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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Aug 03. 2019

[나의 최애들] 2. 브로콜리 너마저

만화글만 쓰는 줄 알았겠지만

고등학생 때, 음악 좀 안다 하는 친구들이 이런 밴드도 있다고 알려줬다. 처음 들은 노래가 뭐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근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브로콜리 너마저였던 기억만 있다. 무슨 노래였는지 그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게 대학생 때였다. 2009년, 겨울방학 내내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를 들었다. 개강을 하고, 아직 쌀쌀한 3월에 지금으로 치면 '힙'을 아는 아이들은 싸이월드에 <유자차>를 깔던 시기가 있었다.


내 인생에 브로콜리 너마저가 들어온 순간


그때까지 브로콜리 너마저가 내 최애였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내 '최애'는 퀸이었다. 음악좀 한다 하는 놈들은 당시엔 모두 사대부였다. 지파에 따라 뮤즈, MCR, 메탈리카 등등 많이도 나뉘었다. '진짜' 음악을 하는 밴드가 누구냐를 두고 의미없는 논쟁을 했다. 그러나 누구도 반박불가가 퀸이었던 때가 있었다. 솔직히 이건 팩트다(예송논쟁 부르는 말). 아무튼 이건 농담이지만, 그때까지 나는 브로콜리 너마저를 따로 플레이리스트에 넣지 않았다. 그냥 랜덤 리스트에서 나오면 들었나.


브로콜리 너마저가 내 인생에 깊게 들어오기 시작한건 2010년 정도였다. 이등병때는 CD플레이어를 쓸 수 없어서(지금은 아니겠지만) 일병을 달고 나서 처음 들은 <졸업>은, 정말 미친 세상에 떨어진 것 같았던 군생활을 이겨내는데 큰 도움이 됐다. 와, 아저씨 냄새 난다.


전역을 하고, 브로콜리 너마저는 기억에서 좀 흐릿해졌다. 그리고 다시 브로콜리 너마저를 기억해낸 것은, <졸업>의 뮤직비디오가 6년만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지금 보시길. 이러다가 어쨌든 내가 나고 자란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는데, 이 뮤직비디오는 또다시 내게 구원이 됐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에게 불러주는 이 노래는 내겐 눈물나는 노래가 됐다.


불가능한 염원을 읊조리던 밴드


내게 브로콜리 너마저는 "불가능한 염원"을 주문처럼 읊조리던 밴드였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라니, 미친 세상에서 행복할 수가 있나. 주로 겨울에 마시는 유자차를 끓이는 물은 눈물이다. 뜨거운 눈물로 끓인 유자차는 울지 않게 해준다고, 마법같은 말이지만 그 전에는 찻물을 끓일 만큼 울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울고 나서 봄날로 갈 수 있을까.


청춘의 불안, 청춘의 휘청임을 노래하는 밴드라는 평가를 받은 브로콜리 너마저는 내겐 오히려 체념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불가능한 걸 안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하던 우리는 이정표도 없는 들판에 내던져졌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조리 다 경쟁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어딘가 위안이 되었던 건 아닌지. 눈물로 끓인 유자차를 마시자고, 그리고 봄날로 가자고 해주는 것 만으로도, 불가능 한 걸 알지만 위로받았던건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최애'로 꼽기엔, 좀 어딘가 애매했다. 나는 그런 위로보단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를 들으면서 다 잊어버리는(또는 다 죽어라!) 쪽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햇수로 9년만에 앨범이 나왔다. 공연은 한다고 들었는데, 하면서 어디에 있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간들이 지나고, 나온 앨범은 <속물들> 이었다. 9년만에! 스무살에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를 들으면서 찌질함을 자각하던 사람이, 3집이 나왔는데 서른이 됐다.


아무튼, 3집이 내가 브로콜리 너마저를 '나의 최애'로 꼽은 이유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이제 더이상 불가능한 염원을 읊조리지 않는다. 처연하게 비 오는 거리를 바라보기 보다, 비를 맞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밴드가 됐다. "아, 이거 다 돈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면서. 이 솔직함에 나는 당황했다.


"그래 우리는 속물들, 어쩔 수 없는 겁쟁이들. 언제나 도망치고 있지만- 꽤 비싼 건물은 언제나 빈 자리가 없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져" 라고 말하는 가사는 무산계급인 우리의 심정을 대변한다. 한 명문 사립 초등학교의 이름이 딸 이름을 따서 지었고, 그 딸이 커서 이제는 이사장이라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왜 우리 아빠는 사학재벌이 아니지"하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 내가 건물주였으면 이런 고생 안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얘기다. 건물을 '사고' 싶은게 아니라 누가 건물을 줬으면, 아니면 가다가 건물 하나 주웠으면, 하는 마음이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여전히 불가능한 염원을 이야기하는 밴드다. 하지만 눈물로 유자차를 끓여 마시고 봄날로 가자는 위로보단 "야 나도 건물 가지고 싶다"고 말하는 밴드가 됐다. <서른>에서는 "만약 지금이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면, 그건 참 유감이네"라고 말하면서 "아닌 걸 아니라고 하는데 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버려야 했다"는 가사는 심장을 따갑게 만든다.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에서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아주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혼자 살아요>에서는 "인생 혼자-" 하는 가사가 입에 착착 붙는다. 3집이야말로 브로콜리 너마저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들이다. 안될 걸 알면서 행복하라고 말하는 인사가 거짓은 아니지만, 봄날이 올거라고 위로하는 말 역시 가짜 위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공감의 말이라기 보단, 한발 떨어져서 "그건 너의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위로처럼 들렸다. 하지만 3집의 노래들에서는 나의 부끄러움을 내려놓고, 나는 좋은 사람도 아니고 속물이지만, 그리고 서러운 날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냐고 묻는 앨범이다.


항상 답을 가지고 있었던 브로콜리 너마저는, 이번 앨범에서 처음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이 오히려 반가운 이유는, 나와 함께 같은 고민을 하면서 나이들어가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1집과 2집의 시간들을 지나면서 '그런 밴드가 있었지'로 기억되던 브로콜리 너마저는, 3집을 통해 내 최애 밴드가 됐다. 팬들도, 멤버들도 서로를 '샘'이라고 부르는 밴드, 불가능한 염원을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일을 해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밴드. 함께 나이들어가는 것의 가치를 아는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를 들으면 왠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아, 아쉽게도 7월에 했던 '이른 열대야' 공연을 가지 못하신 분들이라면 지금 바로 브로콜리 너마저 유튜브에서 뒷풀이 공연이라도 맛보시길. 


브로콜리너마저 3집 [속물들]

아주 오랜만에 새로운 앨범을 완성했습니다.
한참을 해오던 생각들을 일단락 지으니 홀가분하고 후련한 마음이 드네요.
2집 이후에 곧장 만들어 왔던 이야기들이 완성 되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떤 말로 이 노래들이 마무리 되어야 할지 잘 몰랐거든요.

이번 앨범은 자신의 어떤 부족함을 인정하는 이야기이고,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자리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이렇게는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 노래들은 어쩌면 그 말들에 부합하게 살아갈 때 비로소 완성되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쉽게 무너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할 수는 있겠죠. 

저희는 일단 그래보려고 합니다.
이 앨범을 만나는 모든 아름다운 사람들이 ‘누구도 상처주지 못할 사람’ 이 되기를 바라며,
브로콜리너마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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