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창립 80주년 기념 비전 메타 투리스모, 토요타∙렉서스 GT
이번 주 위클리 피처(Weekly Feature)는 기아와 토요타그룹의 새로운 컨셉트카 소식으로 정리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기업 모두 같은 날짜인 12월 5일에 이 소식을 전했죠. 겹치는 경쟁영역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서로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게 다릅니다. 이 회사들의 컨셉트카는 현재 자동차 산업의 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도적 혼란과 이에 대응하는 관점과 전략 차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훗날 자동차 산업 역사를 쓸 때 중요한 사료(史料)가 될 것 같네요.
12월 5일, 기아는 용인에 위치한 교육 시설인 비전스퀘어에서 창립 80주년 기념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과 홍소성 사장 그리고 이학영 국회부의장 등 내외빈이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기아의 80년을 담은 최초의 사사(社史, 기업 역사를 기록한 책)도 공개됐는데요.
기념 행사를 진행하며 미래 콘셉트카 '비전 메타 투리스모(Vision Meta Turismo)'를 최초로 공개했습니다. 이 콘셉트카는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향한 기아의 확고한 비전을 담았으며, 역동적인 주행 성능과 여유로운 실내 공간을 결합해 이동의 개념을 단순한 주행에서 휴식과 소통으로 확장한 것이 특징입니다.
비전 메타 투리스모 컨셉트카가 주목받는 이유는 아무래도 기아의 컨셉트카와 양산차 관계 덕분입니다. 상업적으로 성공했느냐의 여부는 둘째 치고, 기아는 컨셉트카의 가치를 실제 차로 잘 살려 왔습니다. 그리고 메타 투리스모는 1세대로 단종된 국내 최초의 GT 개념 차량인 스팅어의 후속 차량을 암시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EV8’이라는 구체적인 차명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죠. 이 자리에서 그런 비전이 직접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향후 가능성이 없는 추측들은 아닙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메타 투리스모라는 이름입니다. 메타는 뭔가를 '초월한'이라는 의미입니다. 과거 선보였던 GT(그란 투리스모, 장거리 여행용의 고성능 고급차량) 컨셉트카를 넘어서는 개념이죠. 비전 메타투리스모는 기아의 디자인 철학인 '오퍼짓 유나이티드(Opposites United, 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를 반영하여 부드러운 표면과 미래지향적 실루엣을 구현했습니다. 특히, AR HUD(AR Head-Up Display) 기술을 활용한 세 가지 디지털 주행 모드('스피드스터', '드리머', '게이머')를 탑재하여 몰입감 있는 주행 경험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이처럼 역동적인 모빌리티와 사람 중심 공간을 결합한 비전 메타투리스모는 기아의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모델입니다.
그리고 이 비전은 운전자와 탑승자 모두에게 즐거움 제공하며 모빌리티로서의 진보뿐만 아니라 영감을 주는 경험의 선사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 기아의 메시지입니다. 글로벌 디자인 담당 카림 하비브(Karim Habib) 부사장은 "비전 메타투리스모는 역동적인 모빌리티와 사람 중심의 공간을 반영해 기아의 비전을 보여주는 모빌리티"라며 "앞으로도 기아는 기술적으로 앞선 모빌리티뿐만 아니라 감각을 자극하고 영감을 줄 수 있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연히 이 차량은 내연기관이 아닌, 그룹이 성공적으로 다져온 전동화 기술, 자율주행 연구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향에 있어 최근 위협적인 도전 과제가 생겼습니다. 그룹의 미래 모빌리티 연구를 책임지는 조직인 포티투닷(42DOT)의 위기죠. 네이버랩스를 이끌다 이곳으로 온 송창현 전 대표 퇴임을 두고 업계에서는 SDV·자율주행 전략이 대규모 투자 대비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고, 테슬라 같은 소프트웨어 중심 개발 방식이 현대차·기아의 기존 조직 문화와 충돌하며 핵심 인력 이탈과 조직 불안정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송창현 대표가 1,600억 원에 달하는 지분만 회수해 퇴진했다는 ‘엑싯’ 논란도 제기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기아를 포함한 그룹의 미래차 비전이 기술 경쟁력뿐 아니라 조직 내 수용성과 실행 구조를 다시 점검해야 할 과제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과연 비전 메타 투리스모를 포함해 향후 현대차그룹의 주요 미래형 컨셉트카들은 이런 위기와 제약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이후의 행보에 주목해봐야겠습니다.
