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요즘 꿈이 뭐냐 묻는다면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이제 시작이죠."라고 대답한다.
다른 사람들은 평범하게만 살다 직장생활 N년차에 평범한 건 싫어! 나의 삶을 찾아가겠어! 하며 세계여행을 떠나거나 스타트업을 차리거나 요즘 말로 치면 유튜브를 시작한다. 그런데 일찍이 야자가 싫다며 학교를 뛰쳐나와 사진학원에서 죽치던 나는 나름 비범한 인생을 살았다. 열일곱 쯤부터 그랬으니 벌써 10년 하고도 4년 차다. 공교롭게도 딱 10년 차 되던 해 현타의 좌석에 앉게 되었고 삶을 되돌아보며 인생 계획서를 새로 썼다.
여행작가가 되기로 했다. 다 때려치우고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작가가 되겠다면서 글쓰기를 게을리했다. 그러니 당연히 돌아와서 남는 게 없었다. 회사원으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은 어디 가고 다시 회사를 기웃거렸다. 빠이팅 넘치게 생계를 위해 시작한 취업활동마저 감이 떨어졌는지 죄다 이상한 회사에서 고생만 했다. 고생을 거듭할수록 다시 떠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더더욱 안정된 직장을 갖고 싶었다.
내깟 스펙에 잘 나가는 회사에 들어가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3개월을 좌절감에 잠겨있다 응한 면접은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죽을 죽죽 쒀댔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다 적당한 조건에 타협하려던 찰나 잘 나가는 대기업의 작은 계열사에서 합격 통지가 왔다. 뭐 아주 파격적인 입사 조건은 아니었어도 최소한 회사가 투자에 목매거나 월급 줄 돈이 없어서 불안에 떨거나 회사가 망해버릴 걱정은 없다고 판단했다. 해가 바뀌고 새 마음 새뜻으로 새 회사 새 자리에 출근을 시작했다.
출근 첫날부터 실무에 투입되는 게 익숙하긴 했어도 이번 건은 차원이 달랐다. 양이 많음과 동시에 난이도가 높았다. 나의 통찰력과 감각이 시험에 드는 듯했다. 문제를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씩 풀어나갔다. 모르긴 몰라도 뭔가 고난의 과정 속에서 레벨업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로써 근무는 한 달 하고 10일 더 했는데 체감상 6개월은 일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팀원들은 신사업이자 새로운 팀이 불안하고 불만족스럽다지만 나는 좀 힘들긴 해도 적당한 텐션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업무 강도가 꽤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안정적으로 통장에 꽂히는 월급과 점심마다 만 원씩 지급되는 식대, 식품회사라고 나름 식자재 걱정 없이 자취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 연령과 국적을 불문하고 회사 이름만 대면 아는 네임밸류, 빠르고 정확한 결정과 책임지는 똑똑한 팀장, 눈치 보지 말고 일하라는 요즘 사람 같은 대표님까지. 평범한 것 사이에서 안정을 얻는다.
큰 회사와 작은 회사 모두에서 일해 본 경험상 크고 안정적인 회사는 대부분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거나, 했거나, 꿈꾼다. 반대로 작고 불안한 회사는 대부분 적당한 나이에도 결혼 생각이 없거나, 생각이 있어도 결혼을 할 수 없었거나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결혼이 안정적인 직장의 기준이 되는 것도, 결혼에 적당한 나이를 왈가왈부하는 것도 우습지만 눈에 띄는 차이라 함은 그런 거였다. 지금 회사는 놀라우리만큼 남녀를 불문하고 유부의 길을 걷는 직원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고 나와 비슷한 나이에 결혼을 꿈꾸는 사람도 많았다.
수면 밑에서 몇 개월을 헤엄치다 겨우 물 위로 올라온 듯한 나를 보고 지인들이 묻는다.
"요즘은 뭐하고 지내?"
"뭐 회사 다니고 평소처럼 지내지. 이직한 지 얼마 안 돼서 정신이 없어"
"요새는 여행 안 다녀? 앞으로는 꿈이 뭐야?"
"그냥 지금처럼 평범하게 잘 살고 싶어. 이제 겨우 남들이 사는 인생의 출발점에 선 거 같아."
"너답지 않다? 나는 이 평범한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 죽겠는데 !@$)(#!%*!!!"
그들은 궁금증은 해결했으나 의아해한다. 꿈꾸며 뜬구름 잡는 대답을 기대했는데 기대와 영 다른 대답이 돌아와 시원찮은 모양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꿈과 목표를 향해 간다. 그동안은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이었고 나는 꽤 빨리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주변이나 사회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내가 정한 방향으로 걷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보기 1년 차. 잘 부탁한다. 나 자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