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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kim Mar 12. 2022

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을 때

서한나의 칼럼과 이주란의 에세이를 읽고

#주간다다 49번째: 2020년 10월 넷째주

— 서한나 칼럼 <지각변동은 너로부터>, 이주란 에세이 <이주란의 화요일들 1 - 귤 그리기>를 읽고


‘설명하는 글쓰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보여주는 글쓰기’가 좋다. 그게 뭐냐고? 예를 들어보겠다. 이 문장을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좋아하는 게 아주 많은 사람이야’. 나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고 삐딱하게 생각한다. 당신의 가치는 내가 알아차리고 싶다.

그러나 이렇게 쓴다면 어떨까? “오늘자 <듣똑라> 너무 좋더라고요. 근데 듣는 와중에 <코로나 시대의 사랑> 새 메일이 왔는데 당장 읽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했어요. 점심시간에 읽고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읽었죠. 퇴근길에는 아니 글쎄, NCT 127 뮤비가 뜨더라고요. 오늘 무슨 잔칫날이야?” 라고 이야기해줬으면, 나는 글을 읽으며 느꼈겠지. 이 사람은 좋아하는 게 엄청 많은 사람이구만, 하고. 전자가 설명하는, 후자가 보여주는 글쓰기이다.


‘설명하는 글쓰기’를 싫어하는 건 사실 동족 혐오에 가깝다. 내가 좋아하는 태도를 갖춘 캐릭터로 스스로를 내보이고 싶다는 욕망에 늘 휩싸인다. 예를 들어 고여있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는 태도, 꾸준함 같은 것들을 바로 내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우습지만 실제로 갖추고 있는지 없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나는 그런 사람이야! 라고 설명하고 나면 되려 내가 너무 싫어진다. '자기모에화'를 했다는 후회가 들기 때문이다. 징그럽다.


백일 글쓰기 챌린지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설명하지 않고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어떻게 써야 독자가 내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이 생길 땐 좋은 글을 찾아 나선다. 이번 주 월요일에 서한나 작가의 칼럼 <지각변동은 너로부터> 를 읽으면서, 이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쓰기 수업 강사가 된 그는 첫 수업의 긴장감을 ‘긴장’이란 단어 없이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언니들은 휴대전화를 만지거나 목소리 섞은 하품을 했어요.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옥상이 간절했고 방금 시작했는데 쉬고 싶었어요. 같이 수업하러 온 친구를 돌아보았는데 그 애 표정도 나랑 비슷했어요.’ 어떤 표정인지 전혀 쓰지 않았는데도 눈 앞에 그려진다. 정말이지 이렇게 쓰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자신이 없다. 일단 노트에 필사했다.


어제 글을 쓰면서는 넣고 싶은 메세지가 너무 많았다. 쓰기 전 적어 둔 메모는 다음과 같다. ‘팬이라고 해서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 일반인보다 더 아는척하고 싶지 않다’, ‘너의 인터뷰를 봐도 이제는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자기혐오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자기혐오가 솟아오르는 부분은 아직 존재해. 외모와 체형의 문제 같은 거.’, ‘널 보면 나도 욕망당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껴.’ 일기장 한 페이지를 꽉 채우고도 어떤 말을 쓸지 감이 잡히지 않아 트위터에 메모를 이어가니 밤 열한 시. 갈팡질팡하며 글을 썼다. 마감 시간은 중요하니까.


보통은 자고 일어나면 어떤 부분을 더 구체화해야 하는지, 내가 전하고 싶은 메세지의 실체는 무엇인지 떠오른다. 그러면 그 후기를 일기장에 쓴다. 나중에 퇴고할 때 참고하려고. 오늘 아침, 다시 생각해봐도 어제 글은 어떻게 고쳐야 할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일단 주간다다를 써야 하니까 집을 나가자. 머리를 말리며 소설가 이주란의 새 에세이 연재 <이주란의 화요일들>(민음사 블로그)의 첫번째 글을 읽었다.

글은 심플했다. 오랜만에 새로운 취미 활동으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작가. 스케치북 한 편에 낑깡만한 작은 귤을 그렸는데 선생님에게 느낌표 붙인 칭찬을 받는다. 들뜬 마음이 된 그는 학창 시절 미술 수업을 떠올린다. 왜 이제까지 그림을 못그리는 데에 수치심을 가졌는지, 그림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좀 못해도 되는데 왜 모욕을 느꼈는지 작가는 돌이켜보았다.


겨울 이불같이 따뜻한 글을 읽으니 환기가 되었다. 생각했다. 글 하나에 메세지 하나, 정서 하나. 더도 덜도 말고 하나씩만. 일단 어제 쓴 글은 좀 오래 묵혀놔야겠다. 이 글에 맞는 메세지가 떠오를 때까지. 기가 막힌 표현도 같이 따라와주면 좋겠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마감 시간이야. 오늘도 무사히 주간다다 마감을 쳐서 기쁘다.




콘텐츠 결산: 2020년 10월 19일부터 25일까지

1. 책/텍스트
<명랑한 은둔자>(캐럴라인 냅 지음/김명남 역) 계속 읽는 중. '이 우정은 잘 되어가고 있어.' '개와 나'
<이주란의 화요일들> 1편 '귤 그리기'. 가볍다. 아 이렇게 가볍게 쓸 수도 있구나. 설명해도 되는구나... 좀 환기가 되었다. 생각을 좀 덜어낼 필요가 있다. 너무 입체적이면 머리 아픔
서한나 칼럼 <지각변동은 너로부터>

2. 음악
Bronze 2집 <Aquarium>
전작 <East Shore>을 처음 들었을 때 재현에 뭔 의미가 있냐...? 라고 생각했는데(시티팝 감수성을 잘 느껴지지만 아티스트만의 특징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앨범을 들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잘 하기만 하면 장땡 아닌가? 캐치하게 멜로디를 잘 뽑은 것 같다. 앨범의 일관성도 좋고. 이 정도의 퀄리티라면 창작의 의미를 찾는 건 무의미한 것 같다. 좋은 앨범이라는 말이다.


Bronze - Submarine (Feat. Hoody)



#주간다다

매주 본 컨텐츠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기록합니다. 인스타그램(@spaceandtime_)에서 2019년 여름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유튜브(youtube.com/dadakim)에서 런던 일상 브이로그도 올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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