이상 할 말은 없지만 어찌 됐건 환경의 변화에 사람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니 목숨 있던 모든 것에는 미안함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에 천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수리, 매 등 맹금류들이 좋아하는 사냥 대상입니다. 덩치는 크지만 느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위가 약해 뒤져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만약 맹금류가 공격했다면 이렇게 깃널이 온전한 형태일 리 없었을 겁니다. 



팔당대교 인근은 수초가 많고 하중도 지형이 발달해 있습니다. 물고기들이 서식하기 좋은 곳이고 상대적으로 얕은 곳이 많아 새들이 먹이 활동을 하기도 좋은 곳입니다. 점점이 흩어진 철새들은 이 곳의 저녁 풍경을 더 풍요롭게 합니다. 그 철새들 중에 환대받는 쪽과 배척받는 쪽이 섞여 있습니다. 


부디 피안의 세계에서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또 배척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024년 12월 25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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