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책은 없었다
전국 동네 서점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킨 바로 그 책!
"각주까지 재미있는 책은 네가 처음이야"
위로하려고 애쓰지 않는 책,
우울, 불안, 허무로 가득하지만 사랑스러운 책
어제는 민정언니와 마라샹궈를 먹고 언니가 평소 가보고싶던 책방이 있다기에 쭐래쭐래 따라들어갔다. 최인아 책방이었다. 최인아 책방은 선릉역 근처 어느 건물 4층에 있었고, 마치 영업을 하지 않는 듯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청나게 좋은 향기와 따뜻해보이는 마룻바닥, 그리고 복층으로 구성된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여느 서점처럼 카테고리별로, ㄱㄴㄷ 순으로 분류하지 않고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지만 추천하고 싶은 책, 생각이 많을 때 읽으면 좋을 책, 업무 스킬을 향상시키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 어떤 사람의 인생 책, 모모가 이럴 때 추천하고 싶은 책 등 신선한 카테고리로 분류돼있었다. 누군가 추천하는 책은 그 책 사이에 엽서같은 것이 끼워져있었다. 사실 책 보다도 그 책방의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언니는 거기서 책을 두 권 샀다. 한 권은 작지만 꽤 두꺼운 소장용 책이었던 거 같고 다른 한 권은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였다. 이 책은 2018 올해의 독립출판 2위로 독립출판을 했다가 대박을 쳐서 대형 출판사에서 재출판을 했다. 책을 모두 다 읽고서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책에는 작가가 5년동안 써 온 글의 자투리들을 주워 모아 정리하는 작업을 한 거라고 했다. 짝사랑하던 남자와 가까워지고 싶어 시작한 일이라던데 결국 그 남자와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작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책은 페이지가 꽤 많았는데도 술술 읽혔다. 처음에는 문어체와 구어체가 갑자기 중간에 바뀌는 부분이 있어서 읭? 스러웠으나 책 뒤쪽으로 갈수록 그러려니 하며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다. 초반에 한 가지 더 읭? 스러웠던 부분은 한 페이지가 제목 한 줄과 문장 한 줄이 끝이었다. 책의 앞부분 소개글에 이 글이 소설인지 수필인지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씌여있긴 하나 이게 시집인가? 싶었다. 그래도 뭐 잠자고 읽어갔다. 언니와 둘 뿐인 카페에서 스마트 폰 말고는 언니가 흔쾌히 내어준 새 책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잠자코 읽어갔다. 작가의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술술 읽어갔다. 누군가에게 말로는 전하기 힘들었을 이야기들을 써내려갔고 모아 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인생을 엿본 것 같았다. 작가의 나이가 내 또래쯤 되는지 내가 어렸을 때 겪었을 법한 이야기도 많았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씁쓸한 미소와 함께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다. 그렇게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작가의 삶을 함께한 것 같았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감정선이 잘 살아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언니가 그 책 어떻냐고 물었는데, 음..글쎄 잘 모르겠어.. 음.. 뭐랄까... 라는 말만 반복했다. 책의 초반에 나온 것처럼 이건 수필인지 소설인지 장르는 잘 모르겠으나 솔직하게 쓰인 일기 같다고 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이 읽은 후기가 궁금해졌다. 아마 이 책은 읽는 사람마다 감상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 후기를 남기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들여다 보려고 한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재미일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감상 하나는 나도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한 페이지에 한 주제로 글을 자유롭게 마무리하는걸 보고(심지어 한 줄) 나도 부담갖지 말고 차근차근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