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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팜팜 Mar 02. 2021

[약사의 직업 여행기]

02. 약사 언니

무려 2년 만에 다시 쓰는 브런치

"이제부터 글을 쓰겠다" 하고 선언과 동시에 글을 마감할 뻔했지만 용기 내어 다시 써보려고 한다. 


나는 자연 과학 전공을 4년간 하고서 PEET라는 그 당시 신개념 입시제도를 거쳐 24살에 다시 대학교 1학년이 되었다.

합격증을 받았을 때의 감동과 뿌듯함을 잊지 못한다. 

부모님은 합격을 알리는 내 전화에 물기 가득한 떨리는 목소리로 축하해주셨고, 나는 자랑스러운 딸이 된 것 같았다. 아 내 인생은 앞으로 장밋빛이겠지-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설렘은 얼마 가지 않았고, 첫 학기가 끝난 후 받아본 성적은 비실과 시들 그 사이쯤이었다.

성적이 안 나오니 공부가 너무너무 재미가 없었고(원래도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적성에도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당시에는 "이 나이에 다시 들어온 학교인데 그만둘 수 없다"라는 생각에 그저 졸업만을 바라보며 버티고 버티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일도, 재미있는 일도 없었다.


면허만 따면..

면허 따기만 해 봐라... 

평생 공부는 쳐다도 보지 않겠다.


하는 생각으로 4년이 지났고, 국가고시를 보았다. 

국가고시 준비 기간에 병원도 제약회사도 예비 신규 약사를 대상으로 취업 공고를 냈다. 

진작 하고 싶은 일이 생긴 친구들은 공부시간을 쪼개어 면접을 보러 다녔고, 시험 전에 이미 갈 곳이 정해졌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없었기 때문에 "면허 따면 약국 가서 편하게 돈을 많이 벌 거야"라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대로 실천했다. 


시험을 보았고, 합격 발표가 나기도 전부터 약사 구인구직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경력 없는 신규약사를 받아줄 마음 넓은 약국을 찾아 헤매었다.

그 사이 합격 발표가 나고 면허가 발부되었다. 


면허 합격을 확인한 날의 기분은 약대 합격증을 받았던 그 날과도 같았다. 

또다시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고, 4년을 존버 한 끝에 더 이상은 공부를 안 해도 되겠다는 감동과 뿌듯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제 내 인생은 장밋빛이다- 라는 4년 전과 정말 똑같은 생각을 했다.  

(내 기억력도 금붕어 급인가 보다. 왜 반전이 있을 거라 생각 못했지?)


무튼, 그렇게 나는 따끈따끈한 면허증을 가지고 정감 있는 동네 약국에 취직하였다. 


딸랑-종소리가 울리면 

밝은 미소로 "안녕하세요~!"라고 외친다


그러자 몸이 아픈 손님이 말한다 

언니, 내가 지금 안녕하게 생겼어요?


나는 약국 언니가 되었고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감히 환자에게 해서는 안될, 못할 말이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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