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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May 16. 2018

수없이 많은 미래중에 단 하나

<계룡선녀전>, 돌배, 네이버, 완결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돌배 작가의 두번째 작품 <계룡선녀전>은 재미있는 웹툰이다. 우리나라 전통 무속신앙과 전래동화를 절묘하게 섞어 새롭게 각색해냈다. 가장 재미있는 점은, 선인(仙人)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최첨단의 현대 과학을 이야기할수도 있고, 근대의 시작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갈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웹툰은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에 등장하는 선녀로 보이는 탐랑성 선옥남은 인간계에 내려와 699년째 남편이 환생하길 기다리고 있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지금은 '선녀다방'에서 바리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선옥남은 할머니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진실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젊은 선녀의 모습으로 보인다.

선옥남의 원래 모습을 보게 된 정교수.

    699년째 남편의 환생을 기다리고 있던 선녀 선옥남은, 어느날 우연히 선녀다방에 들른 정이현 교수와 제자 김금을 만나게 된다. 자신이 기다려온 남편의 환생을 만났다고 확신한 선옥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양으로 둘을 따라나선다. 그리고 대학에서 미니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둘 주변에 머무르게 된다.


    처음에는 가벼운 이야기로 보였던 이 웹툰이 주제부로 파고들며 무거운 이야기를 내놓는건, 선옥남과 정교수, 그리고 김금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 나오면서부터다. 선인들은 다양한 신통력을 부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옥남은 식물을 살리고, 잎을 돋아나게 하는 능력이 있다. 덕분인지 커피에도 신통함을 담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신통력을 사용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면 '오법통'이라는 벌을 받게 된다. 

선인의 힘에 따르는 책임

    전생에 선인이었던 정교수와 김금, 그리고 현재도 선인인 선옥남은 아주 오래 전부터 얽혀 있었다. 우리에겐 전설로 알려져 있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각색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나무꾼에게 선녀의 날개옷을 훔치라고 말했던 사슴은 북두칠성의 두번째 별인 '거문성'을 담당하는 이지가 벌을 받아 지상에 사슴의 모습으로 환생한 것이었고, 선녀의 날개옷을 훔치게 된 북두칠성의 마지막 별 '파군성' 바우새는 마찬가지로 환생했으나 이지와 달리 모든 기억을 잃고 지상에 내려와 인간의 삶을 살고 있었다. 당연히, 날개옷을 도둑맞은 선녀는 북두칠성의 첫번째 별 '탐랑성' 선옥남이었다.


    하지만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이야기의 흐름을 돕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일 뿐, 사실 그 너머에 있는 이야기가 더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바우새와 이지가 처음 선인이 된 계기가 그 이야기다. 아주 오래 전, 천년묵은 버드나무 밑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버림받아 죽어가던 이지는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 직전, 북극성을 관장하는 북두성군은 그에게 이지라는 이름을 주고 선인으로 임명한다. 그러나 이지는 복수심에 눈이 멀어 인간계에 적극적인 개입을 할 계획을 세운다. 약소국을 공격하는 강국을 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지는 이 계획이 들켜 인간계에서 기억을 가진 채로 인간이 아닌 존재로 반복해서 환생을 하게 된다.


    반면 바우새는 선옥남의 연인이자 이지의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올곧은 성품 때문에 이지의 계획에 반대하게 되고, 이지는 자신의 벌이 바우새가 고자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에게도 복수심을 키우게 된다. 여기에 더해 바우새와 선옥남의 사이에 대한 질투심도 작용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지나 이지는 기억을 잃고 인간으로 환생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두사람은 정교수와 김금으로 환생해 선옥남을 만나게 된다. 

'신들을 만든 인간들'이라는 구절이 눈에 띈다.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 말은 굉장히 유명한 말이다. 인간의 존재를 신에게서 찾던 중세를 지나, 마침내 인간본위의 세상이 열렸다는 일종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에도 그런 신호들은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은 내 존재에 신이 끼어들지 않음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근대의 시작은 신과 인간을 분리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선옥남의 과거 회상장면에서 '신들이 사모하는 대상은 신들을 만든 인간'이라는 말을 한다. 뿐만 아니라 선인은 인간의 믿음을 먹고 산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전통적 관점의 선인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신, 또는 상제가 지상을 만들고 인간을 만들고, 그 중간단계로서 존재하는 신선계가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하자 그 믿음에서 생겨난 선인이라는 말이다. 전통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고정관념을 완전히 해체한 시도가 참신하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후반부로 가면 데미안의 유명한 대사인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라는 구절이 생각나는 장면이 나온다. 선옥남이 자신의 아들이 환생한 것이라며 100년째 보관하고 있는 알이 깨지며 그 안에서 우주가 탄생하는 장면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선인의 이야기에 자료화면이 CERN, 유럽 입자물리학 연구소!

