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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Nov 11. 2023

Born Not Superhero.

ft. 분수

그동안 잘 있었어요. 일하면서 이 일을 앞으로 십 년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고요. 기운 빠지는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오늘의 땡잡은 일이나 풀어볼까요? 오프 2일 차, 어제 10시까지 버텨보자 했지만 감기 증상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오후 7시에 잠이 들었어요. 밤새 일 하고 낮에 잠깐 잔 게 다였던지라, 오늘 일어나 보니 오전 7시, 12시간 정도 시체 저럼 잤나 봐요. 이렇게 잠을 많이 자는 날에는 제 고양이가 생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침대 위로 껑충 올라와 온갖 소리를 내는 행위를 시도합니다. 핥는 소리와 함께 오는 뜨뜻한 생선맛 입김은 덤이고요. 오늘은 평소에 잘 하지 않는, 침대에서 지도 잠이 들었었는지 옆으로 돌다가 침대 밖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제가 놀라 깼습니다. 별... 이렇게 일어나 보니, 밖에는 눈발이 날리는 날씨였던지라, 이는 하늘이 저에게 더 자라는 계시로 알고 더 잤습니다. 


일어나서는 일단, 지난밤 일하고 샴푸 하지 않은 두피의 찝찝함이 '이제는 좀 씻자.'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귀찮은 몸과, 게으른 마음을 보채, 겨우 샤워를 끝내고 식탁에 앉자 곡성을 재생했습니다. 쫄보라 영상은 못 보고요, 소리만 들으며 설거지를 했어요. 그런데 이건 도로마무인가요? 저녁인 지금, 설거지가 다시 쌓여있는 건 왜 때문인가요. 싫어요, 설거지 굴레.


오늘은 하루가 나름 알찼어요. 친구와 약속한 것을 깜박하고, 곡성을 열심히 듣고 있는데, 문자가 왔어요. "도착 예정.", "앗!!!!!!". 다행히 샤워를 하고 심지어 머리까지 말렸던지라, 옷만 입으면 되는 상황이었어요. 친구가 도착했을 때, 이실직고 정신을 놓았노라 했고요. 친구와 함께 쇼핑몰에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네 가지 재수 좋은 날이었어요. 

첫 번째, 사고 싶었던 옷이 절반의 가격으로 세일 중이었고요, 

두 번째, 미리 친구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좋은 가격으로 살 수 있었던 거요. 

세 번째, 장을 보러 갔을 때, 떨이로 엄청난 초콜릿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던 것과, 

마지막으로 5년 만에 그동안 못 보던 친구를 러쉬에서 일하고 있는 걸 알았어요. 친구도 무척 반가웠지만, 이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친구 찬스로 제품을 할인해서 구매할 수 있는지 메시지를 보낼 예정입니다. 이렇게 러쉬가 좋을 거면 이사 가는 곳에서는 러쉬에서 캐주얼로 일을 할까도 생각 중입니다. 물론, 거의 두 배의 시급을 받고 일하는 직업인이 되었지만, 러쉬의 가격은 제가 밀레니얼이 되기까지 부담이 되는 가격입니다. 정말 쓸데없이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사실, 좀 많이 단순해서, 일단 이력서를 내서 일해 볼 참입니다. 기다려라 러쉬야. 이참에 러쉬를 하나 차리면 미친 짓이겠지요?ㅋㅋㅋ


한 줄로 정리한 오늘은 소비의 날이었네요.


오프 4일 차입니다. 보통 사흘차에는 몸의 균형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정신을 잡고, 근무표를 보니, 다음 주 오프는 이틀 반 밖에 안 되더군요. 나흘 근무에 2.5일 오프라... 조금 잔인하지만요, 나흘 일 하고 난 다음에 5일의 오프더라고요. 오프를 바라보며 존버하겠습니다. 


지난 근무에 갈등을 겪었어요. 간호하는 게 일인데, 간호하기 싫은 환우가 생긴 거예요. 마음이 묘했어요. 분명 아픈 환우를 간호하는 게 직업인데, 이 환우는 저에게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호스피스 특성상 대부분의 환우들은 통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새로 입원하신, M 씨는 집에서 호스피스로 입원을 하신 경우인데요, 집에서조차 전혀 통증관리가 되지 않은 분이셨어요. 통증도 통증이지만, 4기 말기암, 그리고 새로운 환경... 모두 스트레스받기에 좋은 조건이지요. 심지어 그 새로운 환경이 죽음을 암시하는 곳이라면 말이지요. 문제는, 환우의 언어폭력예요. 물론, 의미 없이 하시는 말씀인 건 알지만, 저도 사람이기에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거의 한 시간 동안은, 일에 집중을 못 하겠더라고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서요. 


동료 선생님께서 M 씨는 세상에 화가 나있는 상태이지, 저에게 화가 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알지요. 머리로는 이해를 하는데, 다친 마음은 조금 회복이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사실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제가 이 환우를 피하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이러면서 제 마음속에 갈등이 생긴 것이지요. 분명 직함은 간호사인데, 환우를 기호에 맞게 골라가며 간호를 할 수 있는가 하면서요. 그런데... 저도 사람이라, 저를 보호해야 할 의무도 있는 것 같아요. 저랑 맞지 않으면, 그 분과 더 잘 맞는 간호사와 교체하는 게 서로를 위한 것이 아닐까 결론 지었습니다. 좋은 척 연기를 해도, 결국 짧은 인내심이 드러나 더 큰 문제를 만들 게 뻔하니까요. 제가 저를 얼마나 속일 수 있겠습니까. 다른 선배 간호사들의 접근법을 어깨 너머 관찰하며 배우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날씨가 흐리네요. 인센스 콘이 다 타는 대로, 산책을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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