전동화 전환에 거부감을 가졌던 내연기관 마니아들에게 이보다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요? 12월 5일, 토요타는 4.0리터 V8 FR(프런트 엔진 후륜 구동)의 스포츠카 GR GT와 이에 기반한 모터스포츠용 차량 GR GT3를 공개했습니다.
마스터 드라이버 모리조(토요타 아키오 회장의 ‘부캐’)는 식년천궁(式年遷宮)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는 일본 미에현에 있는 일본 신도의 중심, 이세 신궁의 20년 단위 이전 및 개축입니다. 이 식년천궁 행사는 7세기 때부터 진행된 것으로 200~300년 뒤에 목재로 쓸 나무를 미리 심어 가꾸는 것도 전통입니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 이번 컨셉트카 공개에 이 거창한 개념을 가져온 것은 그만큼 토요타의 스포츠카 개발이 후대로 이어져야 할 전통임을 강조한 것이기도 합니다. GR GT는 모터스포츠를 통해 더 좋은 차를 만든다는 TGR(토요타 가주 레이싱)의 철학을 진화한 플래그십 스포츠카로, 아키오 회장을 비롯해 드라이버 가타오카 타츠야, 이시우라 히로아키, 가모 나오야, 아마추어 레이싱 드라이버 토요다 다이스케 그리고 사내 평가 드라이버 등 다양한 드라이버가 콘셉트 단계부터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전력을 다해 달려라’, ‘더 밀어붙여라’라는 것이 아키오 회장의 메시지였다고 합니다.
엔진은 모터스포츠에서 사용하는 드라이섬프(엔진오일 탱크가 따로 있는 방식)이며 4.0리터(3,998cc) V8 트윈터보 엔진입니다. 최고 출력은 650ps 이상, 최대 토크는 86.7kg∙m 이상입니다. 엔진 내경은 87.5mm, 스트로크는 83.1mm입니다. 회전 질감을 중시하는 토요타의 철학이 보이는 구성이죠. 현재 토요타의 트윈터보 엔진은 3.5리터이고 그 상의 엔진은 자연흡기인 것을 감안하면 또 다른 변신입니다. 후륜 차축에 8단 자동변속기와 단일 전기 모터, 기계식 LSD(차동제한디퍼런셜)가 적용돼 있습니다. 강력하지만 모든 운전자가 쉽게 다룰 수 있는 스포츠카가 목적이죠. 전장은 4,820mm, 휠베이스는 2,725mm로 렉서스 RC보다 전장이 약간 길고 휠베이스는 5mm 짧습니다.
토요타는 렉서스 RC를 통해 세계 모터스포츠에서 경쟁 중이며 이는 GR GT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FIA GT3 규정에 따라 GR GT3도 공개했는데요.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 섀시, 로우-마운트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 등을 적용했습니다. 역시 커스터머 드라이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죠. TGR은 ‘GR GT3’를 단순히 고성능 레이스카로 개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제 GT3 시리즈에 참가하는 고객을 위한 최적의 지원 체계 구축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2010년대 초반, 자동차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던 LFA는 순수 전기 스포츠카의 컨셉트 모델로 다시 공개됐습니다. 디자인과 주행 성능의 균형을 통해, 전기 스포츠카는 아직이라는 인식을 바꾼다는 것이 아키오 회장의 비전입니다.
토요타는 내연기관과 전동화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통해 시대 변화의 파고를 넘어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년부터는 F1에도 개입합니다. 기존 하스(Haas)의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하며 팀명도 TGR 하스 F1 팀(TGR Haas F1 Team)이 됩니다. 2026 시즌의 새 기술규정은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기후 중립 연료 등을 적용하는데 모두 토요타가 강점을 가진 것들이죠. 원래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 부임할 당시 가장 먼저 손을 뗐던 것이 F1이었는데, 다시 F1에 들어온다는 것은, 토요타가 생각하는 스포츠카의 비전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같은 날 공개된 기아와 토요타∙렉서스의 컨셉트카에 담긴 비전, 자동차 마니아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시나요? 현대차그룹은 전동화 시대에 접어들며 팔로워가 아닌 선행자의 위치를 점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습니다. 토요타그룹은 우수한 기술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대 스포츠카의 비전을 앞당긴다는 계획을 보여주었습니다.
기회와 난관은 누구에게나 뜻하지 않게 공평할 겁니다. 두 기업의 이 비전은 어떤 현실로 이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