    최근의 과학 이론중에는 다중우주론이 있다. 우주가 여러 조건에 의해 갈래가 나뉘어 다중의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계관은 다중우주론을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어벤져스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여러 미래를 보고 왔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다중으로 분화하는 우주 속에서 관측이 일어난 우주를 확정하는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선인들의 모습이 마치 입자 하나가 광속에 가깝게 가속해 서로 충돌하는 것 처럼 기적과도 같은 일로 느껴진다. 그 때문일까, 45화의 자료화면 이미지 출처는 유럽 입자물리학 연구소인 CERN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선인과 신선계의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최신 과학이론을 다룰 수 있다니, 놀라움의 연속이다.


    뿐만 아니다. 작가는 신선-선녀에 덧씌워진 고정관념마저 정면으로 비틀어버린다. 작품 후반부 '선녀와 나무꾼, 그리고 사슴'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는 우리가 가진 애정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신선이라면 당연히 이성애를 기반으로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리의 고정관념은 작품 전체를 통해 무너진다. 파군성 바우새와 탐랑성 선옥남의 관계를 연인이라고 생각했다면, 여성형으로 표현된 거문성 이지의 질투는 당연히 바우새에 대한 연정으로 해석될 것이다. 그러나, 이지의 현신인 정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거문성은... 이지는 탐랑성을 마음 아프게 사모해 왔답니다."


    탐랑성 선옥남은 현생에서 처음으로 남편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대상은 바우새의 현생이 아니라 이지의 현생인 정교수였다. 물론 그 후에 그가 바우새가 아님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랑성은 이지를 미워하지 않는다. 이지의 질투는 바우새를 향한 연정이 아니라 탐랑성에 대한 마음아픈 사모의 마음 때문이었다. 이지는 벌을 받았지만, 탐랑성을 사모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인간계에 간섭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지의 마음은 바우새가 아닌 탐랑성을 향해 있었다.

    남성으로 환생한 정교수는 탐랑성에게 끌리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인지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마 그것은, 자신의 사랑이 부정당했던 기억 때문은 아니었을까.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이 있다. 다자연애를 뜻하는 폴리아모리는 연애 당사자간의 합의를 기반으로 문자 그대로 다자간의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 예를 들면 전래동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이니 당연히 두 사람간의 이성애만을 다룰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을 완벽하게 비틀어버린 것이다.


    돌배 작가의 전작인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에서는 샌프란시스코라는 위치적 특성을 활용해 등장인물 대부분을 이민자 또는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로 꾸리고,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해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다 놓았다. 전작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것이 이번 작품에서는 전래동화 기반에 토속신앙을 섞었다는 것 때문에 독자들은 반전 아닌 반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계룡선녀전>이 가장 놀라운 지점은, 다양성을 이야기 하면서도 전통적인 미덕인 정직, 협동, 배려와 같은 가치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잊고 사는 가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전통적인 신선의 이미지를 차용하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점에서는 과감하게 전통적인 관점을 파괴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신의 우리의 존재이유였던 시대가 붕괴하는 시점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모든 것을 이해하고, 이야기의 시작이 어긋난 지점을 제대로 돌려놓게 된 거문성 이지와 파군성 바우새, 그리고 탐랑성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기억을 되찾은 선인으로서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현생의 정이현 교수와 김금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 있는 선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별이 빛을 잃어 지상에 혼란이 오던 세상에서, 인간이 직접 선택해 미래를 바꿔낼 수 있는 세상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모두를 끌어안는 탐랑성

    거문성 이지의 과거처럼 혐오와 분노가 가득한 시대에, 전래동화를 각색해 다양성과 포용의 메시지를 전하는 <계룡선녀전>은 그렇기에 더욱 특별한 만화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명징하게 전달하며, 동시에 '계룡산 구석에 있는 시골마을에 살지만 아일랜드산 싱글몰트 위스키를 좋아하는 김금의 어머니'에 대한 묘사처럼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다. 독자로서 작품에 빠져들지 못해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면, 지금 이 작품이다. 여러분에게 더없는 포만감을 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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