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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 May 01. 2022

비건에 대한 생각

욕망과 지속가능한 지구에 대해서 생각하기

처음 고기를 먹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은 때가 기억난다. 고기를 즐겁게 먹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주변인에게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오늘부터 고기를 먹지 않아야지 생각하고 급격하게 식단을 바꾸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준비하는 것도 일이고 사 먹는 것도 일이라 2주만에 완전히 의지가 꺾였다. 그렇게 첫 번째 시도는 깔끔하게 실패했다. 하지만 그 뒤로 입맛을 서서히 바꾸어나갔다. 고기 2번 먹을 걸 1번 먹고, 물건을 집을 때 동물성 재료가 쓰였는지 안 쓰였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몇 달 지나자 어느 순간부터 동물성 재료를 발견하고 대체재를 찾고,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는 일에 적응했다. 그래 이제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 날부터 나 자신을 비건으로 정의했다.


비건인으로 사는 것은 그 어떤 신념을 지니고 사는 일보다 단단하게 벼려지는 과정이다. 비건이 아닌 사람들이 다수이기에 항상 '왜 고기를 안먹어요?' 라는 질문에 답하게 된다. 사실 먹는 것을 조절하는 일보다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이 더 부담스러운 일이다. 나는 첫 번째로는 탄소 배출, 두 번째로는 동물권, 세 번째로는 나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설명하는 편이다. 최근에 또다시 질문을 받아서 다시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새로운 점을 발견했다. 바로 음식, 나아가 타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비건인들과 논 비건인들의 차이다. 고기를 쉽게 먹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레 나의 욕망을 위해서 다른 동물들의 죽음, 그들이 공장식 축산에서 키워지는 현실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설령 그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모를지라도 의식적으로 알기를 거부하는 것이지 면죄부는 되지 못한다. 결국에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현재의 고기 생산 시스템에 동의한다는 뜻이 된다.


내가 발견한 차이는 바로 비건이 된다는 것은 자연 앞에서 겸손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고작 자연의 일부 중 하나일 뿐인데, 대체 무슨 권리가 있어서 살아서 감각하는 동물들을 가두고 죽이는 것일까?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도 서로를 잡아먹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처럼 다른 먹이를 생산할 수 있는 지성이 없다. 지금의 인간은 굳이 고기가 아니어도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 할 수 있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은 다른 동물들과 분명히 다르다. 그것도 모자라서 탄소와 물을 엄청나게 배출하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지금의 식량 생산 구조는 분명히 개선되어야 한다.

지구를 생각하며 내 입맛을 바꾸는 일은 큰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구조를 개선하자는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입맛을 바꾸지 못해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과 먹는 일에 대해서 지구 앞에서 겸손해지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큰 시도이다. 이제 매년 더 더워지는 여름, 갑작스런 추위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모두 함께 겸손한 마음으로 고기 없는 한 끼를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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